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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씽투러브 May 01. 2023

열정... 그게 뭔데?

스타트업 적응기

새 회사에 다닌 지도 일주일이 되었다. 

다행히 5월은 연휴가 많아서 그나마 안정이 든다.


스타트업은 처음 다니는데 여러모로 신기하다. 

첫 회사는 슬리퍼를 절대 신을 수 없었는데, 여기선 스티치 슬리퍼도 신을 수 있다.

정해진 시간대 사이에 출근하면 사무실 도착 시간 기준으로 8시간을 일하면 된다. 

따라서 지각이란 개념이 딱히 없으며 철저한 근태 관리 시스템 또한 쓰지 않는다.

아침에 탕비실에 가면 날마다 다른 조식을 가져갈 수 있다.

역할은 정해져 있지만 호칭은 누구나'이름+님'으로 부르고 불린다.

사원증이 캐릭터다.

대화는 회사 메신저로 이루어지기에 내선 전화가 울리지 않는다.

서로 연락처를 알 필요도 저장할 필요도 없다. 

카톡에 회사 사람들이 없다니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문화 차이를 느끼고 적응 못할까 싶어 살짝 걱정했는데 나는 완전 꼰대는 아니었다.


회사 핵심가치 중 대표님(이렇게 부르지 않는다)이 가장 강조하시는 건 '열정'이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이 열정의 의미가 '열심히 오래, 남아서 일하는 것'인 것 같아 회사 생활이 벌써 부담스럽다.

아침에 출근했는데 대표님이 먼저 일하고 있으면 괜스레 눈치가 보이고, 대표님보다 먼저 퇴근할 때도 (주로) 눈치가 보인다. 

출근해서 텀블러에 물을 채우러 가고 싶지만 뭔가 아침부터 집중하지 못하는 부산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오래 앉아있다가 일어선다.

혼자서 보는 눈치다.


요즘 워라밸 지키는 것은 기본이요, 받은 월급에 적합하게 일하는 것이 대세 아닌가 싶은데 왜 대표님은 저토록 열정을 요구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유 1.

  회사에 아주 많은 돈을 투자한 사람들이 있으므로 수익을 반드시 창출해야 하고, 투자 수익을 배분해야 하

  기 때문에 여러모로 쫄려서


 이유 2. 

  직원들이 열정적으로 일하면 결과(매출)가 좋아질 확률이 늘고 그렇게 사업이 잘되면 규모가 커지고 

  투자금을 빨리 갚아 지금 쫄리는 처지를 벗어날 수 있고 부자가 되기에

그래, 여러모로 대표님은 직원들의 열정을 필요로 하는지 타당해 보인다.


반대로 직원들은 왜 열정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유 여러 개.

  - 열정적으로 일하면 일의 성과가 좋아질 수 있다? ->  그럴 수도 있다.

  - 열정적으로 일하면 승진할 수 있다? -> 그럴 수도 있다.

  - 열정적으로 일하면 보람 있다? -> 그럴 수도 있다.

굉장히 이유를 대기 싫었던 걸로 보인다면... 사실이다.


타인이 강요하는 열정은 힘이 없다.

함께 열정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할 때 완전한 몰입이 가능하다.

나는 야근을 정말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련히 사무실을 떠나야 할 시간에 나갈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한다. 

화장실도 거의 가지 않은 채 일하는 건 기본이고,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어서 그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행동하고, 어떤 제도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평일 늦은 시간까지 (집에서 함), 혹은 주말이라도 관련 책을 읽고 구상해서 제도를 갖춘다.

그래서 기준이 되는 시간에 당연히 퇴근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야근을 하지 않는 것이 내겐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다.


어떤 과업이 있을 때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고 전혀 아깝지 않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월급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방향성 없는 열정을 바란다면 지금처럼 내심 눈치를 볼 것 같다.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내가 지금 충족시키고 있는지, 아닌지를 계속 확인하면서.


이 회사에서의 내 과업은, 

열정의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열정 페이의 현타를 느끼지 않고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회사 문화의 근간을 만들어 보는 작업은 처음인데 기대가 된다.

아직 출퇴근이 우울하고 오래 의자에 앉아있는 게 어렵지만, 

다수에게 유의미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좋다!


일을 잘하고 있을 미래의 나를 믿으며, 내일도 평화로운 퇴근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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