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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Jul 20. 2022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

의미, 믿음, 나의 정체성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아마 8년쯤 되었으려나.

테드(TED) 강연을 보고 있던 나는 강연자의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이라는 사람이었고, 강연의 제목은 <위대한 리더들이 행동을 이끌어 내는 법>이었다.


https://youtube.com/watch?v=1YBzDZEr_GE&feature=share

[TED] 위대한 리더들이 행동을 이끌어내는 법

그날 그는 애플을 포함해 다양한 기업과 인물의 사례를 들며, 골든 써클이라는 세 개의 원을 그려주었다. 원의 한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why(왜)'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바깥에는 'How(어떻게)', 그리고 맨 바깥의 원에 'What(무엇)'이 있다.

 

그 날 강연을 들은 이후로 나는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뭔가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때 이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너 지금 뭐하려는 거야?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이렇게 하는 게 제일 나은 거야? 이거 왜 하는 거야?

그런데, 새로 하는 일이든 원래 하고 있던 일이든 어려운 순간, 회의가 밀려오는 순간이 생기기 마련. 그 때 물음은 결국 효율적인 방법이나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근원적인 물음, 근데 너 이거 왜 하는 거야?, 로 귀결된다.

그렇게 자꾸만 "왜?"를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처음에 왜 이거 하려고 했더라? 지쳐서 잘 생각나지 않는 첫마음을 떠올리려 애 쓰는 거다. 흔들리는 내 마음을 스스로 다잡기 위한 노력이랄까.


너 이거 왜 하니?

오늘 아침에도 수업을 끝내고 나오면서 또 한번 물었다.

너는 가르치는 일을 왜 하니?

(시험이 끝나고 주제 발표를 맡은 3학년 학생들이 생각만큼 열심히 하지 않아서, 발표 시작부터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해서 나는 조금 실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기대하지 말라니. 이거 시작부터 너무 대충하겠다는 마음 아니야? 니네 도대체 이거 왜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또 일장연설을 해버렸다지. 하하하, 이런 때 나는 어김없이 꼰대가 된다.)



무엇을, 어떻게, 왜?


사이먼 사이넥의 강연 요지는 단순했다. 무엇을, 어떻게? 보다 왜? 가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리더들은 뭔가를 설명하거나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설득할 때, 무엇을 하라고 혹은 어떻게 하라고 말하기 전에 그 일이 얼마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지, 왜 우리가 그 일을 해야만 하는지, 즉 그 일의  목적과 가치를 먼저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미 다 아는 뻔한 얘기처럼 들릴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매 학기 수업을 시작할 때 내가 학생들에게 왜 <사회>라는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설득했는지 생각해봤다. 대학 가려면 필요해서? 인생에 도움 되니까? 너희는 시민이니까 당연히? 그런 거 말고 진짜 그 의미와 가치, 목적에 대해 설득하고 수업을 시작한 걸까.. 그렇게 돌이켜보니 나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이후엔 왜 이것을 배워야 하는지를, 또 사회교사로서 내가 생각하는 의미를 넘어 학생들 스스로 각자의 입장에서 왜 사회를,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왜 공부를 해야만 하는지 생각할 수 있게끔 맨 첫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조금 당돌해보일수 있지만

“ 이런 거 왜 해요? “라고 묻는 아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아주 훌륭한 질문이야! (물론 말투가 무례한 것은 싫다. 나는 말의 내용은 비판적이어도 괜찮은데, 표정, 말투 등에서 묻어나는 무례함은 또 잘 견디지 못한다. 역시 꼰대인 건가 ㅋㅋㅋㅋ) 그 땐 그냥 이유를 설명해준다. 가끔 나도 별 생각 없이 했구나.. 하고 깨달을 때도 있다. 그런 때는 속으로 당황하면서 이유를 생각한다. 음… 왜 했지?

학기말인 요즘 내가 세계시민 프로젝트 같은 걸 하자고 했더니 한 학생이 “ 근데 우리 갑자기 이거 왜 해요? “라고 물었다. 아, 내 머릿속에선 4월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건데 애들한텐 취지를 충분히 설명을 못하고 시작해버렸다. 역시, 왜? 를 빼먹으면 이런 일이 생긴다. 이유를 설명해주자 그 아이는 “ 좋은 거네요.”하고 갔다.



또 필 나이트의 <슈독>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나이키 사장님의 자서전이 그렇게 재미 있을 줄, 또 내게 이렇게 많은 영감과 변화를 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일단 자서전에 대한 편견부터 날려주었으니까. (나이키 운동화를 사거나 나이키 주식을 사는 건 예외 ㅋㅋㅋㅋ)


운동화를 팔기 전 백과사전과 뮤추얼 펀드를 먼저 팔았다는 필 나이트. 그치만 잘 팔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속으로 그 일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의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으로 봤을 때 무슨 일이든 잘 했을 거 같은데, 왜 그 일들은 못하고 운동화는 달랐을까?


나는 백과사전을 제대로 팔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일을 싫어했다. 그나마 뮤추얼펀드는 좀 더 많이 팔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일도 싫었다. 그런데 신발을 만들어 파는 일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그 일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킬로미터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나의 믿음에 공감했다.
믿음,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했다.(85쪽)


그는 달리기를 믿었다.

자신이 파는 신발을 믿었다.

그 믿음을 사람들에게 나눴고, 공감을 얻었다.

그 믿음. 그게 바로 why? 에 대한 답이며 그건 필 나이트의 중요한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주변 사람들 중엔 동기 부여를 아주 잘 하는 뛰어난 육상 코치 바우어만이 있었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달리기에 대한 책을 써서 필 나이트를 놀라게 했다. 바우어만 코치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엘리트 선수만 스포츠맨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스포츠맨이지.

우리에게 신체가 있는 한, 우리는 스포츠맨이야."


아, 이 말은 너무 멋져서 나는 나이키 사장님보다 바우어만 코치를 더 응원하며 필 나이트 자서전을 읽었다! 읽다 말고 사진을 검색해서 그 인물을 찾아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조깅? 달리기에 관한 책??

그걸 누가 읽나 싶겠지만,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그러고보니 내 책장에도 달리기에 대한 책이 두 권이나 있다. 하나는 ‘몰입’에 대한 것, 또 하나는 달리기 예찬론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ㅋㅋㅋㅋㅋ



그런데 사람을 만날 땐 쫌 예외다.

이 사람을 왜 만나지? 라고 물으면 어쩐지 그 사람이 수단이나 도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특별한 의미나 가치 있는 무언갈 줄 수 없다면 안 만나는 건가? 생각하면 뭔가 슬프고 쓸쓸하다. 그냥 만나서 시시덕 거리고, 별거 아닌 얘기 떠들다가 오고, 내 모지란 것도 다 보여주고 그런 관계가 편하다.


그냥 인간 관계는 목적의식이나 이유가 없는 게 더 좋다.

별 것 없어도 우리가 서로를 받아줄 거라는 믿음.

(이렇게 끝을 맺으니 서론과 결론이 달라진 느낌이다. ㅋㅋㅋㅋㅋㅋ 아, 난 “왜?”가 중요하다고 쓴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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