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의 라주미힌과 라스콜리니코프
나는 소설을 읽을 때 특별히 애정을 쏟고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인물이 있다. 일부러 정해놓는 것은 아닌데, 보다 보면 자연스레 더 마음이 가는 캐릭터가 생긴다. 주인공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니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기가 가장 쉽지만, 이상하게 흔히 말하는 ‘최애’는 주인공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옆에 있는 주인공 친구가 매력 있는 경우가 더 많다(드라마도). 그 중 한 명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주미힌, 이라는 인물이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작가가 이 작품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인물은 천사같은 쏘냐(아니면 여동생 두냐)일 거라 생각했다(물론 애정은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쏘냐와 라스콜리코프 커플이 주인공인 거겠지ㅡ 그런데 나는 쏘냐가 너무 성스러운 존재로,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던지는 인물로 그려져서 어딘지 모르게 거리감이 들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존심이 강하고 어두운 느낌이 들어서 소설의 주인공으로야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에서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타입이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을 좋아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마음.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복잡한 내면과 심리를 따라가다가 그 친구 라주미힌이 등장한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남자는 평생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은 못될지도 몰라. 주인공이 되기엔 단순하고 몸과 마음이 모두 너무 건강하거든. 사고치는 주인공 친구 역에 딱이지.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남자가 훨씬 좋은 사람일 거야.(그러니 쏘냐, 라스콜리니코프를 구원하려 하지 말고 라주미힌 같은 남자 만나!, 라고 혼잣말을 했었다. 그런데 결국 라주미힌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여동생 두냐의 짝이 되었다는... ^^;)
여기에서 라주미힌의 '단순함'은 생각이 깊지 않다거나 경솔하다거나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의 단순함에 대해서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인물을 묘사한 부분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래도 라스콜리니코프는 인복이 많군! 싶었다. 쏘냐 같이 헌신적이고 사랑이 많은 여자도 만나고, 여동생 두냐가 현명하기도 하고, 또 성질을 내면서도 곁에서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라주미힌 같은 친구가 있으니까.
(라주미힌은) 무척 쾌활하고 사교적이며 단순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성격 밑에는 나름의 깊이와 위엄이 깃들여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이 점을 이해하고 또 좋아했다... 그는 이따금 아주 난폭한 짓을 해서 힘센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어느날 그는 술자리에서 여섯명이 넘는 경관을 혼자서 때려눕힌 적이 있다. 술은 한없이 마시지만 전혀 안마실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가끔 지나친 장난을 하기도 했으나 전혀 장난을 안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라주미힌의 특징은 어떤 실패에도 꿈쩍 않는 의지와 어떤 고난 속에서도 꿋꿋이 그것을 헤쳐나가는 용기였다. 그는 옥상에서 잘 수도 있고 지옥같은 굶주림과 추위를 견뎌내기도 했다. 무척 가난해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완전히 혼자 힘으로 생활을 감당해가고 있었다. 또 그는 일자리가 어디 있는지 얼마든지 알고 있었다. 어느 해엔가는 겨우내 냉방에서 자면서도 도리어 추운 편이 잠이 잘 와서 좋다고 떠벌린 적도 있었다. 현재 그도 학업을 중단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그것도 곧 해결될 문제였다. 그는 지금 다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서 돈을 벌고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미 넉달 동안이나 그를 찾아가지 않았고 라주미힌은 그의 주소를 모르고 있었다. 언젠간 두어달 전에 한 번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땐 라스콜리니코프가 먼저 외면하고 길 건너편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라주미힌도 물론 라스콜리니코프를 보았으나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그냥 모르는 척 지나가 버렸다.
- <죄와벌> (하서, 유성인 옮김, 73쪽)
깊이와 위엄이 깃든 단순함.
한 인간의 성품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나는 이 표현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묘사한 저 한 단락의 문단에 담겨진 라주미힌이란 인간의 모습은 정말 다채롭다.
그는 쾌활하고 사교적이면서도 자신을 모른 체 하는 친구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는 사려 깊은 사람이다. 다가가야 할 때와 내버려 두어야 할 때를 아는 것, 이건 정말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일 때 가능할 것 같다. 게다가 힘도 쎄고 장난기도 많고 술도 진탕 마실 수 있지만, 또 전혀 그런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다니 매우 자유로우면서도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못해서 안하는 것과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을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 중엔 담배나 술, 게임 같은 것을 전혀 못하거나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는 이들이 있다. 이성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바람기가 적을 거라 생각해서 그런 사람을 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떤 것을 못하거나 모르는 사람보다, 할 수 있고 알고 있는데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안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어떤 것을 "할 수 있음" 또는 "앎"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할 수 있는데 스스로 가치판단을 해서 하지 않는 것은 '자제력'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르거나 할 수 없어서 안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이나 의지, 자제력과는 무관하게, 그저 경험해보지 않아서 오는 무지, 두려움에서 오는 무지와 가깝다는 생각이다. 그런 경우에는 우연한 기회에 금기시되었던 것을 해보게 되었을 경우 자제할 수 없이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적인 한계로 어떤 것은 한번 맛보면 끊기 힘든 강렬한 것들이 있기에, 애초부터 모르고 있거나 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 더 낫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런 점에서 라주미힌은 자제력이라는 아주 훌륭한(내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ㅋㅋㅋ) 미덕을 지녔다. 또 라주미힌은 실패나 고난이 와도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이겨낼 수 있는 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돈이 없어 냉방에 자면서도 추운 편이 더 잠이 잘 온다고 떠벌리는 귀여운(?) 허세 정도는 얼마든지 봐줄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 하고 만족할 수 있는 사람. 조금 어려운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함. 라스콜리니코프가 생각이 너무 많아 탈이었다면, 라주미힌은 그와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는 친구 라스콜리니코프를 염려하고, 그 염려 끝에 화를 내고, 그에게 도움을 주려 애쓴다.
라주미힌이 자신을 자꾸 피하려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정말 화가 났던 어느날은
"난 너같은 인간을 믿지 않아. 넌 인간답지 않은 척을 하려고 하는 거라고!!" 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러고서도 또 걱정이 되어 그의 뒤를 따랐다.) 난 그 장면에서 '인간답지 않은 척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읽은 대로라면 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가 남다르다고 생각하고 우월감에 차 있는 오만한 성격이다. 그리고 타인을 낮춰보며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 자체를 매우 자존심 상해한다. 여동생 두냐가 자신과 어머니를 위해 애정도 없는 남자와 결혼하려고 했을 때, 그는 매우 화를 내며 여동생을 책망했다. (물론 누구라도 그런 여동생을 두었다면 미안하고, 안쓰럽고, 자신의 처지에 화가 나서 여동생에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 그런 마음이라면 라주미힌처럼 나가서 과외든 뭐든 뭐라도 해야지! 그냥 방구석에 앉아서 아무 것도 안하면서 오빠 공부를 위해 돈이라도 마련하려는 여동생한테 뭐라 할 자격이 있냐고. 아, 또 생각하니 화가 난다!)
그런데 라스콜리니코프는 어쩌다 저런 지경이 된 것일까? 어쩌다 결국엔 살인까지 하고야 만 것일까?
그가 하는 그 '인간답지 않은 척'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게 '완벽함에 대한 추구'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완전한 존재가 되려는 것, 또는 완전한 선(goodness)이 되려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는 타인에 대한 우월감(사실 그것도 열등감과 동전의 앞뒷면일 것이다. 나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지독한 가난에서 느끼는 강한 열등감이 이런 생각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했다.)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우리는 곁에 다른 사람이 없을 때에도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 높은 지식과 이상만으로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 라스콜리니코프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를 알 수 있을 듯 하다.
그에 반해 라주미힌은 훨씬 더 단순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도움을 받는다.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처지가 되면 돕는다. 자신이 (우월감을 느끼거나 타인을 조종하려거나 하는) 다른 의도 없이 그저 도움을 주는 것이므로, 타인의 도움을 받을 때도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사물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복잡하게 꼬아서 생각하지 않는 장점을 지녔다. 사물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은 자신이 가진 관념이나 경험을 덧씌워 내 식으로 해석된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일 거라는 상상을 더해본다. 헛된 희망 같은 것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라스콜리니코프가 그렇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사람, 라주미힌은 진정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지닌 사람일 것 같다.
깊이와 위엄이 있는 단순함
그런 건강한 단순함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