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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Oct 23. 2024

10.봉사와 헌신의 의미

_요양보호사의 봉사와 헌신은 무조건적인 희생을 원칙으로 할 수 없다.

왕으로 대접받고 싶다면, 아내를 왕비로 대우하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것은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따라 나의 위상이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자신은 왕처럼 존중받고 대우받고자 하면서 상대방은 제 발톱의 때만큼도 못하게 여기는 가부장의 예를 들은 적도 있다.

예전, 어떤 뉴스에서 한 가정의 남편이 폭군처럼 군림하며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독하는 것은 물론, 생활비조차 자신이 통제하며 매일 어떤 반찬을 만들라는 지시를 쪽지로 전하며 딱 그정도의 돈만 주면서 하인처럼 부려먹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로보트가 아닌 이상, 하나의 인격체인 그 아내는 그토록 숨막히는 수십 년의 세월 끝에 이혼을 요구하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저항에 나섰다.



지난 2월말 즈음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일부 보호자 혹은 요양원 입소당사자인 어르신들의 무례하기 그지없는 사례를 실제로 목격했다.

요양보호사가 실제로 거동이 불편하고 생의 마지막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어르신들을 돌봄에 있어서 기본적인 소양은 물론, 봉사와 헌신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요양보호사들의 봉사와 헌신은 무조건적이고 대가도 없는 행위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무조건적이거나 대가가 전혀 없어서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의 극단적인 예라는 사실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다.

반면, 요양보호사가 어르신들을 돌보는 행위는 결코, 현실적으로 무조건적일 수가 없다.

부모님의 사랑처럼 맹목적인 헌신을 담보로 할 때만 가능할 그것을  요양보호사들에게 바란다면 그역시 과한 욕심이고 지나친 착각일 뿐이다.


요양보호사는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쌓고 오랫동안 수련한 전문 의료인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가능한 범위내에서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쏟아 습득한 최소한의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요보호대상자를 용인된 범위내에서 성심껏 돌보는 자들이 아닌가.

요호보대상이 그 자신의 부모나 친지일 수는 있다. (그 자신의 집안에서 상시적으로 돌보는 경우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런 경우, 요양원과 같은 복지시설에서 활동하는 요양보호사라면 자신의 공을 들여 완성한 합당한 자격과 허용된 돌봄의 범주내에서 그들을 돌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업인으로서 요보호대상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활동(봉사와 헌신)에는 최소한의 대가, 그 성심에 응분하는 대가는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


그 대가라는 것도, 앞서도 언급했듯 요양보호사들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 아니 다른 말로, '돌봄의 노력'에 비해서는 아직까지 충분한 수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그 노동(돌봄의 노력)이 언뜻보기에는 책정된 보수만을 바라고 행해진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그 현장에서 겪어본 바에 의하면 그 돌봄의 노력 안에는 결코 말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과 태도와 가치의 알고리즘이 존재한다. 그것은 또한 일정한 패턴이나, 일관된 하나의 언어나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수없이 변주된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주하는 다양한 돌봄의 상황에서 요양보호사는 가장 좋은, 가장 도움이 되는 돌봄을 실천하고자 애쓰는 자들이다.

그 무수히 변화하는 알고리즘 상황에서 단지 그들이 고려하는 것은 단순한 대가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돈만 바라고 선뜻 덤벼들 수 없는 일이며, 그 일을 선택하는 자의 마음깊은 곳에는 바로 봉사와 헌신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 노구의 어르신들을 돌보는일, 무한돌봄이라고 확신한다.


글이 삼천포로 빠졌지만, 돌봄대상인 어르신과 보호자들이 요양보호사들에게 기본적으로 봉사와 헌신의 자세를 바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내 경우에도 내 어머니를 돌봄에 있어 최적의 돌봄을 실행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보호대상자와 보호자들요양보호사를 종종 폄하하는 태도는 결코 용납되거나 이해될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신의 능력 안에서 봉사와 헌신의 마음으로 돌봄노동을 성심껏 수행하는 요양보호사들을, 어르신이든 그 보호자들이든 간에 함부로 대해도 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요양보호사가 되어 처음 일을 시작했던, 내 어머니가 계셨던 그 요양원의 유명한 여자어르신 정씨의 경우가 생각난다.

그분은 의사표현도 잘 하셨고, 더 나아가 요구사항이 많은 편이었다.

정신은 온전하스스로 거동이 불가한 체력애 더하여 약간의 파킨슨 증상은 손떨림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식사시 스스로 수저질을 하기는 하지만 그릇에서 입까지 수저가 가는 동안 대체로 어쩔 수 없이 음식물이 절반정도는 줄어들게 된다. 그럼에도 음식에 대한 집착이 심한 편이어서, 식사시간이나 간식을 기다리는 게 어쩌면 하루의 낙이라고 생각될 만했다. 식사시간이 다가오면 정씨 어르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언제나 제일 먼저 이렇게 말했다.


"내 반찬 갖다주세요. 물김치, 호박샐러드... 내 반찬 갖다주세요... 내 반찬 갖다주세요...."


식사준비를 시작하면 요양보호사들은 앞치마와 물컵 등을 거실에 있는 공용 식탁 위에 세팅하는 작업을 먼저 한다.

그리고 거동이 가능하여 공용식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분들 외에 거동 불가하거나 떠먹여드려야 하는 분들은 자신의 침상에서 딸려있는 간이식탁을 펼치고 침상을 올려 앉힌자세로 식사가 제공된다.


정씨 어르신도 거동이 매우 어려운 경우였다.

침상에서 내려오자고 하면 하지 못할 것은 없으나, 그러자면 휠체어를 침상에 붙여놓고 침상을 앉은 자세로 일으킨 뒤 어르신을 껴안듯 등뒤로 붙잡아 들고 순식간에 휠체어로 옮겨 앉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두 다리에 힘을 있는 경우는 잠시라도 발을 버티고 서준다면 요양보호사의 일은 훨씬 수월해진다. 그러나 정씨 어르신은 제 다리에 힘을 주고 서지 못한다. 나로서는 못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순간적으로 휠체어로 몸을 이동시켜 앉힌 뒤 거실로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본인에게도 무척 힘이 드는지, 가족면회를 위해 면회실로 이동하는 경우 외에는 거의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하루 세끼의 식사도 침상에서 이루어지는데, 그때마다 어르신은 가족들이 가져다 맡긴 본인 입맛의 반찬을 끼니때마다 챙겨달라고 요청하셨다. 물론, 어르신들 개개인의 입맛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제공되는 반찬들이 언제나 먹을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정씨 어르신처럼 몇몇 분들은 굳이 자기가 좋아하는 밑반찬들을 갖다놓고 드시며 끼내 때면 잊지 않고 자신의 반찬을 챙겨달라고 요구하신다.


그것을 끼니 때마다 챙겨드리는 것 또한 요양보호사들의 당연한 역할이다.

그런데, 정씨 어른신의 경우는 그 요구가 조금 지나쳤다.

보통 테이블세팅(물과 앞치마와 휴지놓기)은 배식시간보다 최대 1시간~30분전에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시작부터 정씨 어르신은 반찬을 가져다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테이블세팅이 끝나고 식사배식 직전에 침상을 올려 앉힌 자세로 만들고 앞치마를 입히는 상황에서 개인반찬을 갖다 드리는데 그분은 언제나 제일 먼저 '내 반찬 갖다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대부분 요청이 있거나 없거나 처음부터 가져다드리는데, 바쁠 때는 그러지 못하기도 했다.

그럴때면 그분은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관심이 있기에 요양보호사들이 반찬가져다 주는 일을 잊어버릴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기에 우리는 그분의 요구에 가능하면 즉시 따르려 노력했다.


그 다음으로는 간식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삼시세끼를 침상에서 해결하는 정씨 어르신의 경우처럼 활동량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경우는 간식도 마음껏 드릴 수가 없다.


그이유는, 언젠가 한번은 그 어르신이 옆에 쌓아두었던 보리빵 여러 개를 한번에 욕심껏 씹어삼켰다가 크게 얹히는 바람에, 얼굴에 청색증이 올 정도로 심각해지고 급기야 응급실까지 실려갔던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겪은 후에도, 집에서 보내온 간식을 다른 사람이 먹을까봐 늘 걱정스러운 정씨 어르신은 머리맡에 그것들을 모조리 쌓아두고 매일 갯수를 세어볼 아니라, 허겁지겁 먹어치우곤 했다. 그러다 또다시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이 생길까봐 요양원근무자들은 모두 노심초사하여 여러차례 주의를 주었으나 소용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요양보호사들은 특히 그분의 간식제공을 강제로 제한하기로 했다.


수차례 어르신을 설득하여, 간식들은 우리가 따로 보관하고 일정시간에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후에도 어르신은 수시로 간식을 원했고, 심지어는 식사가 끝나자 마자, '간식주세요'하고 요청했다.

그야말로 숟가락 빼기가 무섭게 간식을 먹겠다는 것이니, 돌봄수행자들로서는 제한을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방금 식사끝났는데 곧바로 간식을 드시다 체하면 어쩌시게요...조금 있다가 간식시간에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설명하고 달래어야 한다.

그러나 어르신도 그냥 수긍하지 않고, 배가 고프다며 얼른 달라고 일단 떼를 쓴다. 식사를 죽으로 드시는 정씨어르신은 그것을 1/3정도밖에 드시지 않았다.

손이 떨려 수저가 흔들리는 바람에 수저질을 많이 하지 못하는 탓도 있는 듯했다.

스스로 식사가 쉽지 않으면 먹여드리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돌봄의 원칙에는 본인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사용하도록 돕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수저질을 스스로 할 수 있은 어르신들은 가능하면 더디고 오래 걸리더라도스스로 드실 수 있도록 기다려주도록 한다.


바쁘고 빨리빨리 해치워야 하니 요양보호사가 한 수저씩 푹푹 퍼서 입에 쑥쑥 넣어드리면 어르신은 그저 능력껏 씹기만 하면 서로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니다.

그렇게 더디게 한수저씩 드시던 분들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순간부터 정말로 그나마도 못하게 되는 시점이 오고야 만다. 정말로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어지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능력을 사용하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정말로 식사때마다 붙어앉아 떠먹어드려야하는 분들도 계시다.

파킨슨이 매우 진행되어 가만히 누운 채로도 24시간 온몸을 떨고 계시는 분이거나 이미 사지의 운동능력이나 체력이 다하여 침대에 누운채 스스로 아무것도 못한 채로 눈만 뜨고 계시는 분 등...


어떤 경우는, 스스로 식사가 가능한데도 남이 떠먹여주는 것이 부러워서인지 아니면 진짜로 기운이 없어서인지 이해가 쉽지 않으나, 어리광부리는 아기처럼 먹여달라고 떼를 쓰는 어르신도 실제로 있었다. 

그럴 때가 가장 난감한 경우였다.

안 먹여주면 안 먹겠다고 등돌리고 누워서 시위라도 하면 식사배식-정리시간이 끝나도록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럴땐, 어쩔 수 없이 협상을 하게 된다.


오늘은 먹여 드릴게요, 다음부터는 혼자 드셔야해요, 어르신 그렇게 안 드시면 기운이 더빠져서 안되잖아요....


가끔은 정씨 어르신도, 특히 심하게 손을 떠는 날은 먹여드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식사량이 많지는 않았다. 손이 떨려 많이 못 드시나 싶었으나 먹여드려도 몇숟갈 드시면 그만 먹겠다고 고개를 저으신다.

늘 그 정도밖에 식사를 못하시니 당연히 간식으로 배를 채우려하는 것도 맞는 듯했다.

혹은 간식으로 배를 채워버리기에 정작 식사시간에는 죽이든 밥이든 입맛이 나지 않는 것일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 생각해보면, 정씨 어르신과 우리들은 늘 간식을 달라느니 안된다느니 하는 이유로 씨름을 해야했다.

그 문제에 있어서 딸은 무조건 엄마 편이었다.


"저희 엄마는요, 먹을 것을 머리맡에 쌓아두고 계셔야 합니다. 집에서도 항상 그랬어요. 자신이 먹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간식을 드실 수 있게 해주세요!!"


간식에 관해 딸이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 먹고싶을 때 마음껏 먹도록 해줄 수 없는 이유를 수 없이 설명해도 딸역시 막무가내였다.

특히 그녀는 우리 요양보호사들을 불신할 뿐 아니라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더욱이 정씨 어르신은 자신이 간식을 먹고 싶을 때 주지 않는다며 딸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고자질하곤 했다.


그러면 곧이어 딸이 전화를 걸어와 따졌다.

자기 엄마 말대로 따르라는 뜻이다.


하라면 할 것이지, 니들이 뭔데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따지고 드느냐는 뉘앙스가 넘쳤다.


특히, 가끔 요양원을 찾아올 때면 그녀는 정씨 어르신의 방까지 직접 들어왔는데(원래 요양원은 별도의 면회실에서 면회를 하도록 되어있으므로,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방까지 가족들이 들어오는 것을 원칙적으로는 금지하고 있었다. 경우에 따라 허용되는 경우는 있으나, 정씨어르신의 경우는 예외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제 어머니가 계시는 방까지 거실을 십여미터 가로질러 가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거나 근무중인 요양보호사들과 눈을 맞추거나 눈인사를 하거나 하는 경우가 없었다.

정씨 어르신은 파킨슨이 서서히 진행되는 상태로, 집에서 24시간 돌보아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남편도 생존하시나 아내를 돌보기는 힘들고)그래서 가족들이 요양원으로 보낸 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보는 자식들, 가족들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같았다.


자신들이 돌볼 수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우리에게 맡겼으니 최선을 다해 잘 돌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데도 그 딸은 그저 고고하게, 나는 나의 어머니를 보러 왔을 뿐, 너희들과는 상관이 없으므로..하는 태도라고나 할까.

그 뿐이 아니다, 어머니를 보러 왔으니, 빵쪼가리든 뭐든 한두 가지 먹거리를 가져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요양보호사를 불러 그 음식물의 제공원칙에 대해 알려주거나 그날 본인이 점검한 어머니의 상태나 침상이나 방의 상태 등등에 대하여 논평을 하고 본인이 느끼기에 시정해야 할 것 또는 요구사항을 이야기할 때도 언제나 서슴없는 반말로 일관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와 한두 번이라도 대화를 해본 요양보호사들은 몹시 언짢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저 싸가지...'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엄마한테 더 좋은 서비스가 가길 원한다면 저러면 안 되는 거야...생각해보면 모르나? 딸년이 멍청하니까 엄마도 똑같아'라고 혀를 찼다.

어머니를 지극히 생각하는 효녀임에는 틀림없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태도는 그 어머니를 돌보는 당사자인 우리에게는 탐탁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럴때 나는 어땠나 생각해 보곤 했다.

나는 내가 돌보지 못하는 내 어머니를 24시간 돌보아주는 요양보호사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오갈 때면 고개를 한번이라도 더 숙여가며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한번이라도 더 상냥하게 웃으며 대하면 더 잘 봐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과일이라도 한번씩 사다주며 '약을 치려' 애썼던 것같다.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은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티가 나지 않는 일이다.

열심히 기저귀 갈아드리고 식사 잘 챙겨드리고 요구사항이 있을 때면 최선을 다해 들어드리려 노력한다.

서로의 최선이 비슷하게 맞아들어가면 어르신은 대체로 무난하고 큰 불만없이 문제없이 잘 지내신다....그게 당연한 일인 것이다.


돌봄당사자와 보호자가 요양보호사에게 무조건적인 헌신과 봉사, 희생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참 착각이다. 돈을 내는만큼 너희들은 내 부모를 최선을 다해 돌볼 의무가 있다는 '본전찾기'에만 급급한 태도 또한 진실로 제부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양보호사도 인간이며, 어쩌면 누구보다도 섬세하고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에게서 참된 돌봄서비스를 원한다면 먼저 그를 가장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그의 일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누군가 나를 진실로 대해주길 원한다면 그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대해야 한다는 진리가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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