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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Mar 05. 2024

안녕, 엄마!

_20240209 세상을 떠난 나의 어머니께

엄마, 벌써 한달이 돼가요.

당신이 떠나가신지...

세상에서 가장 밝고 따뜻했던 나의 빛,

그로부터 사위는 어쩐지 어두워지고 나는 엄마가 떠난 어둠 깊은 골목어귀에 남겨졌어요.

 

2월9일, 그날은 올해 설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이었어요.

오전 7시44분...힘겨운 어둠이 사라지고 낡이 밝아 어쩌면 떠나는 엄마의 영혼 그뒤로 긴 그림자가 드리웠을지도 몰라요. 밤새 너무 힘들었죠, 엄마.


그 3주전, 갑작스런 활력징후의 이상이 감지되어 요양원으로부터 비상연락이 왔어요.

퇴근시간 무렵이었기에 곧바로 달려갔더니, 엄마는 호흡이 무척 가쁘고 맥박이 제대로 잡히지 않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어요.

가쁘게 몰아쉬는 숨결만이 아직 엄마가 살아계시다는 증거인 것처럼.

처음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잠시 우리는 갈등했어요.

-어느 병원으로 갈까요...?

-더 큰병원으로...라고 대답하다가 저는 몇달전 언니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어요.

엄마를 더이상 병원에 맡기지 않기로...마지막 순간이 예견될 때는 지금의 침상에서 더 이상의 고통없이 잠자듯 돌아가실 수 있게 해드리기로.

요양원관계자들은 모두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것같다고 조심스레 말했어요.

어머니를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방'으로 옮길 때는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왔어요.

정말 이렇게, 여기서 끝이 나는건가 싶어서. 나는 아직 엄마를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뜻밖이었죠.

그후 언니와 오빠가 달려왔고 엄마는 다시 살아났어요.

다음날에는다시 원래의 방으로 돌아왔고, 더욱 신경써서 돌보게 된 요양보호사들과 웃으며 의사소통을 할정도로까지 활력이 좋아졌다고 했죠.

다행스러웠어요, 엄마.

나는 아직 엄마의 손을 만지고 얼굴을 닦아드리고 눈을 맞추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다음주에 다시 한번 신체활력이 급락하는 위기가 닥쳤어요...그때는 언니가 먼저 전화를 받고 달려왔었죠, 엄마도 다 알고 있지?

전날 새벽부터 다시 조짐이 안 좋다며, 맥박이 안 잡힐만큼 약하고 의식이 혼미하다며.


그래서 우리는 두번째 마음의 준비를 해야했어요.

그러나 이번에도 어머니는 다시 살아났어요. 마지막 혼신을 다해 타오르는 불꽃처럼, 마지막 남은 당신의 에너지를 모두 끌어내 듯이. 그래서인지 엄마는 다시 숨을 고르게 쉬고 눈을 맞추며 조그맣게 반짝였어요.

그렇다고 위기상황이 두번씩이나 닥쳤던 상황의 이전만큼 회복되지는 않았어요.

그럴수록, 요양원 관계자은 우리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조언해주었어요.


나는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에 엄마 옆 빈 침상에서 함께 밤을 지냈어요.

그깟 하룻밤정도 잠을 못자는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밤새 엄마의 약한 숨소리가 끊어질듯 끊어질듯....한편으로는 허공을 향해 자꾸만 팔을 움직이는 엄마를 살펴보는 일은 내가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그리고 너무 늦게 알렸다가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도 못할까 걱정스러운 동생에게 언니가 연락했어요.

-네가 오는게 좋겠다. 아무래도 오래가지 않을 듯싶으니 지금 오는게 좋겠다.

동생은 그로부터 곧바로 비행기에 올라 엄마곁으로 달려왔어요.

그게 딱 1주일 전이었죠.

바로 전날,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방으로 다시 옮겨졌기에, 가족들이 상주하며 어머니 곁을 지킬 수 있었어요. 그 전날 밤 내가 엄마와 함께 지냈고, 다음날 아침 한국에 도착한 동생은 그날부터 엄마곁에서 자고 먹고하며 꼬박 1주일을 지켰어요.

그 1주일동안 엄마의 남동생들과 조카들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러 들렀어요.

그 중간에 잠시 회복되는듯 막내딸을 알아보기도하고 눈도 맞추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모든 신체능력은 서서히 잦아들어갔어요. 그중에서도 가래가 끓는 듯한 숨소리는 갈수록 심해지고 맥박은 엄청 빨랐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잡히지 않을 정로도 희미해져갔어요.


모두들, 이제는 정말로 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하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는 임종의 징후라든가, 임종이 가까운 시점의 신체적 변화상황 등에 관해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동생과 함께 다니기 시작했던 교회의 목사님께서 찾아와 마지막이 될지도모르는 기도와 축원을 해주셨죠.

그렇게 가장 나빠져가는 엄마의 마지막 1주일의 시간을 함께 했던 내동생_막내딸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누구보다도 깊은 슬픔을 간직하게 되었겠지요.

결과적으로 마지막 밤이 되었던 2월8일 오후, 퇴근 후 내가 들렀을 때 엄마에게서는 임종 징후의 하나인 손발끝이 조금씩 차가워지는 현상이 있었어요.

동생은 어쩐지 그날밤을 혼자 있기 걱정스러워했어요.

저혼자 있다가 엄마의 마지막을 보게 되는게 슬펐나봐요. 그래서 나도 그날 함께 그 곳에 머물렀죠.


초저녁부터 밤이 다가도록, 엄마의 고통스런 숨소리는 아주 조금씩 여려져갔고 손발이 조금씩 더 차가워져갔어요. 이미 몸은 뼈와 가죽만 남은듯 핼쓱하게 야위어버렸고 산소호흡기만이 어머니 생명의 촛불을 유지하는 장치였지요.

하나뿐인 엄마의 죽음이 머지 않은 순간에도, 동생과 나는 깊은 밤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참아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간이침대에서 졸다깨다가를 반복하며 순간순간, 고통스럽게 이어지던 엄마의 숨이 멎은 것은 아닌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 엄마의 숨결을 살피고 얼굴을 어루만지고 손과 발을 주물러보곤 했어요.


2월9일, 어느새...아침이 밝았어요.............................

엄마가 더 오래 내 곁에 있어주면 정말 좋겠지만, 저토고통스러운 숨소리를 듣는것은 너무나 괴로워서 한편으로는 차라리 어서 편안해지셨으면....하고 진심인듯 아닌듯 수없는 번민의 밤이 지나갔어요.

그러나....결국 동생과 내가 황망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엄마의 숨소리는 끝내 잦아들어갔어요.

한번씩 멈췄다가 몰아쉬듯 다시 이어지다가...다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지는 간격이 몇번, 점점 짧아지다가 끝내...........다시는 아무런 한숨도 몰아쉬지 않으셨어요.


엄마,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고요한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엄마의 귓가에 마지막 인사를 서둘러 건네었어요.

엄마,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딸 잊지 말아요!

차마, 더 살아있어 달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어요...그 마지막시간들이 얼마나 힘겨우셨을지 너무나 생생하게 지켜보아왔기에.

지난 봄부터 시작된 끔찍한 투병의 시간을 지켜보았기에 그 시간들이 얼마나 엄마를 괴롭혔을지 충분히 짐작하기에. 나는 그래서 그냥 엄마를 안녕히 떠나보내기로 마음먹었어요.


오래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되었던
고단하고 힘겨웠던 생의 번민과 희노애락도 모두 털어버리고
엄마, 이제는 다만 고통없는 평화와 안식의 시간 속으로
영면하시기만을 기도할 게요.

어느덧 한달여가 지났어요.

엄마가 지내시던 공간들 꼼꼼히 갈무리해둔 물건들을 되짚으며 엄마를 생각했어요.


이제 우리는 엄마가 생각날 때면 엄마가 있는 수목장 묘원으로 갈게요.

지난해 말즈음 언니와 함께 엄마의 수목장 자리를 미리 마련해둔 것이 다행이었죠.

작은 소나무 아래 고요히 자연으로 돌아가 영겁의 시간속에 잠든 엄마, 안녕!



사랑과 눈물로 나를 키우신 사랑하는 나의 엄마,

당신이 돌아가시고나서야 엄마가  나를 위해 흘린 눈물과 사랑의 크기를 짐작하다니요....



                                                               20240305/둘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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