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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Jul 23. 2023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블루스

_하나의 점을 향해 가시는 나의 어머니

tv N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얼마전 다녀간 동생이 볼 만하다기에 시간 넘쳐나는 이시절에 한번 맘먹고 다 봤다.


뜻밖에도 오랜만에 괜찮은 드라마, 역시 노희경작가.


화려한 출연진들의 좋은 연기는 탄탄한 극본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그들의 삶, 희노애락의 상황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 춰가며 사는 우리네 인생의 장면들이

제주 푸릉마을 사람들의 콧물 눈물 쏟아가며, 그럼에도 결국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정겨운 모습들에 오버랩되어 나는 종종  콧날이 시큰해지고 목이 메이곤 했다..


드라마 끝에, 떠오른 에필로그 자막가운데

...불행해지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는 구절이 기억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


고단하고 아프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 하루하루에서도 우리는 기쁨을 느끼고 조금더 잘 살기 위해 애쓰며 행복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극의 후반에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며 마지막 남은 생의 여정을 담담히 마무리하는 강옥동 할매,

그 모습에 내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져왔다.

 

자신의 지난 삶의 궤적을 스스로의 걸음으로 돌아볼 수 이었던 옥동 할매는 그나마 행복하겠다 싶었다.


나의 어머니는 지금, 요양병원에 자리를 잡았다.

6/5일에 급성담낭염으로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입원하여 중환자실을 오가며 회복하였으나 한달여만에 퇴원한 당신은 다시 인근의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콧구멍을 통해 유동식을 제공받는 비위관과 담낭에 연결된 주머니를 오른쪽 옆구리에 매달았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수없이 되짚어 본다...무수한 후회가 따라온다.


조금만 더 일찍 담낭염 징후를 알아차렸더라면,

담낭을 싹뚝 제거하는 수술에 동의했더라면,

비위관삽입에 동의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상황은 지금과 아주 달라졌을까.


요양병원으로 들어간지도 어느새 일주일 이주일이 되어간다.

신체의 모든 기능은 조금씩 더 많이 차례로 나빠지고 있다.

고혈압은 진작부터 진단받았고, 몇년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부정맥진단도 받았고 콩팥의 기능 또한 나빠지는 징후가 보였고 엊그제의 피검사에서는 당뇨 전단계의 징후도 나타났다고 한다.

혈액이나 소변에서 당이 검출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온 90여년 세월 동안,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뛰어온 심장과 콩팥과 담낭과......

그 모든 신체기관들은 어쩌면, 재생불가할 뿐 아니라, 불가역적으로만 진행되고 오로지 단 하나의 점을 향해서만 급속하게 전진할 뿐이다.


체중은 40kg이 채 안될 것이다.

처음 요양병원에 들어갈 때 40킬로그램 정도라고, 침대째로 들어올려 측정한 체중을 전해들었다.

현재 진행형 어머니의 체중은 지금도 조금씩 더 줄어들고 있는 것같다.


엊그제 면회를 갔을 때 어머니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바짝 말라 뼈에 가죽만 남아있는 어머니가 입술을 달싹여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비위관을 통해 주입되는 유동식이 어느 때는 소화가 안되어 그 다음 끼니는 건너뛰기도 한다니...그런 이유로 어머니는 하루 겨우 1200칼로리의 영양분도 충분히 소화시키지도 흡수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저 비위관을 빼고 입으로 밥을 드시면 금세 살이 차오르고 힘이 생겨 어머니가 다시 벌떡 일어나실 것만 같다.


서로 몇 마디만 건네면 바로 말싸움이 되어버려 '도무지 엄마랑은 아무말도 하기 싫다'고 악을 쓰던 나, 그시절 그 기운넘치던 어머니가 그립다.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을까. 그냥 져줄걸.

평생 자신의 뼈와 살을 깎아가며 이토록 살게 해준 내어머니에게 어쩜 그리 참담하게 굴었을까.


언니는, 어머니의 앙상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예지자처럼 말했다.

엄마, 참 이쁘네, 마음이 편안해 보여. 잘 가실 것같아.

나는 저 말이 아주 못마땅해서 속이 상했다.

왜 자꾸 간다, 소리를 할까.

내가 보기엔 옆구리의 주머니만, 비위관만 제거하면 금방 회복되실 것 같은데.


돌아오는 길에 언니가 자꾸 말했다.

지난번과도 다르게 엄마는 이제 모든걸 내려놓은 모습이네. 내가 보기엔 얼마 남지 않은것 같은데, 너도 자꾸 무얼 더 해드리려 하지마. 그냥 잘 편안히 보내드리자.


당뇨전단계로 보인다는 간호사의 말에, 배가 고프다고 하시니 식사량을 조금더 늘려야 하지 않느냐는 나의 바람에, 언니는 그렇게 말한 것이다.

마치 이제 모든 것을 다 알 것같다는 표정으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써야 죽더라.

지금 어머니의 몸은 그냥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이고 몸의 기능이 하나씩 나빠지는 것은 그역시 당연한 일이야.

이제와서, 자꾸 무슨 약을 쓰는게 의미가 있을까...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어머니가 편안하게 가시도록 도와주는 것뿐이야.


그럴까, 그럼에도 나는, 도무지 저 해사한 어머니의 얼굴에서 죽음을 읽을 수 없다.

죽음을 읽고 싶지 않다.

인정할 수가 없다, 어머니가 이제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그 말을.


어머니는 여전히 온몸 이곳저곳의 통증을 호소한다.

병원퇴원 당일에는 갑자기 왼쪽 골반부위가 아프다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는데 그 통증은 지금도 이어진다. 며칠후 진료를 위해 병원에 가면 의사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어머니가 고통없는 시간을 단 하루라도 지낼 수 있었으면 한다.


급성담낭염으로 입원하며 사전고지되는 무수한 수술의 위험성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단 싹뚝 잘라내주세요!라고 단호하게 동의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악수惡手였을까.



이제 나는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으려나...

어머니의 죽음은 아주 어렴풋한 현실이라는 생각만으로도, 그 상실감은 그 어떤 죽음과도 견줄 수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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