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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기행 2

입도(入島)

by 이현

가파도는 제주 본섬과 이어지지 않은 섬이라 파도가 심하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가파도로 입도하는 여객선이 운항되지 않는다. 나와 짝꿍은 제주에 갈 때마다 가파도에 가는 것을 기본값으로 두지만 날씨에 따라가지 못하는 날이 생기기도 했는데 경험적으로 50대 50의 확률이었던 것 같다. 올봄 짝꿍과 일주일간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확인한 일기예보에 따르면 4월 30일에 가파도에 입도해서 다음날인 5월 1일에 나오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운이 따랐는지 5월 3일부터 사흘간 1,0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가파도에 가기 전날, 여객선 운항시간표를 알아보다가 평소와 다르게 배편이 적어도 두 배는 많아졌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알고 보니 청보리 시즌이라 평소보다 2배 이상 여객선을 운항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보통 7, 8월 여름휴가를 이용해서 제주도를 다녀갔기 때문에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가파도 청보리 축제는 해마다 4월경에 개최되는데 작년까지 코로나19로 중단되었다가 올해 재개되었고, 4월 8일부터 16일까지 축제 기간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언제 가더라도 그 시기만의 매력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파도의 성수기는 3월 말부터 5월 초까지로 보면 된다. 축제는 끝이 났지만 오히려 지역 행사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니 다행이었다. 애초에 청보리 때문에 가파도에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청보리도 볼 수 있다니 조용히 들뜨는 기분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시간대를 피해 16시 40분 티켓을 끊고 여유 있게 입도했다. 이 시간에 섬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오는 배편이 없기 때문에 개인 선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반드시 섬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배에 타는 사람이 적다. 섬 주민들과 우리 같은 몇몇 들뜬 여행객들이 전부이다. 요즘은 등에 진 거대한 짐으로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그 정체성을 드러내는 젊은 백패커들이 종종 있어 전과 다른 다른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처음 가파도에 갔던 날을 잊을 수 있을까. 단언하건대, 없다, 절대로. 당시 애인이었던 짝꿍은 언젠가 나와 함께 자신의 유년시절 추억이 있는 가파도에 가보고 싶어 했는데 2015년 8월 여름휴가를 제주로 가게 되면서 그 귀여운 소망이 실현되었다. 우리는 가파도에 갈 계획을 세웠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짝꿍은 애인을 데리고는 처음으로. 짝꿍은 휴가가 시작되기 전 미리 할머니께 연락했고 나와 함께 할머니를 뵈러 간다고 말씀드렸다. 당연히 부산에 계신 짝꿍의 어머니도 그 소식을 전해 들으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은연중에 할머니를 뵈러 간다는 우리를 칭찬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휴가가 시작되고, 가파도에 가는 날 아침, 기대와는 달리 흐린 하늘이 우리를 맞았다. 첫배를 탈 생각으로 새벽부터 서둘러 제주 시내에서 모슬포 운진항으로 부지런히 이동했다. 바다를 경험한 적이 별로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다와 육지의 날씨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잘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바람이 좀 불었으나 제주도 바람이 어디 하루이틀 이야기도 아니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구름이 두툼하게 덮여 해가 보이지 않는 흐린 날이었지만 아무렴 배를 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여러 날씨 중 어떤 활동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을 비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배가 뜨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짝꿍의 말이 와닿지 않았고, 그냥 흘려 들었다.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해서야 우리는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어 여객선 운항이 잠시 중단되었고, 날씨에 따라 오후에는 운항을 재개할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단언할 수는 없는 상황을 알게 됐다. 기다렸다가 오후 배를 탄다고 하더라도 섬 안에서 발이 묶일 가능성도 있었고, 그 당시에는 가파도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온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앞으로 남은 휴가 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아쉽지만 우리는 입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짝꿍은 부산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하며 우리의 상황을 말씀드렸다. 여기까지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매우 그럴법한 평범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이다음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내 알량한 상상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어머니의 동생, 그러니까 짝꿍의 외삼촌을 소환했다. 외삼촌은 자신의 배를 소유하며 조업을 하는 어부였다. 게다가 항구 근처에 살고 있어 실시간 바다 사정을 잘 아는 외삼촌에게 어머니가 SOS를 보낸 것이다. 그날도 배를 타고 나가 밤새 조업을 하고 들어와 잠시 잠을 청하던 외삼촌은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후 우리를 집으로 불렀다. 얼떨결에 나는 짝꿍의 외할머니를 뵈러 가려다 외삼촌 가족과도 대면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는데 그때 내 기분 따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 가족이 처한 중차대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몰두하고 있었다. 정성스럽고 좋은 음식 먹여 보내고 싶은 마음에 새벽부터 매운탕거리며 해산물들을 사 오시곤 섬에서 오매불망 손주만 기다리고 계시는 할머니, 손주 못 봐서 서운해할 할머니가 걱정이라 부산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계신 어머니, 밤새 조업하느라 피곤해 죽겠는데 잠도 못 자고 어머니의 SOS에 불려 나온 항구 인근에 사는 외삼촌, 그 사이에 언제 다시 운항을 시작할지 모를 여객선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나와 짝꿍이 있었다. "외삼촌 배 타고 가파도에 들어가는 건 어떻겠니?"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로서는 혜안이었을 것이다. 짝꿍은 뭘 그렇게까지 무리해야 하나 싶어 싫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할머니의 생각과는 별개로 누군가의 무리가 할머니를 서운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외삼촌에게 가파도에 우리를 데려다주라고 부탁하셨지만 사실상 명령이었다. 외삼촌은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다. 풍랑주의보에 그 큰 여객선도 운항을 중단했다는데 외삼촌 배를 타고 가파도에 간다고? 뭐지? 도대체 이 상황은? 배를 타고 가면서 외삼촌의 속사정을 들었더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외삼촌은 괜히 싫은 내색 해서 듣기 싫은 소리 듣고도 결국 어머니 뜻에 따라 하게 될 일이라면 우리 앞에서 적당히 자신의 누나를 뒷담화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고초를 토했다.


우여곡절 끝에 외삼촌이 운전하는 배를 탔다. 처음에는 여객선 운항이 중단됐음에도 불구하고 가파도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다. 자가용처럼 이용할 수 있는 배라니. 선체가 새하얀 깔끔하고 세련된 요트가 아니라 조업용 어선이기 때문에 언뜻 봐도 지저분했고 묵은 생선 비린내에 코끝이 얼얼했으며 앉을자리도 마땅치 않았지만 나름의 흥분이 있었다. 그때 가파도행의 목적은 애인의 할머니를 뵈러 가는 것이기도 했지만 내 마음속 1순위는 가파도 여행이었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지는 어머니가 제안한 플랜 B는 다소 독단적이긴 했지만 재미났다. 역시 아는 게 없으면 무서운 것도 없는 법. 부릉부릉 엔진소리와 함께 출발하는 배 위에서 나는 풍랑주의보라는 말의 무게감을 몸소 체험했다. 일단 방파제에서 벗어나자마자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시야에는 무거운 구름이 빼곡한 뿌연 회색 하늘과 휘몰아치는 검푸른 바다와 우리가 탄 배만 있었다. 파도의 모양에 따라 배가 아래로 훅 내려가면 배 안으로 바닷물이 사정없이 들어왔다. 비가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옷은 계속 젖어갔다. 배를 타기 전에 내가 체감했던 바람은 이 정도로 심하지 않았는데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달랐다. 파도가 너무 심해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뱃멀미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뱃멀미를 이겼던 건 두려움이었다. 이러다 조난 사고가 나겠다 싶은 두려움. 어렸을 적 이런 경험을 종종 해봤던 짝꿍은 나보다는 여유가 있어 보였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그날은 내가 너무 무서워해서 자기까지 당황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더 괜찮다는 듯 행동했다는 데에 더 놀랐다.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해서 가파도에 갔어야 했는지....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몰랐으니 망정이지.


그날의 경험으로 다시는 여객선이 운항하지 않을 만큼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 예상되면 가파도에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파도에 갈 계획이 있더라도 입도하는 여객선 승선권을 끊은 후에야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오늘 가파도에 간다고 말씀드리게 되었다. 미리 알렸다가 지난번처럼 준비하고 기다리실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우리 나름의 방법이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와서 내어줄 만한 음식이 아무것도 없다며 우리를 나무라시지만 막상 차려주시는 밥상을 보면 늘 푸짐했다. 더 좋은 음식, 더 신선한 음식 내어주시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딱 그 정도가 좋았다.


9개월 만에 다시 가는 가파도다. 우리는 배가 출항할 때 잠깐 1층 의자에 앉아 있다가 바로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서 바닷바람 온전히 맞으며 멀어지는 본섬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갈 때마다 매번 보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감동하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게 된다. 아마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연도별로 모아보면 다 비슷비슷해 보이겠지만, 그리고 경험상 며칠만 지나도 다시 꺼내보지 않게 될 사진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매번 아쉬워 계속 사진으로 남겨 놓는다. 오늘처럼 이런 날 문득 찾아보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 가파도를 향하는 방향에서 왼편을 바라보면 최남단해안로를 따라 이어지는 풍경과 이내 나타나는 송악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말 아름답다. 짝꿍과 나는 각자 기분에 취해 결국 그중에 한두 개 남을 동영상과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쏟아지는 늦은 오후의 햇살에 일렁이는 바닷물과 배와 부딪혀 생기는 흰 거품 뿜는 파도도 한참을 봤다. 그러다 보면 멀리 바다 위에 단정하게 깔아 놓은 널빤지처럼 보이던 가파도가 어느새 눈앞에 입체적으로 펼쳐지고, 배 위에서의 15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가파도 선착장에 도착하면 창문 밖으로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마지막 배를 타고 가파도를 나가는 사람들. 그들을 보며 괜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제 이 섬이 내 차지인 것만 같아서. 배에서 내리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함께 내린 이 사람들은 아마 내일 우리가 가파도를 떠날 때까지 한두 번 마주칠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약간의 유대감도 생긴다. 그렇게 우리는 청보리가 일렁이는 가파도에 무사히 입도했다. 4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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