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의 입소대상은 스스로 거동이 어렵고 치매나 파킨슨, 뇌경색, 연하곤란 등 노인성 질환이 있는 65세이상의 어르신들이다. 대부분 상태가 중한 경우이나 비교적 경증이거나 65세 미만이더라도 치매나 뇌경색 등 노인성질환에 해당하면 입소가 가능하다.
50대 초반의 젊은 여자 치매환자가 어느날 입소했다.
그녀의 보호자로는 70~80대의 부모가 있고, 다니던 교회에서 알게 된 지인이 한명 있었다.
그녀와의 인연에 대해 원장이 말했다.
알고 보니까, 그분이 예전에 우리 요양원에서근무하셨던 요양보호사였어요. 그때, 면접을 할 당시에도 약간 횡설수설하는 게 있긴 했는데, 일을 잠깐 하다가 그만두셨어요...얘기를 들어보니까,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출근을 안하는 일이 한번씩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근무태만 정도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출근하는 걸 깜박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그만 두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가 이번에 입소 관련하여 연락을 받은 것이다.
우리들은 그녀의 입소에 대하여 당황스러운 심정을 이야기했다.
아직 젊은 50대 초반의 나이에 치매라니. 더구나 요양보호사일을 하던 사람이, 자신이 일했던 곳에 입소를 하게되다니...
그녀는 진작에 이혼을 했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함께 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으나, 부모가 치매걸린 딸을 돌보는게 쉽지 않아 하는수 없이 입소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입소당시 아직 장기요양등급이 없는 상태였다.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부모에게 여유가 있었다면, 절차를 밟아 치매걸린 딸이 장기요양등급을 받도록 한 다음에 요양원에 들어왔더라면, 비용은 최대 80%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 여유도 없을만큼 무언가 절박한 상황인 듯했다.
입소 당시, 치매에 더해서 그녀는 왼쪽 정강이에 깁스를 한 상태로 입소했다.
몇주 전에 골절상을 입었고 아직 몇 주가 더 지나야 깁스를 풀 상황이라고 했다.
때문에, 장기요양등급은 커녕, 딸의 요양원 입소 비용을 고스란히 부모가 100% 부담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우리 요양원 침대 한칸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녀는 언뜻 보기에 치매환자 같지 않았다.
대부분 순조롭게 대화가 가능했으며, 말 중간중간에 자신이 요양보호사경력자임을 강하게 표현할 정도로 그녀는 똘똘해보였다.
미선(가명)어르신, 다리는 어쩌다 다치셨어요?
버스에서 내리다가 도로 경계석에 걸려서 넘어지면서 다쳤어요.. 그런데, 제 휴대폰좀 충전해주세요. 충전기가 망가졌어요...
어머, 왜 망가졌어요? 충전해드릴게요.
어제 여기 들어올 때 어떤 남자분이(남자요양보호사가 1명 있음) 제 충전기 줄을 아무렇게나 잡아당겨서 망가졌어요. 빨리 물어내라고 해주세요!
나는 남자요양보호사께 미선어르신이 한 얘기를 해주며, 입소자의 물건을 훼손했으면 보상해 주는게 맞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분이 펄쩍 뛰었다.
예? 제가요? 제가 안 그랬어요! 무슨 소리예요? 하참....말도 안 되는 소리 하시네...처음에 가지고 왔을 때부터 그런 상태여서 충전이 안되는 거였어요. 갑자기 무슨 생사람을 잡아요, 그분은??
미선어르신(우리보다 나이도 어리지만, 그곳에서는 입소자이므로 어르신이라고 칭했다. 나중에는 어르신이라 불리는 자신이 불편해하여 미선님으로 호칭을 바꾸기도했다.)의 얘기를 전해들은 남자요양보호사는 정말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깟 휴대폰 충전기가 얼마나 한다고 돈이 아까워서 오리발을 내미는게 아니라고 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뒤집어씌우는 것이 기가막힌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미선님에게 전해보았더니, 그녀역시 펄쩍 뛰며 아니라고 화를 냈다. 그후로도 그녀는 생각이 날때마다 그 일에 대해 보상을 해달라고 졸라댔다.
이처럼 그녀는 자신의 어떤 잘못된 인식을 맞다고 여기며 막무가내로 우기거나 자신의 어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화를 내면서, 자기도 요양보호사인데 왜 차별을 하느냐는 식으로 말하곤 했따. 평소에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어느부분엔가 모순이 발견되곤 했다.
그외에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여 어르신들과 함께 거실에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앞자리에서 식사하시는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골고루 드시라든가, 왜 자꾸 흘리시느냐 는 등등의 엄청난 잔소리를 해댔다.
그순간, 그녀자신은 요양보호사로서 어르신을 돌보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나름대로 조용히 식사를 하는데 자꾸만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해대니 아무리 성격좋은 어르신이라도 짜증이 나게 마련이리라.
나, 쟤랑 같이 밥 안먹어!
나중에는 이렇게 함께 마주앉기조차 거부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번은 이런 상황을 목격했다.
어르신, 그반찬 팍팍 떠서 드세요...깨작거리지 마시고요....
이렇게 미선님이 제 앞의 여자 어르신에게 그날 아침에도 계속 속닥거렸다.
그러자, 듣다못한 그어르신이이렇게 쏘아붙였다.
너나 잘해 이 미친년아!
그 말도 맞는게, 그녀 자신은 정작 밥을 제시간내에 먹는 적이 거의 없었다.
정신이 있을 때는 제 앞에 있는 어르신들을 참견하느라, 그게 아니면 병원에서 과하게 처방된 진통제로 인한 졸음에 쫒기느라 밥상 앞에 앉은 채로 머리를 턱밑까지 처박고 졸고 있기가 일쑤였다.
그럴때면 우리는, 식사도움을 위해 뛰어다니다가도 틈틈이 깨워서 식사를 독려하지만 수저를 쥔 채로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미칠듯한 졸음에 함몰되어 있곤 했다.
목욕에 관해서도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입소어르신들의 목욕은 주1회 정도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도 매일 하루에 3~4명씩 입소자들을 목욕시켜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떤 어르신들은 일주일에 두번씩 목욕을 요구했다. 대체로 갓입소하신 분들이 그랬다.
보통 요양원입소하는 날 입소목욕이 이루어지지만 입소시간이 오후이거나 하면 그게 미뤄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지키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예 목욕을 거부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주로 치매가 심한 경우 보이는 현상인데, 씻는 것을 거부하여 심하면 한달넘게 막무가내로 목욕을 못하고 지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경우 강제로 시킬수가 없다. 강제력을 동원하면 더욱 거세게 반발한다.
특히 치매환자들은 힘이 굉장히 세다.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가 가해지면 엄청나게 난폭해지고 격렬하게 저항하므로 강제력을 동원하던 요양보호사도 두드려맞거나 욕을 먹는 일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이다.
미선어르신도, 입소당일 목욕을 하지 못했고 다음 주부터 목욕 일정에 맞추어 주1회씩 목욕을 시행했다.
그런데 목욕을 한 바로 다음날에도 '오늘 목욕하는 날이죠?'하며 뜬금없는 소리를 종종 했다.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바로 전날, 혹은 며칠 전 한여름 찌는 날씨 속에서도 개운하게 씼겨드렸건만 정작 자신은 발끝에 물 한방울 묻힌적 없다며 떼를 쓰고 심지어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고자질하듯 하는 것이다.
그런게 바로 치매증상이다.
금세 밥을 먹고도 안 먹었다고 우기듯이 미선님은 금방 목욕을 하고 나와서도 안 했다고 떼를 쓰는 것이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이런저런 증거를 들이대며 상황을 기억하도록 이해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도 납득시키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닌데....나 목욕 안했는데....
이렇게 중얼거리며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치부했다.
실제가 아닌 일을 자꾸 반복해서 부모에게 알리기 시작하니, 실상을 알지 못하는 부모로서는 그 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딸이치매환자임을 알면서도 그 말을 믿는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는 찾아와서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종종 밑도 끝도 없는 헛소리(그 자신으로서는 진실이겠지만)로 우리를 당황시키면서도, 툭하면 이번주에 퇴소하겠다고 으름장놓듯이 말했다. 요양원입장에서야 한사람이라도 입소자가 필요하겠지만, 화합하지 못하고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굳이 붙잡지도 않는다.
부모로서는 일을 해야하는 입장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치매환자 딸을 집에서돌보기 어려워, 당분간 100%자비부담을 하더라도 요양원에 입소한 상태에서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기로 한것이다. 그래서 등급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비용부담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등급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던 어느날 공단에서 실사를 하러 나왔다.
그녀는 당연히 치매환자였고 조금만 대화를 나누어보면 치매증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공단에서 실사를 나왔을 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평소 아무리 치매가 심하더라도 심사관 앞에서 치매증상을 드러내지 못하면 등급은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 내 어머니가 등급을 받기위해 신청했을 때도 심사관 앞에서 약간 인지기능이 저하된 면을 특히 부각시켜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에게 주의를 드렸다. 엄마, 그사람들이 뭐뭐 이런거저런거물으면 잘 모르겠다,생각안난다...못한다...이렇게 대답해야해! 응 알았어....
그런데, 막상 심사관이 나타나 몇 더하기 몇은 얼마인지 물었을 때, 똘망똘망 눈동자를 굴려가며 정확한 셈을 말하고 오늘이 몇년 몇년 몇월 며칠이냐고 물었을 때도 숫자하나도 틀리지 않게 대답을 척척해내었다....
참 명석하신 우리 엄마....)
미선씨가 치매증상으로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했을 때의 상황을 나는 근무일이 아니었으므로 전해들었으니, 그 내용은 이렇다.
등급판정을 위한 실사를 나온 심사관이 미선씨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치매를 확인할 수 있는 질문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갑자기 심사관들에게 짜증을 내면서 고소를 하겠다느니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서 그 상황을 망쳐버린 것이다.
결국, 심사관들은 제대로 평가를 하지도 못한 채 황당해하면서 돌아갔으며 당연히 등급도 나오지 않았다.
그 얘기를 두고 우리들끼리 이야기했다.
바로 그렇게, 중요한 심사상황에서 돌발적으로 화를 내고 뜬금없이 고소를 들먹이는 언행자체가 심각한 치매임을 확인시켜주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도, 그심사관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질문에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정불가, 판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그일로 가장 좌절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 당사자도 우리도 아니다.
고령의 부모님이시다. 50대 초로기치매를 앓게된 딸의 구완을 요양원에 맡기고 자신들은 다시 생계를 위해 달려야했던 늙은 보호자들은 적잖이 실망하여 그 얼마뒤 퇴소를 결정했다.
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은 사실이나, 저토록 비협조적인 딸이 언제 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을지 알수 없을뿐더러, 그때까지의 입소비용 부담도 적잖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녀가 퇴소하기 전까지, 요양원은 늘 시끄러웠다.
요양보호사였던 자신의 지난 시간이 머리속에 가득하여 동료인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를 내거나, 어르신들과 불화를 일으키고 자신만의 왜곡된 인지력에서 비롯된 오해와 불만을 끊임없이 토로하며 블랙컨슈머가 되어갔다.
때문에, 막상 그녀가 불쌍한 늙은 부모의 손에 끌려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녀와 한번씩이라도 토닥거렸던 요양보호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안도감이기도 했고, 치매걸린 딸을 어쩔 수 없이 돌보아야만 하는 늙은 부모의 사정이 안타까운 때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