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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 Apr 22. 2023

9. 장애-앨라이로 산다는 것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 비장애인 퀴어로 장애와 연대하기

나는 장애-앨라이다.


  원래 있는 말은 아니고, 내가 방금 만들어낸 단어다. 원래 앨라이'퀴어(성소수자)의 인권에 지지하고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일반적으로 시스젠더 이성애자)'를 의미한다. 이런 멋진 단어가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퀴어 자긍심을 으로 고취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간단하게 용어 하나를 만들어봤다. 장애인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그들의 요구를 배워나가며, 모자란 점을 바꿔나갈 용의가 있는 사람. 장애-앨라이라고 스스로를 명명하는 순간, 나는 장애를 동정하고 연민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료시민으로 함께 나아가는 이가 된다. 자기 정체화를 한다는 건 때로 이토록 중요하다.


2023 420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후원 티셔츠.


 내가 활짝에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3월 중순, 동료 활동가인 '도연'이 내게 물었다.


"이번 420 티셔츠 살 건가요, 서유?"


 여기서 솔직히 고백컨데, 당시의 나는 420이 뭔지 못 알아들었다. 티셔츠요? 하고 되묻자, 도연은 일단 이번 디자인이 얼마나 잘 뽑혔는지 말하며 후원 티셔츠 구매 링크를 보여줬다. 그제서야 내용을 읽고 알았다. 420은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이었다! 아차.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던 518도 익숙하고, 아이다호데이인 517도 익숙하지만, 비장애인인데다 갓 활동가가 되었던 나에겐 단박에 떠오르는 날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그 당시 첫 월급을 받지 못한 터라 돈이 없어서 후원 티셔츠를 사지 못했다. 여전히 구매 링크 (donate.do/954V)가 남아있긴 하지만. 멋진 후드집업도 살수있기야 한데, 이 날씨에 집업을 입기엔 너무 더워지고 말았다는 건 핑계일까? 아무튼, 나는 여전히 후원을 미루고 있어, 연대는 몸으로 떼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도연은 활동가로서 구매 링크가 열리자마자 재빠르게 티셔츠와 후드집업을 구매했다. 그리곤 멋지게 입고 다니더랬다. 장애-프라이드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날 도연이 입고 있는 셔츠 문구를 물끄러미 지켜볼 일이 있었다.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는데, 문득 셔츠에 Action이 있어야할 자리에 Aktion이라는 단어가 쓰여있었다. 영어를 죄 까먹은 나로서도 갸우뚱하게 하는 스펠링이었다. 도연에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다가, 옆에 있는 T4가 무슨 뜻인지 듣고서야 이해했다.


 T4는 1939년 독일 나치가 30만명의 장애인을 학살할 때 썼던 프로젝트명이었다.


 그러니 Against Aktion T4는, '액션 T4(독일어)'를 저항한다는 뜻이었다. 뒤늦게 브런치글을 쓰며 후원 링크에 들어가보니 해당 내용에 대한 설명이 아래와 같이 써져있었다.


# "내 인생은 나의 것" 프린트 반소매
곤색(네이비) 30수 라운드 반소매, 앞면 중앙에 "내인생은나의것", 뒷면 상단에 "T4 가사"가 프린트

1939년 독일 나치는 30만명의 장애인을 학살하였습니다. 널리 알려진 홀로코스트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대시민 선전 구호도 "살균은 처벌이 아니라 해방이다", "장애인에게 너무 많은 비용이 지출된다" 등 비용의 문제로 장애인을 학살하는것을 정당화 했습니다. 2023년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어떻습니까?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공개 면담에서 "모두 다 들어주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말을 하며 여전히 비용을 문제로 저상버스 도입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장애인의 교육권과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또 비용을 문제로 장애인들을 시설에서 집단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판 T4 프로그램"을 멈춰야 할 때 입니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남성 동성애자'에게 달던 뱃지, '핑크 트라이앵글'.


   곧장 떠오른 건, 나치는 장애인과 성소수자를 모두 학살했다는 사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나치는 수용소 내부에서도 동성애자들을 구분하기 위해 분홍색 역삼각형의 표식을 만들어 달았다. 원래 역삼각형으로 달린 뱃지는 색깔별로 정치범, 이민자, 동성애자 등을 구분하는 장치로 쓰였으나, 동성애자의 핑크 트라이앵글은 다른 표식보다도 훨씬 컸다. 극심하게 탄압하고 학살하고자 하는 의도였으며, 그 중에서도 유대인 동성애자는 노란 삼각형을 덧씌워 최하의 대우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에는 우생학이라는 이름으로 차별과 학살을 가했던 나치가 있지만, 여전히 '정상성'이라는 이름 하에 사회제도는 성소수자와 장애인을 비껴간다. 장애인권단체는 지하철을 타겠다고 시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T4를 연상시킬 정도로 극렬한 비난을 받고 있다. 성소수자는 퀴어문화축제 하루를 하기 위해 참여자의 몇 배에 가까운 혐오세력과 마주해야만 한다. 사회적 약자는 아직도 탄압받고 있다. 퀴어도, 장애도. 심지어 장애-성소수자도 흔하게 커뮤니티 안에서 마주할 수 있게된 사회이지만, 그들은 교차적인 이중 차별을 마주한다.


420광주공동투쟁단 기자회견 현장.


 지난 21일,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10시 30분 경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장차연도 기자회견을 했다. 420 당일에는 전국 단위에서 서울로 집중 투쟁을 함께 했고, 다음날인 21일 광주 지역 420 집회를 진행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지하철을 타고 시청까지 이동한 뒤 집회를 오후까지 진행했다. 우리는 장애인의 탈시설화와 권리형 일자리 확보, 이동권 보장, 여성 장애인 보호 등 9가지 요구안을 적극 요청했다. 그 자리에 함께 서있으며, 문득 '광주는 서울보다 지하철 이용이 이동장애인에게 편리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현장에서 발화하는 당사자들은 광주에서도 지하철 하나를 타려고 해도 시설 미비로 5분 10분을 잡아먹으며, 그렇게 지연된 것에 대해서 정작 역 관계자들이 불편압박을 호소한다고 증언했다. 어딜 가도 차별, 차별, 차별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광주 지하철을 함께 이용하며 다시 한 번 장애인의 권리를 제창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버스 안에서 유명한 시가 생각났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내게 왔을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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