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
대학생때였나.. 아주 오래 전에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봤는데,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고 한 장면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주인공 남자가 옛친구들과 만나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나, 술도 마셨던 거 같고... 술에 취한 친구가 주인공에게 "너.. 행복하냐? 우리 중에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사람 너밖에 없는데, 너 행복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때는 음악이라는 같은 꿈을 꾸었는데, 이제 음악을 하는 건 주인공뿐이고 친구들은 모두 다른 길을 걷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젊은 날의 그 꿈과 열정들이 떠오르고, 현실의 생활과 타협해버린 자신과 끝까지 꿈을 좇은 친구가 비교되었던 걸까.
그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았던 것은 두 사람 모두 행복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질문을 던지는 남자도, 질문을 받은 사람도. 특히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데도 행복하다거나 즐거워보이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친구가 물었던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그는 행복했어야 하는거 아닌가. 물론 주인공이 음악적으로 아주 성공해서 돈도 잘 벌고,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음악만 하면서 살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을 읽으면서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일에 몰입을 잘 하는 사람이 행복감도 잘 느낄 거라 생각했는데,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그렇지가 않았다. 어떤 일에 몰입해 있는 사람은 그 순간 자신의 감정을 의식하지 못하고, 오직 집중해서 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가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낄 겨를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난 뒤에야 되돌아보면서 '잘 되었다'와 같은 마음을 느낀다고.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다. 내가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 자체와 그 느낌을 의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의식 위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내가 느끼고 있다해도 그것을 모를 가능성이 크다. 그럼 무언가를 하면서 행복하다는 느낌은 오히려 그 일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 일을 하는 내 감정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일 자체에 대한 몰입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 느끼느냐, 이후에 느끼느냐 시간적 순서의 차이일 뿐, 일이 다 끝난 이후에 느끼는 만족감을 고려하면 몰입도가 높은 사람이 행복감도 높을 거라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무아지경'이 이런 거겠지,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우리가 '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저자도 인정하듯이,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측정하는 행복도가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고 어떤 사람은 순간적인 쾌락이나 자극을 행복이라 여길 수도 있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편안함이나 성취감, 충만함을 행복이라 여길 수도 있으니 사실 책에서 '몰입도가 높은 사람이 더 행복하지는 않다.'라고 가져온 데이터는 이런 한계를 고려하며 읽어야 한다. )
나도 가끔 "아, 좋다.. "라는 말을 하는데, 생각해보면 나 역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그 순간에 빠져 있을 때보다 그 순간이 잠시 지난 뒤 '방금 너무 좋았어..'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의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그건 즐거움이나 설레임, 신남.. 이런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새로운 장소에 가거나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게임이나 운동 같은.. 그런 종류의 일을 할 때, 나는 신나하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그 순간 누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면 선뜻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은 지극히 조용하고, 특별한 사건도 없고, 심적으로도 평온한 상태에 가까웠으니. 굳이 말하자면 나에게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과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것' 간의 일체감에서 오는 만족.. 에 가깝다. '나'라는 인간에 대한 만족감 역시 비슷하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과 실제의 삶이 근접도가 높을 때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후해진다. 그래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주인공이 불행해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걸까. 왜 원하는 것을 하는 데도 불행해보이는 거야?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데, 무슨 이야기 끝에 누군가 "에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요? 하기 싫은 것도 다 하고 사는 거지."라고 했다. 그때 그 말을 한 사람은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했는데, 보면서 나는 '훌륭한데? 아, 저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조금 더 낫겠다.'고 생각하면서 끄덕였다. 그렇다. 살다보면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아니, 많다. 가끔 왜 돈이 많으면 좋을까.. 생각해보는데, 나에겐 그게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의 자유와 여유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여행을 가고 비싼 옷과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보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안하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돈이 많아도 피할 수 없는 일들이 또 있을 거다.
이 책은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가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운명애'에 대한 부분이었다. 불가피한 것을 어쩔 수 없이 견디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는 태도.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면 필요한 거라고 니체가 그랬댄다. '운명'이라니 너무 거창한 것 같고, 또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인간의 자유 의지를 작아지게 만드는 느낌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나는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법을 자꾸자꾸 배우고 싶다. 그럼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라는 문장을 보며, 피치 못할 일들을 꾸역꾸역 하며 언젠가 탈출하고 말거야! 라는 생각으로 지내왔던 괴로운 시간들이 떠올랐다. 또 그 이후에 그런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조금은 더 편안해진 지금의 나도.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가장 손쉬운 길은 주인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 혹은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하는 일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저 실 가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느끼고 살아간다. 그런 입장에 놓이면 아까운 에너지를 탕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진해서 원하는 일을 늘려야 한다.
무엇을 원한다는 사소한 마음의 움직임이 집중력을 높이고 의식을 명료하게 만들며 내면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178쪽)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자기 행동의 주인의식을 가지려는 자세이다. 그런데 어떻게 타의에 의해 정해진 것에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하나의 정답은 없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 간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생각해보면 어떤 것이든 연결고리를 찾자면 찾을 수가 있으니, 내 나름으로는 의미를 부여하는 셈이다. 위의 인용문처럼 원하는 것이 많아진다면 그런 연결고리를 찾는 것도 쉬워지겠지. 하지만 그런 외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다른 방법인 듯 하다.
그냥 정성껏 그 일을 해보는 것.
요즘 나는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 때 그런 마음이 왜 드는지 생각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왜 하기 싫을까.. 내 경우엔 '시작', 그 행위에 돌입하는 것이 어려울 뿐 막상 시작하면 또 그럭저럭 잘 이어나간다. 하다보면 흥미로운 것도 발견되고, 또 조금 해놓은 성과를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고. 내게 무언가를 하기 싫다는 것은 내가 그것에 관심과 정성, 노력을 쏟지 않음으로써 더 강력해지는 감정이었다. 그러니 일단 더 많은 정성을 쏟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노력'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기도 하고, 또 최소한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 최고의 결과를 산출하는 '가성비'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저자가 말한 것처럼 정성을 쏟아보면 조금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까. (아, 그래서 어제밤에 아주 정성껏 반찬을 만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잤다. 나는 이것을 먹기를 원한다 ㅋㅋㅋ)
어떤 일에 몰입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더 행복해지고,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기 운명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불가피한 일을 능동적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삶의 상당수는 타의에 의해 정해지고, 소소한 것들부터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의 연속이니까.
나는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누군가에게 나를 행복하게 해줘, 라고 하고 싶지도 않고, 또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설령 될 수 있다고 해도 그 상대방은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내 행동에 타인의 행복이 달려 있다면 나 역시 어깨가 무거워질 것 같다. 누군가와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함께 하되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대하지 않기를, 내 불행을 두고 상대를 탓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