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내가 집에서 걸어서 15분 남짓, 승용차로는 불과 7~8분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을 결심하는 과정에 넘어야 할 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남편이다.
남편역시, 나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나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특히 언제나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 때까지 문제점을 캐고 파헤치고 분석하는 집요한 분석가에 다름 아니다.
그런 성향을 알기에 5년 전 맨 처음 생산직에 뛰어들 때도, 낮 새와 밤 쥐는 알더라도 남편은 미리 알지 못하도록 은밀하고 음침하게 직종 탐색과 탈출과정을 감행해야만 했다.
그후, 몇 차례 이직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그런 은밀한 몸짓은 어쩔 수 없이 반복되었고, 결과적으로 남편은 늘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느날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제발, 더이상 반대하거나 잔소리하지 않을테니, 미리 알려라. 이유가 있어서 이직을 하는 것일테니, 네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다만, 남편으로서 그런 일은 나도 미리 알아야 하지 않겠냐...
뒷북치듯 통보받으면 어쨌거나 서운하고 황당했던 모양이다. ㅎㅎㅎ
그는 언제나 나의 지지자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글만 쓰기를 바라는 순진한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이 자꾸 딴지 걸거나 잔소리를 해봐야 내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비로소 인정하게 된 그로서는 마지못해 스스로와 타협을 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생산직종에서 일하는 것 자체를 황당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던 초창기의 태도에서 그 정도까지 너그러워진 것만으로도 나는 땡큐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걱정은 나의 안녕이다.
안녕安寧.
이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근심과 소망이 담겨있는지 나는 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내가 요양보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로 은밀하게 요양원 대표와 면접을 보고 취업이 결정될 무렵까지도 남편에게 알리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왜냐하면, 요양원의 근무방식이 일반적인 주5일 근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주주야야휴휴라고 일컫는 근무방식은
오전 9시~오후6시까지의 주간근무 이틀,
오후6시~다음날 오전 9시까지 야간근무 이틀과
이틀간의 휴무가 반복되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5일 오전9시~오후6시까지 근무하고 토/일요일은 휴무가 반복되는 일반적인 근무패턴과 분명히 다르기에, 숨을 참듯 시치미떼고 있다가 내일부터 요양원으로 출근할거야, 혹은 지난주부터 옮겼어!라고 일방적인 통보가 더이상은 불가능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수하게 응원하는 언니나 동생과 달리, 야간근무가 포함된 업무방식 때문에 남편이 쉽사리 나의 새로운 결정을 수긍하지 못할 것같았다.
눈치를 보다가...근무시작 일자가 정해질 무렵, 남편에게 드디어 운을 뗐다.
일단은 그리 부정적으로 반응하지는 않았다.
집에서 매우 가깝고, 어머니가 계신 곳이며 그곳의 환경은 자신도 자주 드나들며 자연스레 알고 있었기에 긍정적이었다.
그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한반복되는 육체노동이 아니라는 점, 생산직보다는 휴게시간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을 환영했다.
다만, 역시, 내가 애초에 우려했듯 근무방식에 대해 문제를 삼았다. 요양원근무의 가장 큰 특징이 주주야야휴휴라는 근무방식이기에 그점을 설명하는게 가장 중요했다. 근무방식에 대해 알게 된 남편이 반론을 시작했다.
야간근무는 통상적인 8시간이 아니라 15시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면서, 8시간 근무라면 오후 6시에 출근하였다가 새벽3시에는 퇴근을 해야지 왜 다음날 오전 9시에 퇴근을 하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요양원의 야간근무는 휴식시간 6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이유는, 밤시간에는 요양원 어르신들도 모두 취침하는 시간이기에 그시각에 요양보호사는 두사람이 번갈아 쉬고 한번씩 라운딩을 돌면서 문제가 있는지 점검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은 주어진다.
따라서, 주간근무일 때 최저시급(놀랍게도 요양보호사의 주간근무 급여는 최저시급으로 환산되고 있었다)으로 환산하는 급여 209만원에 야간근무 수당 몇십 만원이 더 책정돼 있었다.
굳이 정확히 하자면 오후6시부터 새벽3시까지 근무 후 퇴근하고 새벽3시부터 오전 9시까지근무인원을 투입하면 되는것이다. 그러자면 새벽근무 인원에게 월급여가 책정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그시각은 모두 깊은 잠에 드는 시간이기에 돌발변수가 있지 않은 대부분의 날에는 그저 잠만 자는 근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시각을 위해 인건비를 투자할 곳이 과연 있을까(있을지도?). 그냥 추가 수당으로 몇십 만원 더 주는게 요양원 입장에서는 훨씬 남는 장사인 것이다.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관리인원이 상주해야 하는 시설이기에 그런 것이다.
아무튼 남편은, 주간근무는 그렇다치고, 야간근무 시간이 8시간이 훨씬 넘는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이틀의 야간근무 후에 이어지는 이틀간의 휴무도 정확하게 48시간이 아니라는 점을 따지고 들었다.
며칠에 걸쳐서 그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려가며, 종이에 원그래프를 그려 실제 근무시간을 표시해가며 분석을 시작했다.
깐깐하게 묻고 따지는 남편과 달리, 당사자인 나는 물론 언니와 동생도 남편처럼 야간근무의 실제 시간이 15시간이라는 사실에는 별관심이 없었다. 2인1조로 야간근무하는시간동안 동료와 번갈아 최소한 4시간씩은 휴식-잠을 청할 수 있으므로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차라리 오후6시부터 8시간(혹은 휴식시간포함 9시간)후에 퇴근을 한다면 이해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새벽3시경 귀가를 하더라도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야간에 잠을 청해가며 번갈아 불침번을 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나의 건강을 해칠 것이 분명하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다만 나의 안녕이 자기 삶의 목표인 것처럼,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다.
나는 그것을 지나친 기우杞憂라고 대꾸하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무조건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동료와 번갈아 4시간씩 쉬면서 잠을 자면 되니까 문제될 것 없고 이틀간의 야간근무 후에는 이틀을 쉬니까, 조금 부족했던 잠은 그때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다들 하는 일인데 왜 나라고 못하겠느냐며, 당신의 걱정을 잘 알고 있으니 몸 상하지 않도록 더욱 신경쓰겠다고 그럴듯한 다짐을 해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뜯어말려도 정해진 일정대로 출근을 시작할 것이고 요양보호사로서 새로운 시간을 살아갈 것임을 나만큼 잘 아는 그였기에, 남편은 어린아이가 물가로 첨벙거리며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근심많은 아비와도 같은 심정으로 나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남편과의 이러한 공방을 굳이 장황하게 되새기는 이유는, 결국 그의 걱정이, 나의 안녕을 우려하던 그의 조바심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 어머니가 계실때 정말 열심히 돌보아주던 두사람의 요양보호사 덕분에 요양원에서 자신있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68세의 Y선생은 요양원 대표에게 "제가 잘 가르쳐서 일 할테니 유OO 씨를 채용해주세요."라고 적극적으로 나의 채용을 지원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더불어, 입소자인 어머니의 보호자일 때와 요양보호사의 자격일 때, 그 요양원을 향하는 나의 관점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