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미리트립to유럽 7화
어려서부터 엄마는 여행을 다닐 때 베개를 들고 다녔다. 잠귀는 밝아도 늘 잘 자는 편이었던 나는 인도에서도 침낭도 없이 담요 한 장으로 세 달을 버텼다. 그러던 내가 20대 후반에 들어 더운 나라에 갈 때에도 전기매트를 챙겨 다니기 시작하고, 30대에 들어서는 베개와 매트리스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베개를 챙겨 다니던 엄마를 이해하고 있다. 유럽의 가을은 꽤나 스산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던 엄마는 캐리어 하나를 퀸 사이즈의 전기장판과 베개, 햇반과 누룽지로 채웠다. 전기장판은 오바라고 핀잔을 주었으면서 매일 밤 엄마 옆에 누워 몸을 지지며 여독을 풀었다. 차가운 돌벽의 고성은 난방이 될 리가 만무했고, 무섭고 춥다는 핑계로 엄청나게 큰 침대에 장판을 깔고 네 식구가 가로로 누워 잠을 잤다. 잠결에 조금 더웠던 엄마는 온도를 낮춘다는 게 그만 최대로 올려서 등이 타는 듯한 밤을 보냈다.
안개가 가득 낀 마지막 아침. 조식은 무도회가 벌어질 것 같은 홀에 간소하게 차려졌다. 동네에 유일하게 있던 빵집에서 사 왔을 것 같은 빵 두 종류와 버터, 치즈, 요거트와 과일 조금이 전부. 바게트에 에쉬레 버터를 듬뿍 발라 먹으니 그 어떤 조식보다 맛있었다.
취리히 공항에서 인천으로 가는 밤 비행기를 타기 전 하루,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Vitra Design Museum)에 들러가기로 했다. 뮤지엄은 공항까지 가는 길목인 스위스 바젤 근처의 독일에 있어 차로 가기에 편리했다. 독일에 가는 일정은 없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4개국 여행이 되었다. 비트라는 스위스 가구 회사로 임스 체어와 같은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작품 제조업체다. Vitra campus라고 부를 만큼 넓은 공간에 띄엄띄엄 건물들이 있었는데, 가이드 투어가 아주 추천할 만하다고 한다. 아쉽게 투어는 못했지만 가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전시가 흥미롭고 무엇보다 건물이 무척 멋졌다. 부모님도 생각보다 좋아하셨다. 이케아는 비교 불가한, 이 풍경 그대로 옮겨오고 싶은 공간들에서 쉴 새 없이 감탄을 하다가 기념품숍에서는 이성의 끈을 놓고 싶었다. 뮤지엄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취리히로 출발했다.
취리히로 진입하니 차가 많아지고 막히기 시작했다. 일방통행이 많고 주차할 곳이 없어 한참을 빙빙 돌았다. 주차장 빌딩에 겨우 차를 대놓고 반짝 취리히 도보 관광을 했다. 취리히 시내에는 강이 관통하고, 전차가 다니고, 관광객이 아주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길에서 파는 군밤을 사서 린덴호프에 앉아 까먹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유럽여행을 간다고 하니 먼저 경험이 있는 선배들은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겁을 잔뜩 줬다. 보통 한 번 경험해 본 사람은 다시는 안 간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정이 꽉 차있는 패키지여행에 익숙한 부모님을 만족시키려면 계획을 빡빡하게 채우고 플랜 b, 플랜 c까지 준비를 해야 한다 했다. "엄마는 아무거나 다 괜찮아"에 내포된 의미 파악을 잘하라는 기사를 읽으며 유명한 곳에서는 각 잡고 사진 찍어드리기, 적절한 시기에 한식 제공 등등의 팁을 머리에 넣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힘들었나? 생각해보면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사실 가장 좋았던 여행 중 하나로 기억된다. 이동하느라 끼니때를 놓쳐도 불평 한 번 안 하고, "엄마는 딸내미들 덕에 너어무 행복해~"로 일관한 부모님 덕이 컸다. 사실 예전에 엄마와 둘이 했던 여행은 일대일로 엄마를 마크하느라 확실히 힘들었는데, 2대 2는 꽤 할만했다. 대중교통 이용은 최소화하고 우버 이용, 기차보다는 렌터카 이동,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일정에 넣기, 에어비앤비 활용이 내가 얻은 교훈이랄까.
어떻게 살아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도 부모님도 늙어간다.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 속에서 에피소드를 만들고 잘 기억하며 살고 싶다. 코로나 19로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고 나니 무리해서 다녔던 게 참 잘했다 싶다. 신기하게도 몇 년이 지난 뒤에도 살아가는 데에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두 자매는 2년 뒤 또다시 가족여행을 가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