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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머스썸머 Jul 31. 2018

달과 6펜스 / 서머싯몸

너는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물으신다면.

"너에게 묻는다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 언젠가는 나도 /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닿는 데까지 /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1. 인생에 있어 늦은 것은 없다지만 아무래도 뒤늦은 감이 있어보이는 스트릭랜드의 (달을 찾아가겠다는) 결심과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다소 과격한 그의 방식을 두고 '꿈vs현실' 혹은 '나vs가족' 등의 가치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려내기보다는 '내게도 저 자의 그림처럼 스스로를 뜨겁게 만드는 것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이번 모임의 주제로 <달과6펜스>를 제안하게 된 배경이다.


2. 고3 어느 날, 반 친구들의 이름과 빈 칸이 그려진 종이 한 장이 교실에 돌았던 날을 기억한다. 교지에 담을 내용이라며 각자의 장래희망을 쓰라는거다.

꽤 마지막에서야 전달 받은 나는 친구들의 답변(간호사,교사,플로리스트,스튜어디스 등.. 와, 세상엔 참 많은 직업들이 있구나.)들을 주욱 읽어내려오다 내 이름 옆 빈칸에 '직장인'이라는 세 글자를 또박또박 채워넣었다.

앞서 '지지않는다는 말'의 독후감에서도 밝혔듯 나는 일찍이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했던 치기어린 청소년이었던 탓이다.

*그리고 10년 뒤 장래희망을 이룬(?) 청소년이기도 하다.


3. 성인이 되어서도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은 아니다. 학과 전공을 선택했을 때에도, 취업을 준비할 때에도, 회사에 들어와 희망부서를 고를 때에도. 대부분 내 선택의 기준은 '많이들 하는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스스로를 집단 안에 스며들게 하는 것에 맞춰져있었다. (마찬가지로 이 '대부분'에 해당하는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

다만 딱 한 번, 내게도 스트릭랜드의 '달'과 같이 여겨지는 일이 생긴 적이 있다. 이유 없이 전공 수업을 빼먹고(다들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러는건 아니지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권 읽던 날, 그 오후의 풍경이 며칠간 머릿속을 좇아다녔다. 그날 이후 종종, 아니 자주 도서관 열람실을 드나들며 책의 물성에 사로잡혀서는 '출판/편집’이라는 일에 두근거림을 느끼게 되었는데..

졸업을 목전에 두고 4년 간의 전공과는 전혀 상관 없는데다 알아볼수록 문턱은 높고/연봉은 낮은 일에 끌려 매일을 고민하다 마지막 학기를 보냈다.


4.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니고/원하는 회사에서 상품서비스를 기획/운영하고 있다. 신상품의 가입신청서와 약관을 작성하고 수정, 수정2, 최종, 최최종, 진짜최종.doc를 거치는동안 원고를 교정하는 편집자의 모습이 겹쳐 킥킥거리기도 하고, 계약 과정이 순탄치 않은 BP를 만날 때면 담당편집자 속 썩이는 작가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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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3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서, 자기가 선택하지 않았던 그 안전한 삶이 못내 아쉬워지는 모양이었다.

"세상은 참 매정해. 우리는 이유도 모르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라."


5. 한편 스트릭랜드가 워낙에 급진적인 캐릭터여서 그렇지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상당히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 남편이 자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떠났음에도 스스로를 추스리고 사업에 성공해 "그이 형편이 정말 어렵다면 저도 좀 도울 생각이 있어요."라는 스트릭랜드 부인.(물론 화자는 이것을 고통에서 비롯한 앙심이라 받아들였지만)

- "여보, 저는 이 분을 따라가겠어요. 당신과는 이제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요"라고 떠나놓고는 또다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블란치. (책에서는 그녀의 감정선이 잘 드러나지 않아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결코 단편적인 인물이 아닐거다.)

- "내 마음속에는 더 모험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변화를, 그리고 미지의 세계가 주는 흥분을 체험할 수만 있다면 험한 암초와 무서운 여울도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라며 이 모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화자까지.

소설을 읽는 것에서 느끼는 대부분의 즐거움은 역시 다양한 인물들을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북클럽멤버들이 이 책을 통해 각자의 생에서 만난 '달'과 '6펜스'에는 무엇이 있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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