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의 고백
배우 이종석과 아이유가 서로 연인 사이라는 기사를 봤다. 그리고 화제가 되었던 이종석의 수상 소감도 봤다. 이 사람을 만나고 그간 좀 더 열심히 살아놓을 걸, 더 좋은 사람일 걸 했단 말에 진심이 확 느껴졌다. 아.. 본인 말처럼 진짜 많이 좋아하는구나, 라는 게 온전히 느껴져서 그동안 시상식에서 들어왔던 “그 분께 감사한다.”는 말과는 확연히 다르게 들렸다. 나는 이 배우에게 관심이 없었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멋있어 보였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주 다양한 말로 바꿔 말할 수 있지.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해준이 서래에게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라고 하던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어이 없어. 그걸 꼭 그 말로 해야 돼? 니가 완전히 붕괴됐다고 했잖아!!’라며 속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나’라는 인간이 그동안 믿고 쌓아왔던 모든 세계가 무너졌다는데, 그보다 더한 고백이 어딨냐고. 담담하지만 어딘가 떨리는 듯 했던 이종석의 소감도 내겐 뜨거운 고백으로 들렸다. 그 역시 “사랑해”보다 좋아하는 그 마음이 더 잘 느껴졌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예민하고 까칠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은 캐롤(헬렌 헌트)에게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캐롤은 황홀한 눈으로 자기 생애 최고의 칭찬일 거라 답한다. 응. 넌 어디가 예쁘더라, 넌 뭘 잘 하더라, 네가 최고더라… 그런 칭찬도 좋겠지만 저런 말을 들으면 기쁨을 넘어선 벅참… 같은 게 있을 거 같다. 너를 만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 라거나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거야, 도 그랬지만.. 그날 밤 나에겐 “더 좋은 사람일 걸, 더 열심히 살아놓을 걸.“하는, 과거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확.. 와닿았다.
살면서 자신의 지난 삶을 돌이켜보며 아쉽고 후회가 남는 순간이 종종 있겠지. 그리고 앞으로 어찌 살겠다고 다짐도 하고. 근데 미래는 힘들어도 의지와 노력으로 바꿔볼수 있다 해도, 지나온 과거야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런데 그런 과거의 나,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크게 남을 때가 나 역시 누군가를 많이 좋아할 때였다. 이런 말을 하면 너도 잘 살아왔는데 왜 그러냐거나,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치만 나한테 그건 좀 다른 얘기다. 난 객관적으로 누가 부족하고 아니고, 잘나고 못나고 그런 건 애초에 사랑 속에선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선택했고, 그럼 그 둘은 남들을 모르는 서로를 알아봤다는 이야기니까. 그 관계 속에서 둘은 적어도 서로에게만큼은 비교불가능하고, 다른 누군가와도 대체불가능한 그런 존재가 된다.
그런데 왜 그런 마음을 갖느냐고?
그저 순수하게 내 연인이 좋으니까. 누군가를 많이 좋아해본 사람은 저 마음을 알지 않을까. 너무 좋으니까 그걸 잃을까봐 두려움이 생기고 자신이 그에 걸맞는 사람인지 (연인을 포함해 세상 모두가 의심하지 않는대도) 생각해보게 되고, 그럼 어떤 것이든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음 좋았을 걸.. 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은 들 수 있지 않나.
나는 그랬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가 (그가 이룬 것이나 눈에 보이는 그런 거와 무관하게) 멋져 보이고, 그런 사람에게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으니까. 그리고 더 사랑받고 싶으니까. 난 사랑에는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과는 또 다르게(물론 이것도 필요하지만), 상대를 우상화한다거나 경외심을 품는 그런 게 아니라, 이성으로서 느끼는 매력이나 애정을 넘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느끼는 존경심 같은 게 바탕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행동이나 마음가짐, 삶의 자세에서 ‘멋지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니까.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지금까지의 나는 바꿀 수 없으니까 생기는 자연스러운 아쉬움이지. 그런 마음이니까 미래형의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거야”가 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 같다.
이런 마음은 상대방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오직 자신의 마음 속에서 생겨날 때만 아름답고 애틋하다.
상대가 “(나를 위해, 내게 어울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줘”라고 하면 청개구리 같은 나는 “뭐라고?”라면서 반감이 생길텐데^^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 다 괜찮다고 해주면, ‘아, 이다지도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는 거지. 나는 자발적으로 내가 나를 바꾸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좋고, 그런 마음이 들면 아.. 내가 많이 좋아하는 구나, 알아챈다.
근데 또 상대가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네가 진짜 날 좋아한다면 내가 어떤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줘야지."라고 말하면, 그런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순 없을 거 같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 취약하고 결점 많은 인간, 모든 걸 잃어버린 나로도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모든 인간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욕구겠지만…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말로 그 어떤 노력도 없이 자신의 모든 걸 받아들이라고 하는 사람은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그런 요구를 한다는 것이 그 자신은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걸, 자기 표현대로라면 진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니까. (우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겐 존경심 같은 게 안 생겨서^^ 그냥 대놓고 자신을 더 많이 좋아해달라고 하는 게 훨씬 낫다.)
그러고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바뀔 것을 요구하지도, 또 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좋아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는 더 좋은 사람일 걸,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관계가 제일 좋겠다.
새해 첫 새벽에 든 생각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