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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Feb 05. 2023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나의 학창 시절 선생님

고교 시절, 아니 지금의 지도 교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학창 시절을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분은 고2때 담임이셨던 영어 선생님이었다. 그 분 덕분에 카펜터즈와 퀸의 노래를 알게 되었고, <love of my life>는 처음으로 다 외운 팝송이 되어 몇 해 전 <보헤미안 랩소디>를 볼 때 그 생각이 또 났더랬다. 하지만 영어 수업에 대한 기억보다 담임 선생님으로 좋았던 기억이 더 많다. 모든 게 강제고 의무던 그 시절 우리에게 여름 방학 보충 수업의 선택권을 주었던 사람. 뭣 모르고 신나게 놀고 온 우린 혼자 그렇게 해서 교장 교감샘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을 선생님을 생각해서 2학기엔 자발적으로 보충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한번도 우리에게 티내지 않았고, 누구를 욕하지도 않았고 늘 활짝 웃었다.


어느날은 옆선이 과감하게 절개된, 학교에서 싫어한다는 빨간 롱 스커트를 입고 웃으면서 길에서 헌팅한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첫사랑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후로 언제 어디서든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나면 먼저 연락처를 물어봤다는 그 말이 어쩐지 미심쩍으면서도 한편으론 적극적인 태도가 멋있기도 했다.


교실 옆 화장실 물때 냄새가 거슬린다며 다른 선생님 모두 “니네 화장실 청소 똑바로 안할거야!!” 라면서 뭐라 했던 어느날은, 그 냄새가 어딘지 모르게 정겹지 않느냐면서 또 웃어서 참 특이하다 했고,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온 어느 날엔 수학을 딱 절반만 맞추었던 나에게 친구들 수학 공부를 가르쳐줄 것을 요구해서(아… 난 처음엔 선생님이 내 점수를 모르는 게 아닐까 했는데, 알고서도 그랬던 거였다.) 결국 내 수학 점수를 올려놓았던 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우리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준단 거였다. 90년대 보통의 학교는 안그랬을 것 같지만 2학년 3반 그 교실 안에서 난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신기한 것은 그 자유로움이 아무거나 해도 된다거나 방종으로 흐르지 않았단 것이다. 우리 교실은 난장판이 아니었고, 모두 열심히 공부했다. 선생님과 우리들 사이에는 잔소리나 짜증, 신경질 대신 자연스러운 믿음이 있었다. 그때 우린 자유가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이란 걸 조금씩 배웠던 것 같다. 그건 선생님 자체가 자유로운 사람이기도 했지만,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다른 선생님이나 교장 교감샘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우리에게 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성숙한 인간의 지표로 생각하는 두 가지, 일이 잘 안되어도 남 탓을 안 하고, 엉뚱한 데 화풀이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살다보면 그 둘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점점 더 느끼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은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어도 교실에서 우리를 향해 늘 웃어주던 선생님이 고마웠다. 난 고1때 자퇴를 희망할 만큼 학교도 선생님도 갑갑해하고 고교 교육에 회의적인 학생이었는데, 교사로서 유일한 롤모델이 있었다면 바로 이 분이었다. 난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 속 한켠에 닮으려고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또 한 사람은 화학을 가르쳤던 여자 선생님이다.

학창 시절 나는 사회보다 과학 성적이 더 좋았다. 사회과목 중에서라면 윤리와 세계사가 좋았고, 사슴 같은 눈망울의 목이 기다란 여리여리 국어 선생님을 동경해서 시 낭송반에 가입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가 가르치는 정치, 경제는 관심이 없었던 거다. 수능에서도 과학이 사회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과학책을 읽어본 일이 거의 없었다. 음… 두 세권은 되려나? 곰곰 생각하니 그 때 나는 과학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고, 지적인 호기심도 없었다. 과학 성적이 높았던 것은 오로지 선생님 덕분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좋으면 그 과목을 열심히 하는, 학문 자체보다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학생이었다.)


농담 같은 건 1도 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던, 세상 진지한 화학 선생님. 그러나 그때 내 눈에는 선생님이 화학이라는 학문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 무뚝뚝한 사람이 화학을 설명하면서 너무 신비하고 재미 있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었을 때, 나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걸까? 여기에 엄청난 뭔가가 있는 건가?’ 하고, 진지한 호기심을 가졌다. 더불어 사적인 이야기 한 마디조차 나눠본 적 없는 여자 선생님을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자신의 과목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걸 직접 말로 하지 않으면서 눈빛만으로 내게 전달해준 사람이라서. 선생님은 크게 웃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수업할 때 열중하면 가끔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주 살짝^^ 나는 그 모습이 신기했고, 그런 그녀가 예뻤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얼굴과 입꼬리를 떠올리니 나도 미소를 짓게 된다.


내가 자기 과목에서 전교1등을 한대도 칭찬 한마디 없을, 무심한 사람인  알았지만오히려 바로  점이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분은 칭찬에 후하지 않았고, 입에 발린  같은 것도 안했는데, 나는  점이 좋았다. 시험을  보고 아니고는  분께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거란 확신이 든다. 화학을 열심히 공부했던  치곤 결말이 허무하다. 화학은 전교 1등에  백점이었어, 라고 자랑하기엔 나는 지금  흔한 원소 기호조차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자기 위로를 해보자면,

지식의 내용은 다 잊었지만

그 선생님의 이름, 얼굴, 수업할 때의 눈빛은 25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다. 그 분이 내게 남겨준 것은 화학 지식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눈빛과 열정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라도 화학도 재밌는 거랬는데, 다시 공부해볼까? 하는 마음의 불씨를 남겨두는 거지.



교실에 앉아있는 애들을 보면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애들의 머릿속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이러저러한 선생님, 으로 기억되기보다 '나'라는 인간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처음 교직에 들어섰을 때 사람 좋은 대학 동기 녀석이 애들이 좋아하는 선생님 말고 존경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라고 했는데, 친구의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어딘가 쿡쿡 찔린다. 하지만 언젠가 <알쓸인잡>에서 김상욱 교수님이 리차드 파인만에 대한 애정을 늘어놓으면서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물리학자, 존경하는 물리학자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학자는 파인만이라고, 그 완벽하지 않음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을 보고 쫌 위안을 받았달까 ^^;; 그것 역시 학자로서의 천재적인 파인만 외에 다른 모든 파인만의 모습과 결점을 받아들였을 때 가능한 거겠지.


개학을 앞두고 떠오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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