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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Jun 08. 2023

불의不意의 휴가休暇

_불의(不意):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판.

바로 어제, 한쪽 손을 잃었다.




.불의不意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판.
.휴가休暇    
직장ㆍ학교ㆍ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 또는 그런 겨를.


사전을 뒤적여 의미를 곱씹는다.


누구나 다 아는 두 단어의 낯선 조합이 신선하다고 자위해야 할까?

오늘의 글제목을 정해놓고 보니 웃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역시 고개를 든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내가 이 뜻밖의 상황을 애써 즐겨보려 마음을 빠르게 고쳐먹었다는 대견함이 느껴지기도한다...


결과는 간단하다.

나는 어제 오른쪽 손목 골절진단을 받았다.


사고경위를 정리해본다.

08시 빵공장 생산부 포장팀의 업무가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내포장(제품을 비닐봉지따위에 일차적으로 넣는작업) 업무를 하다가, 어제부터 외포장실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외포장이란, 내포장 담당자들이 비닐봉지 따위에 넣고 실링하여 포장이 완료된 제품들을 가져다가 1개 혹은 2,3개씩 작은 종이상자에 넣고, 그 종이상자 포장제품들을 다시 커다란 종이박스에 수십개씩 쟁여넣어 출고가능상태로 만드는 작업이다.


내포장이든 외포장이든, 생산팀에서 구워나온 빵들은 대부분 곧바로 냉동고로 들어가 급속 냉동상태로 보관된 제품들을 가져다가 실행하게 된다.

그러니 포장팀원들은 작업을 위해 수시로 냉동고에 드나들게 된다.

외포장실로 자리를 옮긴 1일차인 어제, 나는 외포장 동료들과 냉동고를 들락거리며 그날 출고될 제품의 목록과 수량에 맞추어 벌크 포장상태인 그것들을 포장실로 꺼내왔다. 그리고 열심히 박스에 넣고 테이프로 봉인을 하기 시작했다. 외포장이 끝나고 남는 제품들은 다시 냉동고의 제위치에 보관해야 한다.

급속냉동과 일정온도 유지를 위한 냉동고는 끔찍하게 춥다. 인간을 위한 온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08시40여분 즈음...나와 동료들은 포장 후 남은 제품의 박스들을 냉동고에 들여놓고 돌아나왔다.

외포장실과 이어진 냉동고의 출입문 안쪽 특정지점은 수시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특성상 바닥에 얇은 성에가 끼어 매우 미끄러운 상태였다. 그곳을 드나드는 작업자들은 누구나 바닥의 미끌거림을 경험하고 자칫하면 넘어질것같은 두려움을 항시 경험하곤 하였다.


바로 그 위치에서,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완벽하게 미끄러져 꽝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주저앉아버렸다.

악!

무의식적인 비명이 터져나왔다.

나의 비명과 불시에 바닥으로 한사람이 패대기쳐질 때 들려온 굉음에 놀란 것은 당사자인 나는 물론 근처에 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일시에 나에게 뛰어왔다.

허겁지겁 나를 일으켜세웠다.

순간적으로 나는 멍한 상태였다.


바닥에 엉덩이가 폭삭 주저앉을 때는 엉덩이의 통증만이 뚜렷했다.

동료들은,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며, 혀를 차면서 나의 안위를 걱정했다.


진작부터 냉동고 내부의 그 지점의 미끄러움은 사고가 우려되었고 안전관리팀에 여러 차례 개선을 요청했으나, 그전까지는 나처럼 미끄러진 사람들이 더러 있었음에도, 골절상을 입은 경우는 아직 없었기에 모두들 상황의 심각성을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결국, 내가 총대를 멘 셈인가.

처음 느껴지던 엉덩이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감소하였으나,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병원에 가는 중에 막상 오른쪽 손목 위쪽이 통증이 점점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반장이 나를 병원에 데려갔다.

처음에는 내가 사는 동네의 익숙한 정형외과에 가고싶었으나, 거리가 너무 멀다는 판단으로 조금 더 가까운 시가지의 큰 병원에 간 것이다.

그곳에서 가장 빠른 진료가 가능한 정형외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엉덩이와 우측 손목 통증부위 사진을 찍고 설명을 들었는데, 뜻밖에도 그 의사는 사진상으로 현재는 골절여부를 알수가 없다며, 1주일 후에 다시 오면 그때 사진을 찍어보면 골절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간이부목을 대주었다.

반면, 엉덩방아를 찧었던 부분은 다행히 아주 깨끗해서 이상이 없다는 그의 판단을 나도 용납할 수 있었으나, 손목골절여부를 판단하는 의견에 대하여는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사고부위를 판단하기 위해 사고를 당하지 않은 왼쪽 손목사진 까지 찍게 해놓고도, 그는 사진을 꼼꼼히 대조하거나 들여다보며 판단을 하려는 성실성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제대로 판독할 줄 모르는 게 분명해보였다.


어쨌든 진료를 보고, 다음주 예약을 하고 돌아나오며 나는 반장에게 말했다.

나는 저 의사가 신뢰롭지 않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동네의 단골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을 것이다.


반장은 의사의 판단-사진상으로 현재는 골절여부를 알수가 없다며, 1주일 후에 다시 오면 그때 사진을 찍어보면 확실히 알게 될 것-을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려 애쓰고 있었다.

회사에 돌아간뒤, 반장은 일단 골절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관리자에게 전달하며 그나마 다행이라며, 1주일 후에는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누구보다 나도 사실이 그렇기를 간절히 바랐다.

골절진단을 받으면 무조건 일정기간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니, 그것은 내가 결코 바라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부목을 붕대로 칭칭 감은 팔뚝으로 조심스레 운전대를 잡고 집을 향해 발길을 돌리며 다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좀 확실하게 알아야겠다.


그래서, 동네의 그 정형외과에 가야겠다.

동네에 도착하여, ㅁㅅㅅㅇ정형외과에 들어갔다. 노인인구가 많은 우리 동네의 특성상 동네병원의 고객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거의 한시간 넘게 기다려 진료를 보고 사진을 찍고 판독결과를 설명들었다.

결과는 골절이다.

엑스레이 사진을 띄워놓고 보여주며 골절이 의심되는 부위를 짚어내어 표시하고 이리저리 상세하게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골절 진단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그러나 마음은 편하다.

오랜 임상경험으로 자신있게 내리는 의사의 진단결과는 신뢰롭다.


그러니,

어쩔 수없다.

나는 저 의사의 판단을 믿으며 이제부터 적어도 4주동안 집안에서 칩거해야 한다.

불의의 사고로 얻어낸 불의의 휴가.


반장에게 다시 찍은 사진과 판독결과가 담긴 진단서를 송부했다.

회사에서 업무중에 입은 재해로, 골절상을 입었고, 나는 그로인해 집에서 푹쉬며 월급도 없는 4주간을 보내는 것만이 최선인가 싶어 아는 노무사께 급질문을 송신했다.

그분으로부터 친철하고 자세한 회신을 받았다. 산재처리가 가능하니 걱정말고 진행하라는.


그로부터 얼마후,

반장을 통해 관리자에게 전해진 나의 골절진단서 역시 산재보험처리를 신청하라는 통보를 회신했다.

또 나에게는 몇가지 상해보험이 가입되어 있었다.

찾아보니, 두개의 운전자 보험과 두개의 상해보험에서 모두 골절진단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거기 더해 산재보험신청서를 제출하면, 앞으로 닥칠 4주간의 불기간, 불휴가에 대한 보상이 썩 나쁘지만은 않을 듯 싶다.



하루가 지난 오늘, 나의 일상은 더없이 갑갑하고 무료하다.

손목 골절이 확인되는 순간, 나의 일상은 바뀌었다.

처음 해보는 손목골절, 부목 고정, 2주후 이어질 깁스까지...

어떻게 앞으로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그것을 견딜까 의문이다.

한 손만으로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 손을 잃고서야 깨닫는다.


그러나 어쩌면 나의 골절따위는 내 어머니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지난 5일 오후, 응급실을 통해 급성담낭염을 진단받고 입원하셨다.

전날부터 토하고 다음날에는 열이 난다는 요양원관계자의 통보를 받고 급히 ㅇㅅ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어머니는 몇가지 검사 끝에 급성 담낭염을 진단받았다. 

곧바로 응급수술을 통해 염증수치가 높은 담낭을 떼어내거나 관을 꽂아 담즙을 빼내는 시술을 해야했다.

깊은 고민끝에 동생과 언니, 나와 남편은 관을 꽂는 시술에 동의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시술을 했으나 예후는 좋지 않았다.

혈압이 오르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결국 패혈증상태가 되었다.

혈압을 높이는 약을 쓰기 위해 목동맥에 구멍을 뚫어 관을 연결하였어도 효과가 나지 않는다.


어제 오전에는 긴급히 중환자실로 이송되어 집중치료가 현재까지 이어지지만, 역시 눈에  띄는 호전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오늘, 몇시간 전에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패혈증을 더욱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대퇴부에 관을 꽂아 투석을 시행해야 한다는 소리다.

맙소사!

지금도 충분히 고통스러울 어머니의 앙상한 몸에 어떻게 또 구멍을 뚫는단 말인가..

그럼에도 지금 할 수 있는 처치가 그것뿐이라면,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달라며 동의할 수 밖에.


그 병원은 면회도 자유롭지 않다...

나는 겨우 한번 입원 당시와 다음날 10여분 면회를 했다.

그때 목격한 어머니의 몸에는 온갖 관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의식은 또렷해서, 나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막내가 벌써 떠나버렸을까봐 걱정스러워 찾으며, 목이 마르다는 표현을 한다.

나는 겨우 메마른 입술에 물방울을 흘려넣어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해드릴 것이 없었다.


어제는 동생이 딱 5분의 면회허락을 받고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계신 듯하다.


자신의 생애 대부분을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해 몸이 바스러지도록 희생한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토록 고통에 괴로워해야 한다는사실이 참담하다.

머지않은 어머니의 마지막 나날들은 조금이라도 더 평화롭기를 바랐는데, 그런 사소한 바람이 이토록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일요일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동생은 일정을 일단 취소했다.

투석을 시작하는 오늘부터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더 걸릴 거라는 의료진의 말에 따라, 긴싸움이 될 거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 우리는 그저 어머니가 잘 버티고 이겨내어 주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쩌면, 이 불의의 휴가는 어머니와 좀더 가까이 있게 하려는 신의 뜻은 아닐까.

나는 지금 언제든 병원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놓치지 않을 절호絕好의 4주간을 확보하였으니까.


지난 5일밤, 입원실로 향하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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