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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Jun 13. 2024

3.당돌한 면접

-미래지향적 요양보호사

더이상 생산직에서 버티는 것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쉽지 않다는 판단으로, 나는 가슴 깊이 품고 있던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유심히 살펴보았다.


수년전 어머니가 급격히 노쇠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 일어난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관심, 그 덕분에 생산직 월급생활자로 살며 새벽시간을 이용해 과정을 밟아 취득한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


나역시 어떤 사회적 편견의 편협한 소유자였기에, 그전까지만해도 요양보호사보다는 이왕이면 호칭도 어쩐지 더 그럴듯 해보이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활용해 취업하고자 한동안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50대 중반의 세상물정 모르는 아줌마의 꿈같은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사실이 수차례의 면접과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그렇다면그럼에도! 요양보호사로서는 비교적 젊은 나이 혹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연령대가 바로 내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요양보호사는 체력만 되면, 최대 70세 무렵까지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0세를 살게 될까봐 갈수록 두려운 이 시절에, 노년을 막막한 무위의 시간으로 채우기보다 70세 넘어서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희망적 가능성을 내포할 뿐 아니라 더욱이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노인복지시설에서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야말로 뜻밖에도 무척 미래지향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출구를 찾는 새앙쥐처럼 불현듯, 요양보호사라는 전망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운명이다!


수개월째 어머니가 누워계시는 요양원을 드나들며 요양보호사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면서 언제부턴가 그들속에 나의 모습을 섞어넣어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 그림은 더욱 진지하게 채색되어갔다.

그즈음 곁에서 일주일째 동생이 지켜보는 특별실에서, 어머니의 생명은 하루하루 분명하게 꺼져가고 있었다.

눈 앞에서 어머니의 생명이 소멸되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인지, 나는 뜻밖에도 절실했다.


마침내, 나는 요양원대표에게 절박하고도 당돌한 면접을 요청했다.

나,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싶다. 사람이 필요할 때 진지하게 채용을 고민해달라.

요양원 대표는, 나에게 충분한 자격은 있으나 요양보호사 경력이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는데, 할 수 있겠느냐....며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끝내 어머니가 다시는 회생하지 못하고 눈을 감으신 얼마 후, 나는 요양원 대표의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요양보호사 한분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새로 사람이 필요한데, 일을 한 번 해보시겠어요?"


"네, 그럼요! 물론이죠!"


그전에 이미 도시락공장에 퇴사의사를 밝혀두었었기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어졌다.

내가 요양보호사가 되고자 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동생과 언니는 뜻밖에도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 일이 고될 수는 있어도 생산직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있는 일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나는 기뻤다. 


내가 처음 생산직에 뛰어들었을 때도 자매들은 나를 응원해주었던 지지자들이다.


실제로 생산직은 한없이 고되었다.

그렇기에, 내가 주목한 것은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는 점뿐이었다.

물론, 내가 어떤 재화를 생산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그것이 세상에 나가 소비되는 것을 생각하면 소박한 보람이 없지 않지만 생산과정에는 고된 육체노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무한반복된다는 점과, 무엇보다도 육체노동이기에 정년(대략60세 전후)이야말로 뛰어넘을 수 없는 격벽隔壁이라는 사실이 종종 사람을 불안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래, 그곳에서 5년을 버텼으니 이제는 충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스로 선택한 낯설고 고되고 때로는 의미있었던 그 시간들이 결코 나를 비껴가지 않았을 뿐더러, 앞으로의 삶의 토양을 더욱 단단하고 기름지게 할 거름이 되어주리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까지 그래왔듯
용감하고도 무모하게 요양보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뜻밖의 결심에는 나의 어머니가 계셨다.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돌보며 지나온 시간의 끝에서,
당신이 돌아가실 때까지 머무르던 요양원에 드나드는 동안
나의 가치관이 변화되었음을 느낀다.
더 쉽게 말해, 어머니야말로
내가 요양보호사가 될 결심를 하게 만든 장본인이시다.
 
어머니가, 나를, 운명적인 길로 이끌었다.

그리고 2024년 2월23일, 어머니가 계시던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고령화사회/고령사회

UN에서 정한 기준에 의하면 고령화사회는 총인구 중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일 때, 고령사회는 14% 이상일 때,초고령사회는 20% 이상일 때를 뜻한다. 여기서 고령인구(노인)란 65세 이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인구 14.2%를 기록하며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이는 2000년 고령화사회에 들어선 지 17년 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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