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기다림

by 김은령


세계는 온갖 형태의 계시로 가득 차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 일각수의 꿈 』 中




남진우 평론집 『숲으로 된 성벽』 책머리에 중




그 시절 내가 읽은 대부분의 책들은 그냥 내 곁을 스쳐 지나가 망각의 어둠 속에 잠기곤 했다. 그러나 간혹 어떤 텍스트는 내 주위에 오래 머물며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 속에 나오는 이미지와 사유를 따라가도록 부추기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홀로이며,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불현듯 나를 찾아와 줄 어떤 미지의 언어를.




° 가려진 기다림 ° _ 김은령





가려진 기다림



만개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 계시의 자리에서



베일 너머,
꽃은 이미 피어 있다.

계절은 제 목소리로
침묵을 깨우지만,

가려진 시간은
문 앞에 균열을 남긴다.

계시는 파열처럼
숨결을 밀어 넣지만,

감춰진 미지의 언어는
기다림 속에 상흔을 새긴다.




° 어떤 기다림 ° _ 김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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