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h My Lif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how Jul 21. 2023

나의 해.방.일지

_깁스, 지옥을 경험하다

지옥은 공간이 아니라 상황이라던 말의 의미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지난 6월7일 느닷없이 닥친 불운은 결국 오른손목 깁스로 이어졌다. 

처음 2주동안은 부기가 빠지길 기다려야 한다며 간이부목만 대고 생활했으나 마침내 그로부터 2주후 색깔도 촌스러운 초록색 깁스붕대에 단단히 오른쪽 손목을 저당잡히고 말았다.


무려 한달동안 갇혀지낸 오른 손목 깁스

다친 곳은 손목인데 손목만 잡아매는 것이 아니었다. 

팔꿈치보다 조금 아래쪽까지 결박당했다. 

무겁지는 않았지만 숨이 막혔다..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여름이면 특히 땀을 많이 흘리는 나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지경이었지만 아무리 파닥거려봐야 부질없는 노릇...

그저 내 것인 듯 아닌 듯, 잊은 듯 살아내야만 했다.


사고당일...시간이 흐르자 다친 부위가 부풀고 멍이 들었다...깁스하기 전 2주동안 간이부목을 대고 붕대로 감아둔 상태


나로서는 지난 6주간이 '지옥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점점 불볕더위가 이어지다가 장마까지 시작되고...찌거나 습도 90프로에 육박하는 우기의 나날 속에서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쏟아지고 초록색 깁스 안쪽으로는 빈번하게 축축하게 땀이 차올랐다. 

동생이 알려준 사지깁스환자를 위한 샤워용보호용를 즉시 구입하여 활용했다. 

지옥의 한가운데서도그나마 샤워할 때, 물이 닿지 않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상품이 아닐 수 없었다. 


깁스 방수커버를 검색하니 수많은 판매사이트가 나온다. 매우 요긴한  상품을 판매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커버를 두르고 샤워하기가 자유스러운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일단 자유로운게 왼손 뿐이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야말로 대충대충 비누칠하고 물뿌리는 정도로 끝난다는. 

오히려...커버 속의 깁스 안쪽에는 땀이 차서 샤워가 끝나도 축축하고 더욱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깁스를 한 뒤로는 매주 한번씩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고 의사말을 듣고 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진료비는 안 낸다. 산재처리가 된 이후로는 치료비나 약값도 내지 않는다.

초기에 쓴 진료비용도 곧 돌려준단다...ㅎ

지루함 속에서 하루하루 깁스에서 해방될 날짜만 손꼽아대기 시작했다.



마지막 3일은 참 너무 지루했지만 마침내, 7월18일에 깁스를 풀었다.

깁스를 풀었는데 손의 상태는 저렇다...

애초에 깁스를 했을 때부터 계속 눌리던 부분도 그렇고 6주동안 씻지 못하고 땀이 찼다 식었다하며 피지가 배출되지 못하고 눌어붙어 찌들었다. 

자세히보면 손목의 땀구멍에 점같은 피지가 까맣게 차있다. 우째 이런 일이....

봉인해제 바로 직후에는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국숫발같은 때가 끝없이 밀렸다.

 

찬물로 씻으며 문질러도 쉬지 않고 때가 나왔다....결국 병원에서 나온뒤 곧바로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사실...때가 찌든 것은 깁스안에 묵혀있던 부분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전에 마지막으로 가보고 이제야 처음 가본 사우나장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지저분한 얘기지만, 때가 그렇게 쉽게, 무한리필이라도 되는 듯 한정없이 쏟아졌다.ㅎ

이제 드디어 자유를 얻은 오른손까지 합세하여 열심히 때를 밀었으나, 아무래도 오른손은 매우 부자유스러웠다. 결국 등을 밀어야 할 때는 도우미에게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시간상으로 따지면 몇만 년만에 찾은 사우나에서 한꺼풀을 벗어던지고 나올 때의 기분은 날아갈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오른손이 자유롭지 못하다.


재활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왼손과 깁스했던 오른손의 관절 꺾임이 다르다.


깁스만 풀어던지면 금세 모든 일상으로 복귀할 줄 알았던 것은 그저 막연한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손목은 사진에서 보듯 앞으로도 뒤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일자로 꽁꽁 묶여있던 6주의 시간동안 손목관절은 굳어져버렸다. 곧바로 물리치료실로 달려가 물리치료를 시작했는데, 저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꺾으려하면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물리치료사의 말로는 적어도 한달은 매일 혹은 주 2~3회씩 꾸준히 열심히, 재활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저상태로 굳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집에서도 수시로 손목꺾기를 시도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굳어진 것은 손목만이 아니다. 

손가락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눌려있던 엄지손가락이 뻗어나오는 손바닥 부위도, 모든 손가락들도 열심히 놀린다고 놀렸음에도 (한계가 있었기에) 모두 부자유스럽고 통증이 이어지는 상태이다.

오른손목의 골절부위는 회복되는 대신 그외 오른손의 모든 부위가 아프다. 

피부조차 민감해진 듯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아픔이 느껴진다.

손목에서 이어진 엄지손가락 위쪽의 두툼한 부위도 아프다. 멍이 든 것처럼, 속으로 피가 뭉치거나 근육이 굳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이럴 줄은 몰랐었다...다들, 나도 마찬가지로 깁스만 풀면 당장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던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귀찮게 재활을 꼭 해야하나고 잠시라도 생각했던 스스로가 한심스럽다. 



끔찍한 족쇄와도 같았던 깁스의 감옥에서 해방의 기쁨을 되새기는 것도 잠깐,

산재휴가도 차감되어가는 이후의 나날들에 대해 재점검해야 할 것만 같다.


더없는 꿀직장인 줄만 알았던 빵공장에서의 작업적 부담감이 절실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 좋은데, 딱하나 냉동 창고에 드나들어야 한다는 점이 처음부터 부담스럽기는 했으나 산재사고의 당사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불시에 맞닥뜨린 휴가앞에서 낙심하면서도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직장복귀라는 과제가 더욱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흐르는동안 나는 빵공장에서 다시 일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김없이 냉동창고에 드나들어야 한다. 

끔찍하게 추운 냉동창고에 들어가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무사히 그 미끄러운 공간을 돌아 무사히 나올 수 있을것인가, 하는 질문이 자꾸만 내 안에서 맴돈다. 

트라우마라고 할 만하다.


해보지도 않고 못할 것같다고, 때려치우겠다고 하기도 뭣하고...그렇다고 결코 아무 일 없었던 곳이 아닌 그 장소로 돌아가는 것에는 두려움이 앞서고.


지루하고 아무렇지 않은 날들이 이어진다는 것은 축복이다.


난데없는, 돌발적인, 불시의 사고는 일상의 평화를 무너뜨리고 흐트러뜨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나간 시간을 곱씹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