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커피만 마실 걸
"첫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시작하여 비슷한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불과 한 달 전이다. 첫사랑과 두번째 이별을 하고 매일밤 슬픔과 술독에서 허우적대다 아침이 되면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근했었다. 그러다 본 칼럼에서 옮겨둔 문장을 올해의 후회에 써먹을 줄이야.
젊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너무 흔하고 뻔한 얘기지만 역시 그건 남의 일일 때나 그렇다. 첫사랑과의 두번째 이별이라니. 후회의 감정에 휩싸일 때면 올해 우리가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진게 어쩌면 다 꿈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한다.
꿈이 아니라면 후회는 어디서부터 해야할까. 올해 이른 봄 일요일 저녁 ktx에서 메시지를 보낸 것이 시작.. 아니 화근이었으려나. 우한폐렴이니 코로나19니 아직 이름조차 혼란스러운 전염병이 종교단체를 통해 어느 도시를 집어삼킬듯이 퍼지기 시작할 때였다. 마침 내가 탄 기차가 그 지역을 지나고 있었고, 그 지역은 나와 첫사랑이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곳이었고, 하필 멀지 않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을 그가 생각나버린 것이다.
몇 년만의 안부인사에 그는 오랜만이라고 답해왔다. 정말 안부만 몇 마디 주고 받고는 한 달을 고민하다 만나서 커피 한 잔 하자고 해버렸다. (여기가 두번째 후회의 순간. 그때 커피만 안 마셨어도.)
서로의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에 안도하며 다음주엔 밥이나 한 끼 할까, 그렇게 첫사랑과 두번째 연애를 시작했다. (세번째 후회. 그때 커피만 마실 걸)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첫번째 이별에서와 같은 문제 뿐이었고, 변한 것은 그때만큼 뜨겁지 않은 마음인 것을 확인했을 때 끝이 났다. 이건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제 올해의 잘한 일로 이걸 쓸까도 고민했었다.)
정확히는 그를 다시 만난 것을 후회하는게 아니라,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을 후회한다. 결국 비슷한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는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후회한다고 털어놓을 수나 있는걸 보면 이제 마음이 좀 정리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