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에서 근무할 때, 동네 친구이자 같은 학교 선생님이었던 그녀는 좀 특별하다. 몸도 약한 편이고 어떤 땐 무척 소심하고 근심 걱정을 달고 사는 것 같아서, 아.. 이래서야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지.. 걱정된다 싶다가(거꾸로 그녀는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니 저래서야 어떻게 살아가지, 싶어 늘 안쓰러웠다고ㅡ ) 또 어떤 땐 할 말 다 하는 강단을 보여줘서 우리가 서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단 게 너무 웃긴다. 게다가 나는 힘든 순간에도 열 받았다가 한번 자고 나면 또 잊어버리는 편이라, 스스로가 안쓰럽다거나 그런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어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우리가 꽤 긴 여행을 함께 가고, 친하게 지내게 되었을 때 학교의 다른 선생님들은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어떻게 친하게 되었느냐고 자주 물었다. 나는 우리가 비슷한 점이 꽤 많다고 느껴서 뭐가 그렇게 다르지? 싶었는데, 요즘 이야기를 나누면 교육관에서부터 이성관까지 많은 것들에서 '아, 다르구나..'라고 느낀다. 하지만 그 다름이 친구로 지내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고, 오히려 똑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보다 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표면적으론 내가 독립적이고 더 대범해 보일수도ㅡ 그치만 실상 나는 그리 대범하지도, 혼자인 걸 원하지도 않는다.)
9년전이었나 처음 영종도에 갔을 때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동네에 또래 친구가 생기겠다며 미리부터 기대가 컸다고 했다. 그러나 핫핑크색 자켓이 준 화려한 이미지 때문인지 다소 차가워 보였던 나의 첫인상에 아마도 가까워질 수 없을 거라 살짝 실망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전혀 몰랐던 나는 나대로 그녀가 너무 어려 보여서 20대일거라고 생각했기에 가까운 친구가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입 교사 환영 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시작된 나의 수다에 차가워보였던 내 이미지가 확, 뒤집어지면서 우린 친구가 되었다. (난 주위 사람에게 관심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고, 말을 안하면 차가워 보인단 말을 종종 듣지만.. 얘기를 조금만 나누면 매우 커다란 구멍을 가진 허당임이 들통나고, 단둘이 있으면 매우 수다쟁이가 된다, 고.. 한다.)
그 무렵 우린 삼십대의 고민들ㅡ연애, 결혼의 압박, 시험 문제, 생각도 해본적 없는 것을 물어보는 뛰어난 아이들과 유능한 동료들로부터 느끼는 부담ㅡ 을 공유하며 가까워졌다. 마흔이 넘은 지금은 오히려 그런 고민들이 덜한데, 그때는 인생에서 아무 것도 이뤄놓은 것 없이 시간만 흘렀다는 느낌이 들어 남들 보기나 좋았지 속마음은 여러 모로 답답했다. 아.. 지금 생각하면 그땐 참 좋은 시절이었는데, 여러 가지 압박에 짓눌려 있던 우린 우리가 엄청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중간만 했으면 좋겠어.. 라는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이어갔던 우리는 남들은 잘 모르는 그런 여러가지 이유들로 가까워졌다.
우리가 결정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그녀 덕분이다.
알고 지낸지 꽤 시간이 흐른 어느날, 그녀는 나에게 와선 이런 직구를 날렸다.
“근데, 샘은 왜 나한테 아무런 부탁도 안하고 힘들단 얘기도 안해요? 가만 보면 나만 맨날 징징대는 거 같단 말이야. 그러니까 샘은 이런 힘든 게 없나 싶다가, 또 내가 필요 없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결론은, 좋은 사람이지만.. 가까워지기는 힘든 사람인 것 같아요.”
어… 어… (당시 나의 머릿속은 멘붕이었다.)
“저.. 내가 그런 고민이나 힘든 일이 없을만큼 대범하거나 유능한 사람이 아닌 건 알잖아요. 사실.. 지금 도와달란 말이, 힘들다는 말이 입술 끝까지 차올랐거든요. 근데, 내가 힘들다는 말을 잘 못해서..”
그때 난 심리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이었다. 그치만 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지. 그때 그녀가 쨘! 하고 나타나 마치 내 속마음을 꿰뚫어본 듯 말한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도움을 줄 때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느끼니까 힘들면 자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 좀 하라고 하며 갔다. 그날 이후 우린 좀 더 가까워졌다. (음.. 사실 그녀가 나보다 더 어리고, 또 몸도 약하고, 걱정도 많은 타입이라 내가 힘이 되어줘야지! 라는 생각만 했지, 거기다 내 고민 같은 걸 더 얹어주거나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날의 돌직구를 세게 맞고 나서 정신이 들었다. 아, 나는 혼자서도 뭐든 괜찮은 그런 인간이 아니었단 걸.)
이제 서로 다른 학교에 근무하지만, 그녀는 늘 나를 응원해준다. 이대로 괜찮으니, 더 잘 하려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말라고. 또 내가 나쁜 짓을 하거나 진짜 나쁘게 변해버린대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와서 과거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주려 따라다닐 거라고. 내가 살인을 저질렀대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믿어준다니ㅡ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그녀를 그 정도로 생각했던가, 또 내가 그 정도로 믿을만한 인간인가.. 이 정도로 과분한 애정을 받아도 되는 걸까, 나는 그 정도로 좋은 사람은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며 기쁨보다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가면을 쓴 건가,, 싶은 의심을 하기도 ㅎㅎ
한때 (나는 전혀 알수 없는 이유들로) 나를 질투하기도 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이젠 질투 같은 감정은 가뿐하게 초월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사랑한다며 아주 닭살스런 말들을 투척한다. 음.. 아.. 그럴 때마다 나는, 좋으면서 또 뭐라 해야할지 잘 몰라서^^;;;; 그런 말은 남자한테나 해줘요, 라고밖에. (하지만 칭찬은 좀 어색해해도 애정 표현 그 자체는 좋아한다. 당황해서 리액션을 못할뿐이지 ㅎㅎ)
요즘 사랑에 빠진 그녀는 잘 살고 있는 거 같아서
쫌 안심이 된다. 그런 닭살 돋는 말을 좋아하며 들어주고 또 같이 해줄 수 있는 사람 만나길 바랬는데, 내 바램이 닿은 듯 했다.
행복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