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이미 와 있었다
파블로 네루다 『 네루다 시선 』 중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그림은 그려지기 전에,
이미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어디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문을 두드리기 전에
이미 내 안에 머물고 있었어
말보다 먼저,
형상보다 느리게
숨처럼 스며들었지
그저
하얀 종이 위에
떨리는 손을 얹었을 뿐인데
그림이 먼저 알아보고
잎맥 하나,
그림자 하나,
내 안의 숨결을 따라
스스로 선을 열어갔어
심연의 선 끝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말없이 불러내고
그렇게,
그림은
서서히
붓 끝에 맺혀
나를 향해 — 다가왔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