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자기만의 십자가
우연히, 치매걸린 어머니를 3년간 돌보다 최근 요양원에 맡긴 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열심히 일해야 할 지난 시간동안, 그분은 개인적으로 불운한 사고를 겪기도 하고 어머니를 혼자 돌보게 되면서 경제활동을 지속하지 못하여 수 년째 백수신세임을 고백하셨다.
이제 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겼으니 자신의 삶을 다시 이어가야 할텐데, 그분께서는 여러가지 감정의 도가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시는 듯하여 안타깝다.
힘들어도 스스로 어머니를 돌보다가 마침내 요양원에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 얼마나 괴롭고 후회되고 안타까울 것인지, 선험자로서 나는 조금 이해한다.
나야말로, 나의 어머니는 몇 년이라도 더 살 수 있었던, 중요한 고비를 무심하게 넘겨버린 탓에 명을 단축시킨 장본인이라는 생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늘 어머니의 안위를 신경쓰며 곁에서 돌보아드렸으나, 정작 담낭염의 통증을 호소하는 데는 무시한 채 3개월을 넘겨버린 것이다.
결국....뒤늦게 수술과 치료를 이어갔으나 어머니는 그 후유증이 겹치고 깊어져 돌아가셨다.
지금도 요양원에 들어가신 날부터 거의 매번 나를 볼 때마다 고통을 호소하며 하루하루 수척해져가던 어머니의 모습이 여전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왜 그때, 내가 그 목소리에 무심했을까...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아무리 가슴을 치고 후회해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또한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러나, 또한편으로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삶의 과정을 통해 내게 남겨진 시간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여전히 힘들고 숨막히지만, 어머니가 더이상 고통없는 시간 속으로 歸天하셨음에 안도하며, 이제 남은 일은 내 삶을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임을 알기에 살아간다.
나역시, 아무리 괴로워도 날마다 어머니의 영정만 붙잡고 울고 있을 수는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정녕 그것을 원하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한다.
때문에 매일, 하늘을 보아도 재미있는 영화를 보아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 모든 중심에는 머릿 속에 화인火印처럼 박혀있는 고통에 찬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가운데에서도 숨 쉬고 밥 먹고 운동도 하며 내일의 일정을 살피고 다음달부터 다시 출근할 요양원 어르신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나는 그 작가님께서도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치매에 걸려 점점 세상의 모든 일들과 멀어지고 어쩌면 끝내 자식마저 못 알아볼 수도 있으나, 부모자식간의 정은 끊어지지 않는다. 책임지고 어머니를 3년씩이나 정성껏 돌보아드렸으니 이제부터라도 작가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10년이나 경력단절이 되었기에 더욱이 취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년간 어머니를 돌본 경험에 지식을 더하여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에 도전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엔, 나만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사람처럼 느껴진 적도 있다. 나만 제일 힘든 사람같았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은 다들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지...하지만 그들의 삶을 조금더 가까이 들여다 보게되면, 각자 적어도 한 가지씩의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산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 작가분께서는 자신에게 너무나 함몰되어 있기에, 주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게 당연할 지도 모른다. 그 자신 앞의 인생은 누구와 견줄 수도 없는 비극으로 가득할 것이다.
치매 어머니, 10년째 백수, 중년이 되도록 배우자도 만나지 못한 채 외로이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얼마나 비참한 현실인가.
그러나 조금 고개를 들어 시선을 멀리 던져보기를 바란다.
모두들 각자의 십자가를 진 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예수님이 인간대신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그런 종교적인 의미에 바탕을 두고 흔히 이렇게도 말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데,
그 보이지 않는 십자가는
그 인물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무게'이다.
또, 신께서 인간에게 매순간 시련을 주시지만,
그 시련 또한 그가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고난'이다.
오랜 간병생활에 심신이 지친 그분이 살아가는 현재의 동력이라곤, 그나마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만이 아닌가.
그러나 죄책감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깊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가늠해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같다. 어떻게 펼쳐질지 모를 막막한 미래이지만, 아직 주어진 시간이 남아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그분께서 용기를 내어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를, 그리하여 어깨를 짓누르는 십자가의 무게를 스스로 덜어내는 방법을 찾아내기를 열렬히 응원한다.
안타깝게도 그 방법은 결코 아무도 가르쳐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