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프루 『시핑뉴스』 중
쿼일은 딸에게 질질 끌려가며 웨이버의 눈길, 그녀의 미소를 보았다. 아, 그만을 위한 눈길과 미소! 계단을 오르는데 문득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렸다.
그렇다면 사랑은 돌아가면서 하나씩 꺼내먹는 종합사탕 봉지 속의 다양한 사탕 같은 것이고, 우리는 사탕을 맛보듯 사랑도 이것저것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혀에 톡 쏘는 맛을 남기는 것, 밤의 향기를 일깨우는 것, 속이 쓸개처럼 쓴 것, 꿀과 독을 섞은 것, 금방 삼키게 되는 것, 그리고 평범한 눈깔사탕과 박하사탕 틈에 희귀한 것들도 섞여있다. 독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것들 한두 알과 평온과 부드러운 기쁨을 주는 것. 지금 그의 손은 평온과 부드러운 기쁨의 사탕을 집으려고 하는 것일까?
책장은
종합사탕 봉지 같다.
하나하나 포장된 책들,
각기 다른 빛깔의 껍질과 질감으로
내 시선을 붙잡았다.
붉은 표지는
혀끝을 찌를 듯한 열정의 맛,
짙은 밤색 표지는
쓴 카카오처럼 천천히 감기는 여운을 남겼다.
어떤 책은
첫 장부터 사정없이 깨물게 하는 것,
터지자마자 눈물 나게 매운 것,
알싸한 회한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
또 어떤 책은
향기만 맡고 덮어버리는,
그러나 오래 잊히지 않는 잔향 같은 것.
문장을 깨무는 순간,
혀끝에서 이야기가 터지고
마음은 불꽃처럼 물든다.
책장 앞에서 망설였다.
오늘은 어떤 맛을 꺼내어볼까.
손끝은 낯익은 표지를 스치다
무게가 흔들리는
책 하나에서 멈췄다.
그러다 문득,
오늘은 사탕을 녹이는 날이 아니라
깨무는 날이라는 걸 알았다.
봉지를 열 듯 첫 장을 넘기자
달큼한 먼지 향이
먼저 혀끝을 스쳤다.
첫 문장을 깨무는 순간
입 안에서 감정이 터졌다.
그건 단어가 아닌, 폭죽이었다.
달콤 쌉쌀함과 놀람이 번졌고
어느 단락은 신맛처럼 번뜩였으며
어떤 문장은 쓴맛으로 가라앉았다.
사랑이라는 사탕이 있다면
이런 신비한 약속을 속삭이는 것이 아닐까.
쾌락처럼 웃음이 터지고
눈물처럼 저릿한 장면이 혀끝에 남았다.
갑자기 어느 찰나에
한 문장이 톡— 하고 깨졌다.
감춰졌던 진심이
뒷맛처럼 알알하게 살아났다.
속이 드러난 사탕처럼
숨겨진 이야기의 심지가
입 안에서 녹기 시작했다.
어느새
책 한 권을
꿀꺽 삼켜버리고 있었다.
깨무는 순간의 환희가 지나간 자리엔
부풀어오른 마음이 여전히 식지 않은 채
몸 안 어딘가에
감기의 열기처럼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사랑도, 책도 —
처음엔 불꽃처럼 터지지만
끝내는 온기든 쓰라림이든
긴 파장으로 서서히 번져간다는 것을.
책은, 사탕이다.
깨물면 터지는 환희 —
그 잔향은 가슴 깊이,
천천히 녹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