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홋카이도 4화
홋카이도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아주 다양하고 많지만, 관광객들에게 접근이 가장 쉬운 곳이 비에이와 후라노다.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좌우가 바뀌는 운전에 자신이 없고, 모든 번거로움을 줄이고자 일일 투어를 신청했다. 여행사 마다 조금씩 다른 코스로 구성되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쿠루쿠루 버스'를 예약했다. 흰수염 폭포가 일정에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미팅 시간에 맞추어 삿포로역 북쪽 출구 분수대로 가면 10분 전 쯤 가이드 분이 나타나 이름을 확인하고 자리를 배정해준다. 가이드를 빨리 만날 수록 원하는 자리를 앉을 수 있으니 주차장 언저리에서 헤매지 말고 출구 앞에 있는 것이 좋다.
버스에 자리를 잡고 편의점에 미리 들러 사두었던 주먹밥을 먹었다. 출발 후 한시간 정도 달리면 휴게소에 들르는데, 마치 면세점처럼 온갖 특산품을 살 수 있다. 구매를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관광버스라면 어쩔 수 없이 정차하게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차 시간이 너무 길었다) 300엔짜리 조각 메론을 사먹었다.
삿포로에서 출발 후 두시간 반 쯤. 본격적으로 비에이 관광이 시작된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정을 넣어서 시간이 부족한지, 켄과 메리 나무, 엄마와 아이 나무, 패치워크 로드 등은 모두 버스 안에서 창으로만 구경했다. 날씨가 흐려서 그다지 아쉽진 않았지만 헛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온 직후라 기사님께서는 "'청의 연못(아오이이케)'이 아니라 '갈색 연못'일 것이다" 고 말씀하실 정도였고, 일부 도로는 비 피해 때문에 막혀있기도 했다. 다행히 '갈색 호수'까지는 아니었지만 사진에서 봤던 청량한 에메랄드 색 또한 아니었다. 대신 물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신비스러운 느낌이 든다며 스스로 위안 했다. 왜 나뭇가지들이 연못 가운데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가이드에게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청의 연못을 구경하는 도중, 참지 못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 코스는 사계채 언덕. 알록달록하게 심어 놓은 꽃 보다 멀리 보이는 연두색 들판이 좋았다. 홋카이도의 특산품인 옥수수를 하나 입에 물고 걷기 시작했다. 가이드분이 생옥수수를 추천했지만 시도하진 못했다. 트랙터나 코끼리 열차를 이용해도 되지만 주어진 시간에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크기였다. (이때까진 체력이 괜찮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시간. '오모이데노 후라노'라는 단체 식당에서 스프카레가 제공되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서 식사를 해야 해서 모두가 말없이 식사에 집중하는 광경이 웃겼다. 닭고기가 질긴 편이라 내 입맛에는 이틀 전 사먹었던 스프카레가 더 맛있었다. 점심 식사를 자유롭게 하고 싶다면 쿠루쿠루 대신 다른 상품을 찾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식사 후 마지막 코스는 '팜도미타(Farm Domita)'. 이름 그대로 도미타 씨가 운영하는 라벤더 농장이다. 가이드 분이 형제 간의 재산 싸움이 얽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런 것이 패키지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가이드북을 꼼꼼하게 읽기 귀찮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 비도 오고, 사람이 많아서 후다닥 아이스크림을 먹고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샀다. 정말이지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라벤더 아이스크림은 다들 사진 찍으려고 사먹겠지, 싶었는데 생각보다 라벤더 특유의 시원향 향이 많이 났다.
돌아오는 길에 역시나 휴게소에서 꽤 긴 시간을 정차하고 저녁 다섯 시가 조금 넘어 삿포로 역에 도착했다. 호텔 바로 옆 건물에 있는 교자 가게에서 간단히 배를 채울 교자를 샀다. 쾌적하게 온도를 맞춘 호텔방에서 목욕을 하고 정리된 침대 시트 위에 눕는 순간을 위해 하루 종일 종종거리고 돌아다니는지도 모르겠다.
내일 출국을 위한 짐 정리를 하고, 체력을 회복한 상태로,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래러 나갔다. 오도리 공원을 기준으로 호텔은 북쪽, 식당이 많은 번화가는 남쪽이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삿포로 시에서 가장 번화한 '스스키노' 쪽으로 걸어갔다. 삿포로 시에는 전차가 다녀서 지금까지 봤던 일본의 도시들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 오사카에 글리코상이 있다면 삿포로에는 니카짱이 있다. 수줍게 술잔을 들고 있는 니카짱의 뒷 배경이 은은하게 계속 바뀌었다. 거대한 간판들이 뿜어내는 빛이 대단했다.
마지막 만찬은 징기스칸으로 정했다. 양꼬치나 양념된 다진 고기가 들어가는 램샌드위치 말고는 양고기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라무(Ram)'라는 식당에 다행히 웨이팅 없이 들어갔다. 바 자리에서 혼자서 화로를 앞에 두고 먹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슬란드산 양고기가 수입되는걸 메뉴판에서 보고 잠시 충격을 받았는데,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아이슬란드 양들이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이 멀리까지 오는 거였다니. 홋카이도 산 안심과 양설, 함께 먹을 아스파라거스, 감자를 추가로 시켰다. (양파는 무한 제공)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삿포로 나마비루와 하이볼! 입이 짧고 내장과 친하지 않은 편인데도 모두 거부감 없이, 아니 정말 맛있게 먹었다. "두 번 먹을껄!!!" 직원들이 모두 친절하고, 바쁜 와중에 양념장은 어떻게 만드는지, 어떤 부위는 양념장 없이 그대로 먹으라고도 계속 신경을 써주었다. 양갈비 한 쪽과 네코맘마까지 시켜 식사를 마무리했다.
기분 좋게 든든한 배를 두드리며 호텔로 돌아와 메론 한 통을 썰어 더는 먹을 수 없을 때 까지 먹었다. 조각으로 파는 메론은 영 부족했다. 계절 한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