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나를 찾아왔어

by 김은령


시는 이미 와 있었다



파블로 네루다 『 네루다 시선 』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 그림이 나를 찾아왔어 ° _ 김은령




그림은 그려지기 전에,
이미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나를 찾아왔어




어디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문을 두드리기 전에

이미 내 안에 머물고 있었어


말보다 먼저,

형상보다 느리게

숨처럼 스며들었지


그저

하얀 종이 위에

떨리는 손을 얹었을 뿐인데


그림이 먼저 알아보고

잎맥 하나,

그림자 하나,

내 안의 숨결을 따라

스스로 선을 열어갔어


심연의 선 끝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말없이 불러내고


그렇게,

그림은

서서히

붓 끝에 맺혀

나를 향해 — 다가왔던 거야




° 시가 찾아왔어 ° _ 김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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