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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씽투러브 Mar 29. 2023

분명히 면접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법인이 되면 무례해지는 자들에 관하여

오늘 오후 2시 30분, 두 번째 면접이 있었다.

지난 수요일에 이어 같은 회사에 두 번째로 방문하는 길이었다. 

한차례 면접을 보았음에도 오늘이 2차 면접이 아니었던 까닭은 지난주에 실제로 면접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 오후 2시 10분, 면접 보기로 한 회사 근처에 20분 일찍 도착했다. 1층 올리브영에서 시간을 때우다 회사 입구에 도착하여 내게 면접 제의를 하셨던 분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2시 반 면접자입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곧 참석해야 할 회의가 있다며 약간 놀라는 말투였다. 알고 보니 연락하셨던 분은 그 회사의 CEO였는데 내 면접 일정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 같았고 회의 주체자로 보이는 실무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 곧 회의에 들어가셔야 한다며 리마인드 하는 용건으로 몇 번 방을 들락날락거리더니 어쩔 수 없이 회의를 30분 미뤘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미리 약속을 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확보하지 못할 뻔한 30분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25분 정도 회사와 직무 관련하여 이래저래 대략적인 이야기를 듣고, 아마 내가 근무했던 사업 분야가 아니라서 바로 이해하기 쉽지 않을 거라며 관련 정보를 메일로 보낼 테니 다음 주에 질문거리를 준비해서 다시 얘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냐고 하길래 우선 알겠다고 했다.

이 면접을 위해 1시간을 준비(치장)하고 1시간이 걸려 도착했는데, 25분 만에 명확한 결과 없이 공허한 마음으로 돌아가기 아쉬워 평소 가고 싶었던 최인아 책방에 들렀다.

그림의 힘이라는 예쁜 예술 도서를 한 권 구입하고 찝찝한 기분으로 귀가했다.


그리고 받은 이메일에는 링크 3개가 적혀 있었다. 분명히 회사 소개를 써준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대학교 과제가 제시되어 있었다.

[아래 링크에서 전반적인 사업을 이해하시고 관련하여 다음 미팅에서 질의해 주실 내용을 정리해 보세요]

이 회사는 공부를 많이 시키는 곳인가? 다수에게 생소한 사업 분야이므로 입사하면 종종 시험도 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내가 적극적으로 질의할 거리를 마련해 가기에는, 지원한 포지션이 아닌 다른 포지션으로 그쪽에서 제안했기에 그렇게 많은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 사업이 핀테크이기에 불법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만 궁금했다.

 

첫인상, 식스센스를 간과해선 안된다.

아침까지도 이 면접에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면접자를 30분 만에 돌려보내는 회사... 이것은 단지 시간 관리를 못하는 CEO의 잘못인가, 원래 이러지 않는데 예기치 못한 회의가 급하게 잡혔던 상황적인 문제인가.

나에겐 사람을 우선 좋게 생각하려는 고질병이 있었다.

그때 내게 음료수를 권했던 실무자는 나쁘지 않아 보였고, 회의를 재촉했던 담당자도 미안해하며 30분을 미뤘으니까 지난주 같은 일은 없겠지?


면접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지난번처럼 일찍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10분 전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8분 전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었던 이유는 지도상 사무실과 층수가 달랐기 때문에 오늘은 어느 층으로 가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신호음이 울리자 전화가 곧 끊어졌다.

흠...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문자를 보냈다. (처음 면접 안내를 문자로 받았기에)

안녕하세요. 2시 반 면접자입니다. 도착했는데 오늘은 몇 층으로 가면 될까요?

그리고 기다렸다. 2시 반 면접이니까 곧 연락이 오겠지? 설마 지난번처럼 또 그러지는 않겠지?

정확히 45분 후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회의 중이었는데 혹시 지금 어디신가요?


그때 나는 한 정거장 거리의 8년 연속 블루리본 커피 맛집 파브리끄 커피 로스터스에서 럭키 라떼를 마시고 있었다. 날 둘러싼 이 액운이 서둘러 사라지기를 기원하면서...

이름도 어쩜 럭키 라떼.



법으로 만들어진 인격체가 되면, 법인이라는 단체에 속하게 되면 마땅히 지켜야 할 자연인에 대한 예의와 도리를 지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전에도 면접관과 연락이 되지 않아 10분 정도 출입구에서 미어캣 마냥 기다렸던 사연, 영어 PT에 레퍼런스 체크, 건강검진까지 받으며 3차 면접까지 참석했으나 왔다갔다만 하고 면접비 한푼 받지 못했던 사연을 보유하고 있다.)

이 대표는 내가 면접자가 아닌 경우에도 이렇게 대했을까? 어떻게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먼저 나오지 않는지 신기했다. 

같은 일을 두 번이나 똑같은 회사에 당한 것이 황당하고 제안받은 포지션 (3년을 외국에 나가서 살아야 하는 해외법인 인사팀장)에 대해 혼자 진지하게 고민한 것에 화가 나, 괜히 엄마에게 회사 리뷰로 악플을 남길 거라고 얘기했지만 잡포털 면접 후기에는 사실만 있는 그대로 기재했다.


엄마는 그 이후 여러 번, 그래서 악플을 달았냐고 물어보셨다. 

엄마???


올해 1월까지 나는 우리 회사에 귀한 시간을 내서 온 면접자들에게 감사 선물을 챙겨주던 인사팀장이었다.

지금은 은퇴하기엔 아직 먼 것 같아 다시 일을 할까 말까, 어쩔까 저쩔까 고민하며 이력서를 다수 제출하는 프로 지원러지만, 만약 다시 인사 업무를 하게 된다면 지금의 설움을 잊지 않고 면접자들에게 더 예의를 갖추어 잘해주고 싶다.


법인이라고 해서 무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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