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벌써 10여년이 훨씬 더 된 이야기다.
싸이월드에 감상을 썼으니
얼마나 롱롱 타임 어고우~ 인지^^
나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저 제목에 이끌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었다. (그러니 제목을 어떻게 짓느냐는 정말로 중요하다오) 그러나 몇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내가 속았음을 깨달았다. 누가 속인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속이고 속았다. 소설인 줄 알았던 책은 그 시대에 여성이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주 리얼한 현실을 알려주는 동시에, 작가를 지망하는 여대생들에게 전하는 울프의 당부(?)가 담겨 있는 글이었다. 살짝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울프가 그럭저럭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서 계속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다.
핵심만 말하자면 당시 여성이 작가로서 살아가는 데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정한 금액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수라는 거였다. 그러니까, 요는 네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그럼 돈이랑 너만의 방(이것도 사실은 돈인 걸까나.. 고유한 공간, 이건 뭐 남녀 공통으로 다 해당되는 거지)이 먼저 있어야 돼.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상상력, 영감을 주는 신선한 경험, 다양한 책을 읽고.. 뭐 이런 건 그 다음 얘기였다. 그런데, 리얼리스트보다는 로맨티스트쪽으로 확 기울어졌다는 평을 듣는 나는 울프의 저 이야기가 너무나도 와 닿아, 그 순간만큼은 지구에 딱! 발을 붙인 리얼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또 돈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만, 나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그 말이 너무 절실히 와 닿았던 것이다.(생각해보면 나만의 방이 없어서, 맨날 동생들과 함께 방을 써서 그랬을지도.)
아아아, 자기만의 방!
작가가 되고픈 꿈이 없던 아주 어린 시절에도
나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보면 딸이 셋이나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함께 살았던 우리집엔 방이 도대체 몇 개나 필요했던 걸까. ㅋㅋㅋㅋ 우리집 형편과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에 끼어서 귀신이 없는지 물어보며 등을 딱 붙이고 잠을 청하던 나에게 그런 건 무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 자기만의 방이 꼭 물리적으로 독립된 '내 방'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고 생각했다(물론 개인의 방이 각각 있으면 좋겠지만). 나에게 그건 개인의 사적인 시간과 공간이었다. 여러 사람과 한 공간에 있을 때에도 우리는 혼자 있을 수 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어도 독립적인 생각과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니까. 그런 순간엔 잠시 내버려두는 것, 물리적인 방이 없다면 보이지 않는 방이라도 만들어주길_ 나의 자기만의 방은 바로 그런 거였다. 그런 순간을 존중해주었으면.
나는 다른 물건에 대해 내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내 것에 대한 애착이 그리 크지 않은 편에 가깝다. 그건 물욕이 없다거나 그런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오직 건망증이 심하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에서 기인한다. 대신 공간과 시간에 있어서는 욕심이 꽤 있는 편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가 그런다. 그럼 혼자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음.. 그래서 혼자 살고 있는건가 ㅎㅎ 어렸을 땐 그런 생각을 종종 했었다. 내가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까, 결혼이라는 제도와 맞지 않는 게 아닐까, 나는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려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따로 또 같이"의 가능성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걸 즐기는 동시에 아주 깊은 유대와 애착을 원한다는 것도, 그 안정적인 애착의 기반 위에서 홀로 있다가 다시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거기다 내가 청각이 예민하지 못해서 여럿이 있어도 (남들 얘기를 못듣고, 공상의 날개를 펼치며) 혼자 있기를 아주 잘 하는 사람이란 것도^^
나는 아주 가까운 사이의 사람이라도 각자의 사적인 공간과 홀로 있을 고요한 시간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이 너무 개인주의적이라거나 거리감을 느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어느 쪽이든 정도가 지나쳐서 일종의 벽을 느끼게 만든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루에 단 30분만이라도 다른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 ‘자기만의 방과 시간’은 신비로움의 유지, 어떤 비밀을 간직한다거나 예의로서 침범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늘 함께 해서 발생하는 권태로움이나 익숙함의 예방과도 좀 다르다. 뭐라 콕 집어 하나를 말할 순 없지만,,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얻는 것만큼이나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만 고양되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낀다. 그게 어떤 창의적인 발상이든, 감정이든, 자아 성찰이든 물리적인 에너지든 뭐든.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렇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과 공간에서 얻은 무언가를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나에겐 그 시간이 나를 채워가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기에 만약 내게서 혼자만의 시간을 뺏어버린다면, 나라는 인간의 깊이는 (생각도 감정도 포용력까지도 ㅋㅋㅋㅋ) 지금보다 훨씬 얕아질 것이다. 뭐 지금도 그리 깊진 않다만^^
아니 근데 혼자 있을 때 대체 뭘 하길래,
그렇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냐고?
이런 짓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