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홋카이도 2화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돈지루. 돈까스 옆에, 가정식 백반 옆에 우직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 돼지고기 된장국의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마음이 설렌다. 손에 들고 후루룩 한 모금 머금으면 머리까지 따뜻해진다.
마루코마 온센 료칸의 조식은 서양식보다는 일본식이 위주로, 하얀 쌀밥과 돈지루를 나이 지긋한 직원분이 직접 떠주셨다. 일본의 쌀밥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이 산골짜기를 벗어나려면 또다시 어제의 루트를 반복해야 했다. 시즌에 따라 료칸에서 삿포로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듯 했지만 아쉽게도 해당이 안됐다. 시코츠코 버스정류장까지 송영버스로 이동 후 치토세 역 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이번엔 잔돈 준비를 확실하게 했다. 치토세 역에서 삿포로 역 까지는 급행 전철로 네 정거장. 드디어 도착한 삿포로 시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삿포로는 계획도시라 마치 맨해튼처럼 바둑판 모양으로 길이 나있다. 니조시장에 위치한 식당으로 가는 길에 삿포로의 상징인 TV타워를 마주쳤다. 코난을 보지 않아서인지, 큰 감흥은 없었다.
여러가지 해산물을 밥 위에 올려 먹는 '카이센동' 전문점인 '오히소'는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집이다. 웨이팅을 하며 고른 메뉴는 우니, 대게살, 연어가 올라간 조합이었다. 해산물과 친하질 못해서 연어알 대신 연어회를 선택했고, 홋카이도에 왔으니 대게는 한 번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다 먹은 후 "다음에는 우니랑 연어알만 먹어야겠어" 라고 말했다. '다음'이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서울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 전 그 도시의 궁금한 카페들을 구글맵에 찍어 놓는데, 도쿄나 교토의 경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아 은하수 대탐험을 해야 한다. 삿포로는 도시가 작아서인지 꼭 가보고 싶은 곳은 네 군데 정도 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인 마루야마 공원 근처의 '모리히코(森彦,Morihiko)'. 건물, 커피맛, 직원의 친절함이 모두 조화로웠다.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기념품으로 드립백 커피를 샀다.
마루야마 공원으로 가는 길엔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았다. 야구장에선 고교 야구 응원 소리가 들려왔고, 키 큰 나무들이 빽빽했다. 마루야마 신사에서 100엔짜리 점괘를 뽑았는데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에 뜨끔하고, Someone now you are seeing is the best 라는 애정운은 동행자를 기쁘게 했다. 마루야마 동물원엔 북극곰이 산다는데, 그래도 여기에 사는 북극곰은 겨울 나기가 조금 수월하겠구나 싶었다.
비는 은근하게 사람을 지치게 한다. 물 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것, 손에 계속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 여행지에서는 더 피곤하게 느껴진다. 걷는다는 행위가 (나의 경우에) 여행에서 필수적이고, 들고 다니는 짐의 무게 또한 하루의 피로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완전히 미역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지로 숙소의 평가를 한다면 삿포로 크로스 호텔은 아주 훌륭했다. 욕실과 건식이 나뉘어 있는 일본식 화장실, 파자마, 안마의자, 대욕장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대욕장에는 다이슨 헤어드라이어가 비치되어 있는데다가 코를 간지럽히는 퀴퀴한 카펫도 없었다.
하루의 습기를 씻어내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스프카레를 먹으러 나갔다. 삿포로의 스프카레는 워낙 유명한 식당이 많았지만 숙소에서 가까운 'Kanako'를 선택했다. 흔히 먹는 카레에 비교하면 '카레국'에 가까웠지만, 인도에서 매일 먹었던 묽디 묽은 카레가 떠오르게 만드는 비슷한 향이 났다. 구운 야채가 맛있어서 "다음에는 야채카레에 브로콜리를 추가해서 먹어야겠어" 라고 말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조명이 켜진 홋카이도청을 구경했다. 불 꺼진 오래된 건물이 조금 무섭기도 했다. 일본 전역에 비가 많이 왔는지 텔레비전에서는 계속 수해와 관련된 뉴스를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