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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시간

군자란의 일주일

by 이현

작년 봄, 요맘때였다.
"어머니, 이 꽃은 이름이 뭐예요?"
주황색 꽃이 예쁘게 활짝, 정말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여쭸다. 군자란이라고 하셨다. 예쁘다는 한마디에 대뜸 시부모님께서 가져가 키워보라며 내주셨다. 우리 집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어코 부산에서 용인까지 군자란 화분을 실어 날랐다.


군자란은 신기할 만큼 집안 어디에 놓아도 어울리지 않았다. 거실에서 잘 보이지 않는 베란다 구석이 여러모로 가장 적합했다. 굳이 가서 살펴보지 않으면 영영 신경 쓰지 않을 장소였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꽃이 다 저버렸다. 내 욕심에 괜한 걸 가져왔나 싶었다. 꽃이 핀 군자란만 봤기 때문에 꽃잎이 다 떨어진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다. 하기야 어떻게 사계절 내내 꽃이 피어 있겠냐며 자문하고 나니 바보스럽기도 했다. 초록초록하던 잎이 점차 노랗게 말라가기 시작했다. 애물단지로 만들긴 싫어 날짜를 정해두고 물도 꼬박꼬박 주었다. 겨울 추위에 혹시라도 시들어버릴까 자주 들여다봤다. 그렇게 지난봄 부산에서 온 군자란은 우리 집 베란다 한편에서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다.


며칠 전, 베란다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화분을 무심코 보다가 잎사귀 사이로 전에 없던 연두색 몽우리가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봄, 꽃이 진 이후 늘어진 몇 가닥 잎이 늘 한결같았는데 이런 변화는 꽤나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꽃이 피는 걸까? 그날을 기점으로 매일 군자란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베란다로 나가 화분을 살폈다.


한 이틀 혹은 사흘 아니 나흘 정도 지났을 무렵, 연둣빛 몽우리에 주황색이 돌기 시작했다. 일 년 전에 봤던 그 주황색의 활짝 핀 꽃이 그려졌다. 그 꽃이 다시 오는구나..... 상실의 기억은 생각보다 강렬할지도 모르겠다. 피기도 전에 저버릴 꽃이 벌써부터 아쉬워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매일 아침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일주일.



image_4609740351490093895917.jpg?type=w1 1일 차


image_6291043351490093895904.jpg?type=w1 2일 차


image_9430635611490093895891.jpg?type=w1 3일 차


image_6102008171490093895877.jpg?type=w1 4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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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_2386448111490093895849.jpg?type=w1 6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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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활짝 핀 꽃, 곧 터질 것 같은 꽃망울, 야리야리한 연두 몽우리까지 하나의 화분에 심어진 군자란의 모습은 다채로웠고, 그 일주일은 느릿느릿하면서도 변화무쌍했다. 대단하지도 않은 기록이지만 어찌 됐든 군자란을 관찰하던 며칠 동안에 관찰일지를 쓰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한 시간이,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그리고 일 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가끔은 꽃망울 하나가 터지는 시간을 삶의 단위로 정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 곡의 음악을 듣는 시간일 수도 있고, 한 권의 책을 읽는 시간일 수도 있고,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시간일 수도 있다. 꽃은 피고 있는 중이고,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시간의 단위를 적용하며 사는 법을 터득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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