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침묵을 나누어 가지다 _ 산책을 그리며

by 김은령


산책을 그리며




장 그르니에 『일상적인 삶』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줄 그 빈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이 아닐까?




도착하기만을 원한다면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걸어서 가야 한다.


장 자크 루소






° 길의 침묵을 나누어 가지다 ° _ 그림부리 김은령







길의


침묵을 나누어 가지다




걷는다
소요의 모색을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기울인다
소복이 쌓인 고요를
숲의 소리를 들으며

음미한다
그윽한 시간을
밤의 질감을 새기며

창조한다
어떤 빈틈을
흐르는 조우를 초대하며

열린다
세계를 향해
감각의 두께를 더듬으며

나눈다
고즈넉한 침묵을
마음의 가장 투명한 곳을 걸으며



걸음이 켜켜이 쌓여갈수록
길은 어떤 빈틈을 열어 침묵을 초대한다.






° 산책을 그리며 ° _ 김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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