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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thingnewri Nov 08. 2022

#4 강릉 교동헌책방, 책들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강릉 한달살이


내가 머물던 게스트 하우스 근처엔 아주 오래된 헌책방이 있었다. 미술관에 가다 우연히 발견한 헌책방은 입구부터 책들이 가득했고 케케묵은 곰팡내가 났다. 내가 찾는 절판 서적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헌책방은 미로 같았다. 나름의 규칙이 있는 듯했지만, 유명 작가의 책이 아닌 이상 마구잡이로 쌓여 있었다. 내가 찾는 책이 이 곳에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장님과 얘기를 하며 강릉에 관해 물었다. 강릉에 한달살이를 하러 왔다고 했다. 사장님은 서울에 살다가 강릉에 온 지 30년이 됐다고, 강릉에 잘 왔다고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강릉 안내 책자와 강릉 정보가 담긴 책을 주셨다. 이후 몇 번을 더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강릉이 담긴 책을 얹어 주시고 강릉에 있는 여러 문화 행사를 알려주셨다.



나는 결국 원하는 책은 찾지 못했고, 사장님께 다른 책 추천을 받았다. 단돈 오천 원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얻어갔다. 오히려 더 좋은 책을 찾았다.



이 책방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래된 책과 쿰쿰한 냄새가 주는 아늑함이 있었다. 이곳의 냄새는 비 오는 날 땅에서 올라오는 흙내음 같기도 했다. 책들을 펼쳐보면 납작해져 바스러질 것 같은 잎, 색바랜 해외 스타 책갈피, 가족 혹은 연인에게 쓰는 편지 따위가 있었다. 손때가 가득한 흔적들은 나에게 묘한 안정감을 줬다. 동시에, 이 세월의 자국들을 보면 괜히 쓸쓸해지기도 했다.


게스트하우스 친구들을 데리고 간 날


이곳엔 도서관 라벨이 붙은 책들이 많았다. 하루는 사장님께 도서관 라벨이 있는 책에 관해 물었다. "이 책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사장님은 심플하게 답했다. “책들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어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무심코 지나친 책들도 사연이 있고 감정이 있다니. 나는 책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마저 그리 다정하고 애처로운 시선을 준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모든 걸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쳐왔다. 사람, 추억, 그리고 내 감정들마저. 세월이 잔뜩 흘러버린 책들은 그동안의 내가 매정하게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었다. 책마저도 각자의 사연이 있는데, 사람 개개인에겐 얼마나 더 많은 뒷이야기가 있겠는가. 이후로 나는 어떤 행동에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그 누구도 어느 존재의 가치를 재단할 권리는 없다.



모두 각자의 사연을 써 내려간다. 우리에겐 기쁨도, 슬픔도,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이야기일지라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헌책방의 오래된 책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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