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떠있는 것 같았다

2018 홋카이도 1화

by sincerely yours

홋카이도 1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스미마셍"


이 정도의 일본어만 내뱉으면서 참 잘도 여행을 다녔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2009년부터 꾸준히 다녔던 곳이 제주와 일본인데, 홋카이도는 언제나 비행기 티켓 가격이 비쌌다. 그러다보니 자투리 돈과 자투리 시간을 모아 가는 여행에서 홋카이도는 언제나 후순위였다.


직장을 옮긴 뒤 첫 휴가였다. 삼교대를 했던 전 직장에서 쓰던 '오프'의 개념이 아닌 '하계휴가' 명목의 3일을 받고는 고민 끝에 결정한 홋카이도행. 사실 27만 5000원이라는 비행기 티켓 가격에 홀랑 넘어가 미처 날씨가 더워지기 전인 6월 30일에 여행을 떠났다.


사실 6월 말, 7월 초의 홋카이도는 계절 상 조금 애매한 것 같다. 하얗게 쌓이 눈은 당연히 없고, 여름의 홋카이도에서 기대하는 보라색 라벤더는 만개하기 전이다. 심지어 내가 여행을 간 주에는 장마가 겹쳐 5일 내내 흐린 하늘을 볼 수 밖에 없었다. 비가 오는 날도 나름의 운치가 있고 비가 여행의 일부가 되어 주지만, 파란 하늘과 녹색 들판의 조화를 기대했던 비에이나 후라노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이 생겼다.


아침 8시 20분에 출발의 진에어 비행기는 지연 없이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는데, 소위 유명하다는 식당이 많이 입점되어 있고 심지어는 온천도 이용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러 공항 내에서 이동하던 중 홋카이도에서 하고 싶은 것 리스트에 있었던 '1일 1우유'를 실천하기 위해 카스테라 전문점에서 병 우유를 샀다. 그곳은 나중에 알고보니 소위 '우유바(milk bar)' 형식으로 테이블에 앉아 우유를 마시고 병을 반납해야 하는 곳이었는데, 처음에는 그걸 모르고 병을 챙겨가려고 화장실에서 깨끗하게 설거지까지 했다. 다행히 병 회수함을 발견하여 어글리 코리안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내가 먹은 병 설거지까지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4박 일정 중 첫 1박은 시코츠코 근처의 오래된 료칸으로, 나머지 3박은 삿포로 시내의 호텔로 잡았다.

시코츠코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료칸 송영버스를 타는 것이 첫번째 미션. 고급 료칸들은 공항까지 셔틀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듯 했지만, 나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게다가 송영버스를 예약하려고 보냈던 이메일에는 결국 답을 받지 못해 불안한 마음이 컸다.

시코츠코로 가는 길은 '스카이로드' 라고 불리우며 도로 양 옆으로 빼곡한 숲이 이어진다. 처음 보는 종류의 풀들이 가득했다. 일본 버스는 보통 뒤로 타서 앞으로 내리면서 요금을 지불하는데, 대개는 기사님 옆에 잔돈 교환기가 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No Change"라고 유리창에 써 붙은 노란색 종이에 겁을 먹고는 1030엔이었던 요금에서 동전 30엔이 없어서 2000엔을 집어넣고 말았다. 기사님을 아무리 쳐다봐도 묵묵부답으로 무려 970엔을 포기하고 터덜터덜 내렸다. '잊어버리자, 잊어버리자' 고 되뇌이며 료칸의 송영버스가 혹시 와 있을까 기대했지만 역시 그런 일은 없었다. 료칸에 전화를 걸어 버스가 필요하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시코츠코 주변을 구경할 수 있었다.

시코츠코는 여의도의 9배 면적이라고 한다. 꼭 호수가 아니라 바다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가 마치 충주호 유원지 같아서 한번씩 '여기는 지금 일본이야!'라고 되뇌이지 않으면 한국인지, 일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호수 주변을 구경했다. 주말을 맞아 나들이 나온 가족, 연인, 개들이 많아서 나도 그들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다만 한국 패키지 관광의 코스에 들어있는지 경상도 사투리도 함께. 한국으로 치면 솜사탕, 번데기, 핫도그, 닭꼬치를 모두 파는 노점같은 가게가 있어서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오징어구이를 사먹었다.

무사히 송영버스를 타고 호숫가 도로를 따라 숙소로 가는 길.

미니버스 창문으로 호수가 가득해서 마치 물 위에 떠있는 것 같았다.

마루코마 온센 료칸은 100년이 넘은 곳으로 중간에 리모델링을 했다곤 해도 낡은 콘도 같은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워낙 숙소 냄새에 민감한지라 첫 느낌은 솔직히 실망이었다. 방충망에는 모기가 가득해서 창문을 열기가 망설여졌고 바닥도 괜히 끕끕한 것 같았다. 하루를 지내다보니 소박하지만 열심히 숙소를 유지해 나가는 사람들의 노력이 보이고, 무엇보다도 침구 하나는 최고였다.(그리고 모기들은 희한하게 방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들어온다 해도 사람에게 오지 않았다)

유타카를 입고 온천을 하고 가이세키를 먹는 것. 오랫동안 상상했던 그 장면에 분홍색 노을과 노란색 멜론이 더해졌다.

저녁 시간 동안 두 번의 온천으로 노곤해져 거북이 등껍질을 닮은 료칸 이불 속에서 단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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