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있는_어느 밤

_외롭고 쓸쓸했던 어린시절

by somehow

브런치에서 어린시절에 관한 글들을 자주 본다.

아기자기하고 행복했던 추억들, 혹은 아련하고 가슴아프고 아쉬웠던 순간들에 대한 기억들.

그들의 이야기를 엿보노라면 나도 그 시간 속으로 더듬어 따라 들어가게 된다...

나도 그런 고즈넉하고 아슴아슴하고 아련한 기억들에 대해 글로 옮기고 싶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는 어린시절에 관한 글을 쓰기가 어렵다.


몇번이나 어떤 단초端初를 붙잡아내기 위해 지나간 시절을 더듬어 보곤 했으나, 나는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아내지 못한다.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은, 두드려보면 소리만 요란할 뿐 정작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빈깡통처럼 느껴졌다.


오늘 나는 이 사진(판화)을 앞에 두고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https://brunch.co.kr/@jmyou


이것은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하나뿐인 동생의 판화 작품이다.

대학졸업 후 광고회사에서 잘나가는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동생은 2000년이던가,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때, 동생은 그 스스로의 힘만으로 비용 등 모든 것을 마련했다.

나는 동생의 삶의 영역 확장을 위한 노력에 뜨거운 마음으로 응원을 보냈다.

당장 헤어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나 아무것도 도와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 자신의 능력만으로 마련한 발판을 도약대로 삼아 더 멀리 나아가는데 열렬한 응원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주어야 마땅했다.

그때, 1~2년간의 폐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뒤로 또다시 막내 딸과도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럼에도 어머니역시 막내의 앞날을 지지했다.

그후, 동생은 미국인 남자와 결혼하였고 그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이 판화는 결혼 후 판화수업을 듣기 시작한 동생이 나에게 선물한 것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이 판화는 현재 액자에 담겨 내 방 벽에 걸려 있다.


동생 자신의 기억속에 각인되어 있는 어린시절의 어느 밤, 우리 둘의 모습을 목판에 아로새겨 찍어낸 판화를 마주했을 때, 나는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밤의 쓸쓸한 풍경에 가슴이 아려왔다.


동생이 술회하는, 판화에 얽힌 배경스토리는 아래와 같다.


|동생의 브런치_https://brunch.co.kr/@jmyou에서 캡처_본문 일부


나는 동생의 브런치에서 판화에 관하여 내게 쓴 글을 발견하고 몇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그래...1970년대 국민학교 저학년이던 그 시절,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도 없는 빈집에서 동생과 둘이 보냈던 것같다.

네 살 터울의 동생과 나는 늘 쓸쓸한 빈집에 방치된 채 둘만의 놀이를 찾아 하루를 지냈다.

(부모가 우리를 버린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생계를 위하여 하루하루최선을 다하셨을 것이다. 당시 부모님은 어머니의 한복기술을 바탕으로 포목점을 운영하셨다.)

동생과 나,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온 뒤 해가 지도록 무언가를 하며 놀이를 하거나 숙제를 하거나....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것으로 시간을 때우고는 했겠다.


그러다 어둑해질 무렵이면 내가 전기밥솥으로 저녁 밥을 한다.

그 밥을 두 그릇, 어머니가 미리 해두었을 반찬 두어 가지와 함께 부모님의 가게로 들고 뛰었다.

그 어린시절에는 그런 날이 일상이었다.


왜 밥그릇을 들고 뛰었냐 하면, 아버지가 하루 해가 저물어갈 무렵의 헛헛한 빈 속으로 술잔을 먼저 채워넣기 전에 밥부터 한술 먼저 떠넣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술이 취하지 않을테니까. 아니 조금이라도 덜 취할테니까.

그래야 그 밤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런 바람은 종종 빗나갔다.

아버지의 술친구들이 우리보다 훨씬 재빨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날쌔게 뛰었어도 아버지보다 한발 늦은 저녁이면 우리 세 모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가올 그 밤이 또 얼마나 길고 지루하고 두려운 시간이 될지 짐작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아버지의 주사는 우리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로 각인되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의 술주정이 날마다 이어진 것도 아니었다. 대체로 평온한 날이 더 많았을 테지만, 그럼에도 나의 기억 속 아버지는 '언제나 술만 마시면 거의 개'가 되었던 듯하다.


판화 속 동생과 내가 어두운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던 그 어느 밤도, 바로 그런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힌 밤이었으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만, 그 시절의 어린 우리는 왠지 늘 슬프고 외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판화의 장면에 대하여 동생은, 걷기 힘들다고 징징대는 동생을 업어주는 언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이야기한다.

나는 문득, 가로등 불빛 아래 조그만 두 아이가 측은하게 느껴진다.

그게 나라서가 아니라 부모의 손길이 가장 필요할 그 시기에, 둘이 저렇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사실이 새삼 떠올라서 말이다.


어린 시절 나는 동생과 가장 오래 사귄 둘도 없는 친구이다.

그럼에도 그 시절, 내가 동생을 위해 내준 것이 겨우 저 작은 등짝 뿐이어서 이제사 미안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등에 업어주는 것 뿐이었다니, 그래서 아직도 미안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있는 줄, 나는 미처 모르고 있었던가 보다.

이제는 업어줄 수도 없을만큼 커지고 함께 늙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어른이 된 뒤로도 나는 늘 동생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