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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Jul 17. 2022

망각의 기술이 필요한 때

과거를 잊고, 한계를 잊고, 나를 잊고ㅡ

나는 뭔가가 하고 싶을 때, 또 누군가 매력적인 제안을 해올 때 대학 시절을 떠올린다.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비싼 등록금에 비해 중앙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지 못한 채 졸업해버린 게 아쉽긴 하지만 그걸 빼면 특별히 아쉬운 것도 없었다. 그런데 딱 한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바꾸고 싶은 선택이 있다. 대학 3학년 때였던가? 종강을 하고 한 교수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연구소 인턴 추천 제안이 왔는데 나를 추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도 모르는 내 가능성을 알아봐주고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저 깊은 감사를 표하고 그 제안을 기꺼이 수락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전혀 기쁜 마음으로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때 내 머릿속은 기쁨과 고마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정보 관련 연구소? 통계?? 내가 과연 잘 할수 있을까? 나를 추천해준 이 분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면서 소위 일 잘 하는 사람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전화를 받는 내내 내 머릿속은 이런 의문으로 가득했다. 아니, 몇 시간 일 하는지, 돈은 얼마나 주는지, 차라리 이런 현실적인 걸 궁금해 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나는 자꾸 내 능력과 한계를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직전 학기에 그 교수님에게 정보 관련 수업을 들었다. 학점을 잘 받기도 했고, 시험 때 모범 답안으로 뽑혀 답안지가 모두에게 공개되어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추천하려 하신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더 걱정이 되었다. 시험을 잘 보는 것과 실무 능력은 일치하지 않으니까. 나는 그때 교수님이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진짜 실력은 그에 못 미치니까 실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론은 정중하게 거절했지. 진짜 바보같았다. 아니 바보였다.


그런데 그 기억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나는 과거의 모든 선택 중에 그것을 가장 후회했다. 통계에 자신이 없으면 따로 더 배워서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심지어 통계 수업 성적도 좋았는데, 그때 나는 왜 그리 자신감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 땐 내 모든 성과가 행운인 것처럼 느껴졌고, 그냥 내가 시험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내 능력 범위의 한계를 정했다.

좁게.




내 능력과 가능성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남이 아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내 한계를 정하고 자꾸만 ‘할 수 있을까..’를 의심할 뿐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정작 나보다 훨씬 전문가인 그 교수님은 네가 적격이라며, 잘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전화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조금 붉은 톤의 교수님 얼굴도 떠오른다. “ 너를 추천하고 싶다. “란 말에 처음엔 내가 인정받고 많은 학생 중에 선택되었다는 기쁨, 그 잠깐 뒤의 긴 불안, 그리고 “ 전 못할 것 같아요. “라고 했을 때 교수님의 아쉬움 담긴 목소리,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이미 내가 이 순간을 후회하리라는 걸 알았다. 이렇게 20년이 지나도록 가장 후회하는 일로 남을 줄은 몰랐지만.


나이키 창업주 필 나이트가 쓴 자서전 <슈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경쟁의 기술은 망각의 기술이다.
……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잊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품었던 의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과 과거를 잊어야 한다.
우리는 '한 발짝도 못 뛰겠어'라는 내면의 외침,
애원을 무시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거나 떨쳐버리거나
무시하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과 타협해야 한다.


오리건대학교 육상선수로 활동했던 필 나이트, 훨씬 잘 뛰고 신체적으로 뛰어난 선수들과 경쟁하며 그러한 불행한 현실을 잊고 경쟁할 수 있는 사람. 이는 자신이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20년 전의 그날로 돌아갔다. 나는 왜 내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계속 되물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나는 잘 해내고 싶었고, 나를 추천해준 교수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누구나 당연히 그런 마음을 갖는다. 그런데 나는 그 마음이 너무 커서 그 일 자체의 흥미나 매력,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얻게 될 것의 가치를 압도해버렸다. 그래서 잘 하지 못했을 때를 상상했고,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생각보다 잘 못하더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다시 생각해도 진짜 바보였다.


나는 배움이나 성장, 심지어 돈, 더 나은 커리어보다도 나에 대한 한 사람의 평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 눈에 좀 부족해보인다고 해서 뭐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공부 잘 하는 것만큼 일머리가 있지는 않더라, 이 말이 그렇게도 무서웠나.



내가 그렇게 타인의 평판을 신경 쓰는 사람인가.

어떤 때는 그렇고 또 어떤 때는 굉장히 무심하기도 해서 나도 헷갈릴 때가 있다. 곰곰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좋아하거나 존경하거나, 그 교수님처럼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의 평가에 매우 민감하다. 때로는 이게 인간 관계나 중요한 선택을 그르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또 내가 욕 먹는 것보다 나로 인해 그 사람이 피해를 보거나 욕 먹는 게 못견디게 싫다. 한 마디로 좋아하니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아무 것도 시도하지 못한다는 거다. ㅠㅠ 쓰고 보니 슬픈 이야기다. 오히려 무관심한 상대에게는 그런 게 없어서, 문득 싫어했던 교수님이 그런 제안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왜 나를? 이라며 의문을 가졌겠지만 그래도 수락했거나, 거절했다 해도 내 능력과 한계를 의심하는 생각은 안했을 거 같다. 친구들에게 “ 야, 000교수님이 나한테 이런 전화했어~ “라며 아무렇지 않게 떠들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20년전의 그 전화는 어느 친구에게도 말 하지 못한 비밀이었다.


30대 초반 대학원에서 프랑스 철학 수업을 들을 때였다. 푸코와 헤겔의 사상에 대한 수업이었다. 아아아.. 어려워. 당최 이게 무슨 소리인지.. ㅡㅡ;; 괜히 수강신청했다 싶었다. 근데 학기가 끝나고 헤겔도 푸코도 아니고 교수님의 이 한 마디가 마음에 남아서, 그 수업은 잘 한 선택으로 남았다.


“ 너 자신을 알라느니
성찰하는 인간이 되라고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게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우울할 땐
자기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자기 바깥의 것을 보세요. “


네.

이 말은 내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필 나이트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적었다.

진짜 자신이 되거나 자아를 탐구하려면

오히려 자신을 잊어버려야 한다고.


우리가 자신을 의식하면 할수록 행동하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분리되어, 하고 있는 일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기가 어렵다. 또 다른 내가 타인의 시선이 되어 나 지금 제대로 하고 있나, 뭐 계속 이런 생각만 하게 되니까.

just do it. 그냥 하면 되는 건데 말이다.

진짜 자신에 이르는 길은 내가 누구인가, 뭘 좋아하고 싫어했더라, 뭘 잘 하고 못했더라, 이런 생각을 잊어버리고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 나의 ‘자아’라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내가 있다는 것을 믿고 그냥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남보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만이겠지.


어제 친한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 중 한 명이 과거의 기억을 많이 잊어버려서 다른 친구랑 선택적 기억력이라며 함께 놀려대며 웃었다. 그런데 그 잊는다는 것, 망각의 기술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이불킥으로 잠 못들던 밤의 쪽팔린 기억들, 가슴 아프고 슬픈 순간들, 실패하고 좌절했던 기억들.. 그런 게 다 남아 있다면 인생을 어떻게 자신 있게 살 수 있을까.

그러니 과거를 잊는 건 여러 모로 좋은 일이다.

이제 나도 20년전 그날의 전화를 내 기억속에서 지워도 될 때가 된 것 같다.


틀 지우지 말아야지,

어떤 인간이든 너는 00한 사람,

나는 00한 사람.. 이런 꼬리표 붙이지 말아야지,

우린 모두 매순간 변화하고 있으니까.


나의 한계도 잊고

아예 ‘나’라는 인간 자체를 잊은채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완전히 하나가 된 삶ㅡ


다른 날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특히나 더더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와 다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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