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어머니를 보듯 바라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2년이 지났다.
2024년 2월9일, 어머니는 91년의 고단하고 안타까운 삶을 끝내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다.
돌아가시기 1년여전 어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얄궂은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로지 자식을 위하여 정신잃지 않으려
몸부림쳐온 일생은 당신의 온몸에 고스란히 아로새겨졌기 때문이다.
조금 한숨 돌리고 편안하게 살아도 좋을 법한 시절에 당도했을 무렵에도 어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어느새 어머니는 조금만 걸어도 금방 부스러질 것만 같은,
온몸의 부속들이 어그러지고 망가진 고물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어머니와 마지막 17~8년정도를 지척에서, 그중에서도 3~4년동안은 한 집에서 지낸 것은 자식으로서 나의 의무와 책임이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것은 의무와 책임이 아니라 나의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다른 자녀들은 멀리 떨어져 지내기에 날마다 어머니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었으나
나는 달랐으니까.
물론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나마는 어머니의 경우, 예전에도 한번 수국 화분을 사드렸을 때 무척 좋아하시며 한동안 정성껏 화분을 관리하기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새로이 수국화분도 그해 생신무렵에 사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알 지도 못한 채.
어머니가 자주 아프고 다치고 하면서 생의 마지막 지점을 향해
더욱 바삐 걸음을 재촉하던 그즈음에 선물했던 고운 수국화분도 꽃이 지고 난 뒤,
그냥 그렇게 어머니처럼 천천히 가지가 메말라 갔다.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곱고 예쁜 화분을 들여도 막상 그 꽃들이 한번 지고나면
다시금 그 화분에서 거듭해 꽃을 새로 피우게 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다.
나는 아쉬웠다.
수국화분이라도 해마다 꽃을 피워준다면 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그저 막연한 바람같았다.
어머니의 메마른 수국화분에 열심히 물을 주며 숨이 붙어있기만을 바랐다.
간절함때문일까, 지난해에도 간신히 마른 가지에서 순이 솟아나고 이파리도 자라나는 듯했으나,
끝내 시들어버린 채 앙상하게 마른가지로 겨울이 지났다.
올봄, 얼마전 나는 결심하고 분갈이를 했다.
깨끗한 새흙으로 바꾸어 넣고 조심스레 뿌리를 털어내어 잘 심고 흙을 다독여 넣은 뒤
날마다 지켜보며 물을 주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랬더니, 어느날부터 그 마른 가지에서 연녹색 뽀송한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더욱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물을 주고 햇빛가로 다가세우며 지켜본다...
자연은, 이렇게 죽은 듯한 가지 속에서도 새생명을 움 틔우는데,
한 번뿐인 삶이 끝나면 인간은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왼쪽 사진은 3월22일, 오늘 찍은 가운데 사진은 일주일사이에 순이 더 많이 늘었고 크기도 커졌다.
저 수국 새순이 자라고 풍성해진뒤, 어쩌면 올해는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기대감이 늘어간다.
군자란화분(사진오른쪽) 또한 정말 오래된 것인데, 2007년 무렵 남편이 시어머니를 위해 들인 것으로
무척 생명력이 강하다.
해마다 꼭 이맘때면 한번씩 저렇게 활짝 온힘을 다해 만개한다.
나는 그저 1년내내 물만 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