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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어린이들

하율, 하준, 하람

by 이현

5월 5일 어린이날, 5월 8일 어버이날, 5월 21일 부부의 날.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면서 또한 가정의 날. 그리하여 가정의 달 5월. 일 년 중 가장 좋은 날인 봄과 여름 사이 어느 즈음에서 굳이 가정의 달이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정의 달이라는 틀에 얽매여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향한 의무의 달을 지내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나와 짝꿍은 아이가 없는 2인 가족이다. 어린이날은 공휴일 그 자체로 환영하는 날이지만 정작 그날의 의미에 대해서는 감흥 없이 지내왔다. 나보다 먼저 결혼 한 동생은 아이를 낳았다. 3명이나. 올해로 첫째 하율이는 7살, 밑으로 쌍둥이인 둘째 하준이, 셋째 하람이는 4살이 되었다. 곧 시행될 나이계산법에 따르면 5살과 2살인 조카들이라 훨씬 더 어린 느낌이 들지만 여하튼 그렇다. 조카들을 포함하여 출산한 친구들의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나에게 아이들은 복잡 미묘한 기분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귀엽고, 귀찮고, 어색하고, 어렵고, 무섭고, 약하고, 보드랍고, 시끄럽고, 천사 같고, 입에서 분비물이 많은 작고 말랑한 생명체. 누워만 있던 아기가 매일 조금씩 자라서 기고, 걷고, 달리고, 알아듣지 못할 옹알이만 하다가 한 단어, 두 단어 말하기 시작하고, 어느새 우리 사이에 대화가 가능해지는 때가 온다. 아이들이 저절로 크는 건 아니겠지만 내게 고단한 육아의 경험이 없고, 아이들을 띄엄띄엄 보다 보면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고 생각하고야 만다. 그리고 그렇게 훌쩍 큰 어린이들과는 친구가 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어린이날에는 관심이 없지만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천천히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린이에게 관심이 많지만 어린이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다. 어린이책 편집자였다가 현재는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 중인 김소영 작가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참 재밌게 읽었다. 내가 어린이를 좋아하는 것은 육아, 양육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어린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관점에서였는데, 어렴풋하게 인식하고 있던 생각을 책을 읽으며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아이를 양육하지 않거나, 아이들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면 어린이를 대할 기회가 좀처럼 없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어린이가 없을만한 곳이 주로 나의 생활반경이어서 그렇기도 했을 것이다. 본가에서 독립해서 결혼하기 전까지는 주거밀집구역에 살아보지 않았다. 그러다 결혼 후 소위 학군이라는 것이 조성된 동네에서 살다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어린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를 비롯해서 어린이집, 놀이터, 공원, 키즈카페 같은 곳들이 주변에 생각보다 많았다. 보다 보니 자꾸 눈에 띄었고, 어린이라는 세계가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유튜브가 AI를 이용해서 맞춤형 영상을 보여주듯이 동네를 산책하면서 어린이와 관련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종종 내가 어린이 었던 시절에 대해 떠올려보기도 했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렵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칭얼대거나 울기라도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둥가둥가 밖에 없는 바보라서 무척이나 당황스럽다. 아이와 짧게라도 대화가 될 때부터 아이랑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어린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1:1의 만남을 선호하는 나는 어린이와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아직은 조카들이 어려서 부모를 동반해 함께 만나면서 눈도장만 찍고 있다. 나중에 지금보다 더 자라난 조카들이 나의 데이트 요청을 기꺼이 승낙하는 날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다. 너희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절의 너를 내가 알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모는 아니지만 편안한 어른 친구가 되고 싶다.


아이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 즐겁기는 하지만 보살핌의 영역에서 나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진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시간은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시간 중 하나다. 음식 흘리는 것, 음식으로 장난치는 것 등을 보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기는 하나 나는 아직도 짝꿍이랑 식사를 할 때에도 짝꿍의 식습관 중 거슬리는 행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한소리 하고야 마는 사람이다. 다 큰 성인에게도 그러는 사람이 아이와의 식사시간이라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 얼마나 많을까. 음식을 안 먹겠다고 투정 부리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계속 먹이려고 애쓰는 부모를 보는 것도 힘들다. 함께 먹는 음식을 헤집어 놓으면 먹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아이 몫은 따로 주고 싶은데 아이들은 또 자기만 따로 먹는 거 싫어해서 같이 먹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앞으로는 뭐든 각자 먹는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식 특히 빨갛고 색깔 있는 음식이 옷에 묻었을 때 이 빨래는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걱정에 마음이 심란해진다. 먹다가 바닥에 흘린 음식을 발로 밟아서 온 집안을 문대고 다닐까 봐 전전긍긍한다. 한입 먹을 때마다 입 주변에 잔뜩 묻는 음식물을 닦아주고 싶지만 다 먹을 때까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고 봐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숟가락, 포크, 젓가락 등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때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고 싶은데 너무 까탈스러워 보일까 봐 자제한다. 그러다 보니 함께 밥 먹는 시간은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전쟁 같은 시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카들이 보고 싶을 때는 나와 짝꿍이 주로 동생네 집으로 갔다. 우리 집으로 초대하고 싶지만 아이 세 명이 휩쓸고 갈 광경을 상상하면 절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동생 부부가 편하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다 갖춰져 있는 그 집에서 만나는 것이 여러모로 가장 편했다. 물론 부모들의 입장을 들어보진 않았지만.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외식은 거의 해보지 않았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 아이들이 편하게 앉을자리, 고기를 구워 먹는다거나 끓이면서 먹는 음식은 아이들에게 위험요인이 될 수 있고, 어린이 의자, 어린이 식기, 어린이 음식, 아이들이 음식을 다 먹고 난 후 어른들이 편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상황 등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가능한 외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집에서 배달음식을 먹었다. 음식을 만들 여유도 없으니까.


지난겨울까지 주로 그렇게 만나다가 5월 중순의 주말에 동생네 가족을 만나기로 했다. 고민 끝에 동생에게 우리 동네로 오라고 제안했더니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다. 만남의 형태를 변화시킨 가장 큰 원인은 날씨였다. 이런 좋은 날에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까웠다. 아이들과 공원에서 함께 놀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중에 동생 부부가 아이들 놀거리로 한 짐 챙겨 온 것을 봤을 때 아이들과 밖에서 시간을 보내려면 필요한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서 조금 미안해졌다.


애초에는 공원에서 하루 종일 보내면서 소풍 하는 날로 계획했다. 김밥이나 치킨, 피자 같은 음식들을 챙겨가서 먹고 놀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먹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할수록 내가 예상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해졌다. 다시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와 짝꿍은 철저하게 아이들 위주로 지루하지 않게 놀아보기로 결심했다. 놀이터가 있는 공원에 먼저 가서 그늘이 잘 드는 자리를 잡고 캠핑 의자, 피크닉 매트 등 세팅을 끝내고 나니 동생네 가족이 도착했다. 먼저 아이들을 놀이터로 데려가서 놀았는데 기구가 너무 거대해서 예상보다 빨리 체력이 소진되었다. 자리로 돌아가 피크닉 매트 위에 앉아서 그리기와 색칠놀이를 했고, 어른들의 시야 안에서 킥보드도 탔고, 버블건을 가지고 비눗방울을 만들어 내면서 다양하게 놀았다. 주전부리 같은 것들을 모두 생략했고 놀다가 배가 고파질 무렵 공원에서의 상황을 정리하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으로 가는 동안 아이들은 뭐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조카들과 술 한잔하고 다음날 국밥 한 그릇 먹으면서 해장할 날을 기다리는 고모지만 그건 오랜 후로 미뤄두고,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 등이 주 메뉴인 패밀리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어린이들과 함께 이용하기 편한 곳이 기준이다. 첫째 하율이는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골랐는데 나는 이 부분에서 조금 놀라버렸다. 어느새 그렇게 자란 거지?! 어른들의 메뉴는 쌍둥이 어린이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넉넉하게 골라서 주문했다. 어린이 의자도 사용하지 않는 세명의 아이들과 네 명의 성인이 각자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는 모습은 아직 상상 밖의 일이었는데 어느새 조카들이 이만큼이나 커서 식사 시간에 집중하며 다 같이 맛있게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식당에서의 시간을 무리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상황이 나에게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이게 가능했다니. 우리가 집이 아닌 곳에서 특정 1인의 희생이 요구되지 않는 상황을 유지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영상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다니. 아이들에게 새삼 고마웠고 또한 뜨끔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너무 아이들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아이들은 매일매일 자라고 있었는데 나만 멈춰서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밥을 먹고 에너지를 충전한 아이들은 식당 앞 광장에서 킥보드를 탔다. 아이들의 에너지는 어른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원이 달랐다. 씽씽 발을 구르며 킥보드를 타는 것만도 힘이 드는데 까르르 숨이 넘어가게 웃는다.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 걸까. 그저 신기한 존재들. 동생 부부는 평소에도 늘 육아에 지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만나는 날이면 나와 짝꿍이 특히 짝꿍이 몸으로 놀아주는 일을 많이 한다. 위험하지 않은 곳에서 마구 뛰노는 것은 우리에게도 참 좋았다. 성인이 되고서 운동으로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놀면서 뛰어다닐 일은 거의 없었다. 조카들은 무언가 더 제안하지 않으면 킥보드만 타면서 하루종일 보낼 수 있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질릴까 봐 그럴 틈을 주지 않으려고 미리 계획한 대로 광장 옆에 있던 새로운 놀이터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놀이터의 세계도 무궁무진했다. 다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놀이기구는 다양했고, 기구마다 몸을 사용하는 부위도 다 달라지도록 설계를 해 놓은 것 같았다. 이번 놀이터에서는 구름다리처럼 손과 팔의 힘으로 매달리는 기구에 재미를 붙이더니 세명의 아이들이 순서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매달리기를 했다. 팔에 힘이 빠지면 잠시 시소를 타러 가기도 했다가, 성인용 운동기구에 관심을 보기도 했다가,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다고 요구하면서 쉼 없이 움직였다. 그러다가 다시 또 매달리기로 돌아왔다. 킥보드처럼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그냥 둔다면 이렇게 하루종일 쉬지 않고 놀겠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제는 아이들보다도 어른들이 지쳐가고 있었다. 동생은 한참 전부터 놀이터 구석 벤치에 앉아서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다. 놀이터에서 계속 놀고 싶은 아이들의 관심을 돌릴 때가 왔다. 별것 아니지만 언제나 효과 만점인 그것,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고 싶은 사람~~"하고 외치면 너도 나도 한 팔을 하늘 위로 뻗으며 "저요~!!!!"하고 큰 소리로 대답한다. 귀여운 것들.


우리는 놀이터를 빠져나와 다시 이동하지만 모든 것은 동네에서 도보로 해결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이들과 놀 때의 나의 지론이다. 도구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서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각자 먹고 싶은 맛을 고르도록 시간을 주고, 한 명씩 원하는 맛을 이야기했다. 가장 많은 맛을 경험한 하율이가 가장 많이 고민했다. 아는 것이다, 이 맛도 저 맛도 맛있다는 것을. 한참을 고민하다가 딸기맛을 먼저 고르더니 주문 직전에 다시 상큼한 맛의 셔벗으로 주문을 바꿨다. 두 가지 맛 모두 먹고 싶은 마음을 수줍게 어필했지만 가장 원하는 것 하나만 고르게 했다. 아직 맛을 잘 모르는 하준이와 하람이는 부모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31가지 맛 중 하나라기보다는 2~3개 중 하나의 맛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염없이 길어질 선택의 시간을 무리 없이 단축시키기 위한 부모의 경험적인 노하우처럼 보였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각자 원하는 맛의 아이스크림을 받아 작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달콤함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했다. 하율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이스크림으로 회를 뜨듯이 얇게 한 숟가락씩 천천히 아껴 먹고 있었다. 먹으면서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다고 자랑도 했다. 고민하다가 포기한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고른 막내 동생의 아이스크림을 보며 한 입만 줄 수 없냐고 호소를 했으나 단호하게 거절하는 하람이. 하율이의 서운함이 느껴져서 하람이가 딴짓을 하는 동안 몰래 하람이의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서 하율이에게 줬다. 우리 둘만의 비밀이 생겼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재밌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다시 걸어서 집으로 갔다. 어른 넷, 아이 셋. 한 명의 아이에게 한 명의 어른이 할당되는 여유. 참 중요한 것 같다. 평소에는 세명의 아이가 한 명의 엄마에게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는데, 그래서 엄마 껌딱지 같은 말들이 생겨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자주 보지 않는 나와 짝꿍에게도 잘 안겨 붙는 아이들을 보니 엄마 껌딱지가 아니라 자기 손을 함께 잡아줄 다정한 어른이 필요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손 잡고 걸어가면서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별것 아닌 이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침부터 계속 노느라 오후 3시가 넘어가니 슬슬 지쳐갈 법도 한데 아이들은 끝까지 밖에서 놀고 싶어 했다. 이제 오늘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놀이터인 집 앞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 아무도 없어서 아이들은 그네를 마음껏 탈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놀이터의 센터는 그네다. 눈치 보지 않고 그네를 계속 탈 수 있다니. 아이들은 끝까지 즐겁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살피며 어른들끼리의 대화를 나눴다. 따뜻한 5월의 봄날 어느 일요일 오후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챙겨 줄 물건들을 집에서 가지고 나와서 전해주고, 동생네 가족은 너무 늦기 전에 돌아갔다. 아이들이 우리와 보낸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보여주는 척도는 헤어질 때의 인사라고 생각한다. 짜증도 보챔도 없이 각자의 카시트에 올라탄 조카들이 우리를 빤히 본다. 우리는 "안녕, 잘 가. 다음에 또 보자."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고, 아이들은 올망졸망 우리를 응시하며 "안녕!"과 "사랑해요!"를 몸으로 표현하고 입으로 말했다. 출발한 지 5분도 안돼 아이들의 엄마인 올케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애들 5분도 안되고 곯아떨어졌어요." 천사의 얼굴로 자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과 함께. 오늘 우리는 정말 즐겁고 성의 있게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이 나에게 그런 확신을 주었다. 어느새 아이들이 자라서 내가 어려워했던 세계에서 한 발짝 다가와 함께 주고받는 시간을 보내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내 마음도 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그런 시간 보내고 있는 동생 부부도 오늘 우리가 느낀 이런 감정들을 느끼며 살겠구나 싶었다. 부디 그런 감정에 무뎌지지 않기를 바라며 동생네 다섯 명 가족이 행복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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