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홋카이도 3화
오늘도 조식 이야기로 시작. 홋카이도는 재료가 좋아서인지 삿포로 시내 호텔의 조식이 대부분 기본 이상은 한다고 한다. 작년, 퇴사 후 긴 여행을 하는 동안 아주 많은 조식을 먹었는데 따뜻한 음식이 거의 없었던 북유럽에서 베를린으로 넘어온 뒤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크로스 호텔 삿포로의 조식은 음식과 음료의 가짓수도 많고 맛도 좋았다. 평소 잘 먹지 않는 흰우유 한 잔으로 끝내기 아쉬운 식사를 마무리했다.
여행을 가서 그 지역의 대학교를 둘러본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진 않았다. 학생일 때는 별로 감흥이 없더니 오히려 졸업을 하고 나서 캠퍼스 구경을 다니고 학생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학생 시절이 그리워서 찾아가는 지도 모르겠다.
홋카이도 대학교는 삿포로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아주 넓은 캠퍼스엔 한 눈에 봐도 100년은 된 것 같은 나무들이 많고 잔디밭이 지천이었다. 캠퍼스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지, 다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듯했다. 언덕과 계단이 많았던 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는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누비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방학 기간 이어서 가끔씩 보이는 관광객들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조용했다. "Boys be Ambitious!" 라는 명언을 남긴 초대 교장의 흉상을 찍고, 포퓰러 나무가 있는 길을 찍는게 일반적인 코스인 듯 하다. '야망'이라는게 뭔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건지 궁금해졌다. 까만 보석같은 눈을 가진 위협적인 까마귀가 많았다. 이 녹색의 캠퍼스가 겨울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졌다.
기념품점과 카페를 겸하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팔각형의 컵이 아담하고 고전적인 느낌을 줘서 기념품으로 하나 장만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삿포로 역까지 걸어가는 사이에 발이 모두 젖었다. 찌걱거리는 플랫 슈즈를 신고 오타루로 가는 열차를 탔다. 삿포로에서는 스이카(Suica)를 사용할 수 있어서 원래 가지고 있던 교통카드를 사용했다. 오타루로 가는 길에 열차의 오른쪽으로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했지만, 폭우로 인해 바다도 하늘도 경계 없이 모두 뿌연 회색이었다.
미나미 오타루 역에 내렸다. 우산을 뚫을 기세로 비가 쏟아지는데, 그 와중에 회사에서 급한 연락이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르골당에 급하게 들어갔다. 평소 같았으면 하나쯤 살 법했는데, 축축한 신발과 옷 때문인지 집중해서 오르골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일단 앉아서 쉬어야겠다, 판단하고 르타오(Le Tao) 본점으로 갔다. 본점 건물 전망대에 가면 반원형의 창문으로 반원형의 오타루 시내를 구경할 수 있다. 간단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점원에게 안내받았다. 딸기 쇼트 케이크를 가리키며 "이거 맛있어요" 라고 추천까지 해주셨다. 마음이 약해서 잠시 고민했지만 시그니쳐인 치즈케이크와 계절 한정 멜론 쇼트 케이크를 시켰다.
오타루는 옛 항구도시의 흔적인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인천의 배다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타루에 당일치기로 간다면 메인 거리를 따라 상점들을 구경하고 하이라이트인 운하를 보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미스터 초밥왕을 좋아한다면 초밥을 먹거나 눈 쌓인 겨울이라면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를 찾아갈 수도 있겠다. 이도 저도 아닌 날씨에 방문한 우리는 르타오 건물 바로 옆으로 나란히 있는 키타카로(Kitakaro)와 롯카테이(Rokatei)에서 시식으로 입을 다셨다. 키타카로는 꼭 사또밥처럼 생긴 과자들과 슈크림, 아이스크림이 유명해서 여기서도 계절 한정 메론맛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계절 한정'이라는 말에 늘 약해진다. 롯카테이는 건포도가 들어간 버터 샌드가 유명하다. 맛만 볼 생각으로 조금씩 사고, 선물용은 나중에 공항에서 모두 장만했다. (리큐어가 들어간 사탕을 샀는데, 공항에 작은 사이즈는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념품 가게들은 도쿄의 아사쿠사 거리에서, 교토의 기온거리에서 본 가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유리공예가 발달한 지역이라 유리로 된 기념품들이 특징적이었다. 천으로 된 우산이 모두 젖어서 정수리에 물이 똑 똑 떨어질 지경이 되어 운하의 가스등이 점등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삿포로로 돌아가기로 했다. 비오는 오타루 운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하고 보잘 것 없었다. 여름에 홋카이도 여행을 간다면, 오타루는 굳이 추천하고 싶지 않았다.
삿포로 역에 도착하여 이른 저녁을 먹었다. 삿포로 역과 연결되는 많은 백화점 중 '라멘 공화국'이라는 라멘 거리가 있는 Esta에 갔다. 둘러 보다가 '점원이 친절해 보이는' 이상한 기준으로 식당을 골랐다. 삿포로는 미소 라멘이 시작된 곳이다. 다 먹고 나오면서 보니 각 식당에 대한 소개가 나와있는 브로슈어가 입구에 있었다.
서울에서 끝내지 못한 일 때문에, 야경을 포기하고 호텔방에서 한참 태블릿을 붙잡고 있었다. 처음 하는 경험이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