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발적 백수가 된 많은 이유 중 하나
아침과 저녁마다 길게 늘어선 줄 끝에 합류하여 지하철 한 대를 그냥 보내는 것은 기본이고, 지금 이 만원 열차에 타서 잽싸게 어느 위치에 자리를 잡아야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내가 숨 쉴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전략도 세우게 되었다.
서울에 본가를 두고 있지 않는 지방 거주민으로 14년의 서울살이를 하며 늘 회사 인근에 거주했다.
30분 이내 출근 컷을 목표로 살던 나는 3년 전 강남으로 이직하며, 서울 강서에서 경기 남부로 이사를 했다.
처음 2개월은 악명 높은 9호선을 꾸준히 타고 다녔다. 그때는 내가 어느 정도의 인원 속에 파묻히면 공황장애를 일으킬 것인가 하는 생체실험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저녁 6시 피크 타임 퇴근을 몇 번 겪고는 도저히 그 시간에 열차를 타고 싶지 않아 일부러 1시간을 더 강남에서 저녁을 먹거나 운동을 하며 배회했다. 혼밥 능력이 제법 향상됐다.
그즈음 다행히 집 계약 종료 시점이 별로 남지 않았고 9호선은 타고 싶지 않았기에 전혀 알지 못하는 동네로 이사를 감행했다. 처음에는 2호선 근방으로 알아보다가 아주 예전에 출근길 2호선을 탔던 끔찍한 기억이 떠올라 상대적으로 덜 붐빌 것이라 판단, 과감히 경기 남부를 선택했다.
17분, 강남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만 견디면 됐다. 게다가 정자와 판교에서는 사람들이 제법 하차했다.
상대적으로 승객들로부터 여유로운 공간과 하차 시 엘리베이터가 가까운 위치를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되면서, 완벽하지 않았지만 이사를 한 결단에 만족스러웠다.
작년 5월 말 신분당선은 황금노선으로 불리며 강남역에서 신사역까지 운행 구간을 연장했다. 그러자 그동안 어떻게 회사를 다녔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신분당선을 이용하게 되었다. 늘 종점(강남)에서 승차하여 좌석에 앉지는 못해도 여유롭게 지하철을 탔는데 매일 저녁, 가면 갈수록 늘어나는 인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자주 퇴근을 함께하며 수다 떨었던 동료와는 민첩하게 같은 공간에 서지 못하는 날이면,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보통 열차 한 대는 보내고 탔는데, 어느 날은 피곤해서 빨리 가고 싶어 그냥 탔다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파에 숨쉬기조차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출근길에는 알 수 없는 호흡 장애로 양재역에 내려 잠시 쉬었다 간 적도 있었다.
그러다 감염률이 높은 코로나로 인해 주 2회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시차 출퇴근까지 도입하게 되면서 나는 9시 30분에 출근하게 되었다. 현저히 인파가 줄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9시 출근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향상되었다.
부모님은 종종 "이제 좀 출퇴근 스트레스는 나아지지 않았냐?"라고 전화로 물으셨다. 나는 아주 조금 나아졌다고 대답했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우울했다.
누군가는 온실의 화초 같다 빈정댈 수도 있겠지만,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도 행복을 추구하고 싶어졌다.
쉽사리 내 안에서 떠나지 않는 물음에 이제 답을 할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