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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Dec 16. 2022

책임감이 강한 사람

늦은 밤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어떤 사람에게 커다란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친구. 그 고민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책임감’에 대해 생각했다. 대부분 좋은 덕목으로 여기는 책임감, 그런데 책임감이 강한 건 좋은 것일까? 진짜 책임감이란 건 뭘까?


일에서의 책임감은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다 하고, 남에게 미루거나 하지 않고 끝까지 완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설령 그가 이제 그 일에 흥미를 잃었거나, 하기 싫고 귀찮다거나 다른 일로 바쁘다고 해도 자기가 해야 하는 것을 묵묵히 하는, 그런 사람을 책임감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순간적인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은 책임감을 갖기는 어려울 수 있겠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어떤 일을 끝까지 했느냐 아니냐는 책임감의 핵심이 아닌 것 같다. ‘의무감’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의무감이 강한 사람도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완수하기는 마찬가지일테니까. 그런데 의무감에서 뭔갈 한다고 하면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반면 책임감은 대개 긍정적인 의미를 담는다. 그렇게 보면 결과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해지는 무언가를 하느냐 마느냐 그 자체보다, 그 행위를 이끌어내는 판단과 의지가 어디에서 나오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무감에서 행하는 것은 자기 선택과 의지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타인의 반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연인에게 의무감에서 연락을 하는 사람은, 지금 연락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는데도 연락하지 않으면 상대가 서운해할까봐 연락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것도 일종의 배려라면 배려일 수 있고 고마움도 느낄 수 있겠지만, 음.. 난 의무감에서 비롯된 거라면 그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 아 기분 나빠, 자존심 상해!!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정말로 연락하고 싶을 때 해줬으면 더 기쁠 것 같다. (고마움도 좋지만, 나는 기쁨의 감정이 더 좋다!) 그게 매일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번이라 해도 진심으로 원해서 하는 게 더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그에 비해 책임감은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후회 없이 쏟아붓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과 의지가 담긴 느낌이다. (물론 사전적인 정의를 찾아본 게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른다. 그냥 오늘 밤 떠오른 둘의 차이^^;;) ‘의무’에는 내 선택의 여지가 없고, 나의 자유도 없다. 하지만 ‘책임’은 내 선택이 먼저 있었고, 내겐 그 선택을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이기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인 거란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의 결정적인 특징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고 행동했으니 결과가 나빠도 내가 수용하고 반성하거나 개선하면 그뿐이다. (그래서 삼십대 중반에 엄마가 별 남자 없으니 그냥 적당히 만나서 결혼하라고 했을 때, “ 내가 선택해야 나중에 살다가 힘들어도 엄마 탓을 안할 거야. 계속 강요해서 아무나 만나면 분명히 나중에 엄마 탓을 하게 될 건데, 그래도 괜찮아? 난 다른 사람 탓 안하고 싶어 ” 이렇게 말하면 더는 이무 말도 안하셨다. ㅋㅋㅋㅋ 물론 엄마 잔소리를 막는데도 효과적이지만, 그게 진심이었다. 내가 한 선택이 아닌 것으로 힘들어지면 그 선택을 하게 한 사람이 얼마나 원망스럽겠나. 물론 그것조차도, 모든 게 결국 내 선택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다 알고 있는데도 어떤 날엔 탓할 곳을 일부러 찾기도 하니까. ㅡ 그리고 난 별 남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


난 자존감보다 ‘자기애’란 말이 더 좋은데,

이 건강한 ‘자기애’가 책임감 있는 사람의 또 중요한 특징인 것 같다. 자기애가 있는 사람은 의무감보다 책임감으로 행동하지 않을까. 책임감 있는 연인은 자신이 택한 상대방과의 관계에 노력을 기울일 때도 상대가 서운해할까 괜히 싸우게 될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연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 자신에게 당당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그냥 그런 자신의 모습이 멋있고 기쁜 거지.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니가 알아주든 말든 이렇게 하는 게 내가 생각해도 내가 쫌 멋진 거 같아 ㅋㅋㅋㅋ 누가 시켜서, 상대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그렇게 하는 내가 멋져보일리 없잖아.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해도, 나는 아는 거지. (어느 뇌과학자가 길 잘 못 찾는 사람은 이성의 위치 파악이 어려워 바람 피울 확률이 적다는 얘기를 반쯤 농담삼아 했는데, 난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그럴 확률이 낮다고 생각했다. 애인이 알든 모르든 내가 그런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 뭔가 숨기고 거짓말하는 걸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이런 마음이 들 테니까.)


또 길게 주저리 주저리 얘기했지만

나에게 그 둘을 구분하는 건 머리가 아니라 느낌이다.

하고 나서 아, 기분 좋다. 후련하고 내가 대견하고 기특하다 싶으면 책임감에서 한 거 같고,

아, 이런 내가 싫다, 밤에 이불킥하고 겨우 겨우 참았다 싶으면 의무감에 가까운 듯^^



그런데 가끔 지나친 책임감은 독이 된다는 말을 듣는다. 좋은 건데 왜 독이 되는 걸까? 객관적으로나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제 이건 포기하거나 놓아야 하는 것인데도 그것을 끝까지 계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선택한 것이니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 마음을 나는 존경한다. 진짜,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때론 그 책임감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자신의 진심은 무엇인지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한번 하기로 한 것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야” “나는 어떤 일이든, 관계든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야”라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또 남들이 만들어준 어떤 이미지에 의해 스스로가 자기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 정말로 힘들고 두려우면 ‘책임감 있는 사람’ 타이틀에서 벗어나 포기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오롯이 자기 몫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경제학 용어에 ‘매몰 비용’이라는 게 있다. 이제 선택을 되돌려도 더 이상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기에 합리적 선택을 하려면 매몰 비용은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또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떤 것에 애정이 남아서 선택하는 그런 거라면 그건 괜찮다. 그러나 사람이든 일이든 더 이상 아무 애정이 없거나, 아주 결정적인 문제가 발견되었는데도 자신이 그간 쏟아부은 시간, 돈, 노력이 아까워서 계속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경우가 있다. 그간 들인 비용이 아깝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이라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무조건 오래 붙잡고

끝까지 가는 것이 책임감 있는 태도가 아닐 수 있단 거,

사실은 계속 하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자기에게 진심으로 물어보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그로 인한 결과는 자기 선택이었으니 받아들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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