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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Mar 24. 2023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

개학을 하고 어느새 3주가 지났다.

첫날 한 이야기가 공감이 되었던 걸까(이것도 나만의 착각인가^^;;), 아이들은 점점 더 좋아졌다. 원래 첫수업에는 임팩트 있게 한 가지(예를 들면 "너희가 왜 <사회>를 배워야만 하는가?"와 같은 어마어마한 이야기 ㅋㅋㅋㅋ) 만 이야기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나와버렸다. 젠장!

이래서야 기억에 남을 수가 있겠어?


하지만, 어떤 지식을 전해줘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버리면 아이들은 대체로 다 이쁘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자주 안쓰럽고. (밥 먹을 때 이쁘고,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사랑스럽고, 잘 땐 안쓰럽다. 그저 이 시간들을 잘 버텨주길 바랄 뿐. 무사히 지나가라.)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가 왜 이걸 배워야 하는지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니까, 나는 질문만 던지고 답은 알아서 찾아라. 하지만 대학 안 갈 거라고 공부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학은 안가도 좋은데 그럼 남은 1년이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온갖 종류의 지식을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마지막 기회일 거라는 것만 알고 있어. 전문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상식과 교양을 갖추는 것은 중요해. 졸업하고 난 뒤에 혼자 국영수사과부터 예체능까지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그게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본인이 더 잘 알겠지. 그러니까 놀고 싶으면 놀고, 자고 싶으면 자도 되는데 뭘 하든 최소한 본인이 뭐 하고 있는지는 알면서 했으면 좋겠다.


그럼 애들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무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를 모를까봐서요?


잠 자고, 게임하고, 딴 공부하고..

세상에 자기가 뭐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있지.

많지 아주.

나도 그랬으니까.


어떤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진짜 동기를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 모르는 척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진짜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모르는 척 하는 거면 차라리 나은데, 진짜 모르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멈출 때를 모르니까. 이건 뭐 나빠 보이는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똑같은 거 같아. 어쩌면 더 위험한  지도 모르지. 좋은 거니까 애초부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거의 안하니까.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은 건 바람직해보이지만, 이것도 진짜 동기를 모르면 나중에 허무해지거나 건강을 잃을 정도가 되어버릴 수도 있잖아? 요즘 자주 듣게 되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말도, 자기가 가스라이팅을 하는 줄 알고 하는 사람은 나쁘지만, 진짜 선의라고 생각하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은 본인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걸 고칠 수가 없으니까 결과적으로는 '무지함'이라는 것이 정말로 큰 해악을 가져올 수 있는 거 같아. 그러니까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야 해. 이건 어려운 일이지만, 안하면 아주 위험할 수도 있는 거야. 언젠가 허무함이든, 무력감이든, 불안이든, 어떤 식으로든 그 무지에 대한 대가,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는 순간이 오거든.




예전에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닐 때 그랬다. 시작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부터 내 여행의 목적이 현실에서의 도피를 위한 것이구나, 깨달으니까_ 물론 그러고도 한동안 찜찜한 마음으로(다 알면서 외면하고) 놀러다녔지만 _ 논문 다 쓴 뒤부터 여행에 대한 욕구가 거의 없어졌다. 더구나 멀리 가는 것은 더더욱. 진짜 동기는 어쩌면 고상하고(?) 멋진 게 아닐지도, 오히려 본능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이거나 두려워서 도망치는 것이거나 할 가능성이 클 것 같은데. 남들한테 그런 걸 다 떠벌릴 필요는 없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알고 있어야 될 것 같아.  


나쁜 일은 고상하고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시작은 아니었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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