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티드 베일>, 월터와 키티의 사랑
배우자의 외도를 용서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난 옛날엔 남편이 바람 피우면 바로 헤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얼마전에 텔레비전 보다가 남편이랑 이 주제로 이야기를 했는데, 한번 바람 피웠다고 바로 이혼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게 그렇게 잘 안될 거 같은 거야. 남편한테 똑같이 물었는데 남편도 그렇대. 정말로 후회하고 용서를 빌면 한번은 넘어가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요즘은 할거라면 완전 범죄를 해라, 절대로 나한테 들키지만 말아라, 이런 심정이야.
결혼 15년차 친구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나에게 결혼하지 말고 즐겁게 살라면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와 결혼을 해야 한다면 지금의 남편과 다시 할 거라고도 했다. 음.. 이 정도면 아주 행복한 결혼생활이란 얘기지.^^)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꽤 단호하게 대답했다.
완전 범죄로 만들 정도의 정성과 지능이라면 그래, 인정.
하지만 나는 알게되면 헤어지게 될 거 같아. 배신감 뭐 이런 것보다 이전과 같은 마음과 눈빛으로 서로를 볼 수 없을 거라는 거.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이 남았다 해도 다시는 애정과 자신에 찬 눈빛과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야. 근데 그건 나보다 상대가 더 그렇지 않을까. 내가 용서한대도 그 사람 스스로가 예전처럼 당당하고 자신있게 나를 보고 사랑하기 어려울 거 같아. 거꾸로 내가 그랬다면 상대가 용서했다고 해도 늘 마음에 죄책감을 가지게 될 거 같은데,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려울테니.
내가 상대를 경멸하게 될까봐
그 자신이 스스로를 경멸하게 될까봐
결국엔 내가 나를 경멸하게 될까봐 두려우니까
그렇지만
친구의 말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방금 전까지 좋아했던 마음이 갑자기 0으로 떨어지진 않을테니까, 꼭 가정에 대한 책임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엄청 밉지만 여전히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아, 쓰면서 더 슬퍼졌다. ㅠ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칼같이 끝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릴 땐 안그랬는데 점점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 놓여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단정하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그런 상황에 놓여보면 상상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야 알게 될테니 미리 단정하지 않기로.
하지만 너무해ㅡ 상상만으로도
사랑 없이 결혼한 여자와 그걸 알면서 결혼한 남자
영화 <페인티드 베일> 속 키티(나오미 왓츠 역)가 그렇다.
너무한 여자.
그녀는 남편 월터(에드워드 노튼 역)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결혼했다. 아름답고 인기도 많지만 결혼 생각이 없는 도도한 딸에게 언제까지 네 아버지가 널 먹여살려야겠느냐고 말하는 엄마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자신을 많이 사랑해주고 괜찮은 직업을 가진 월터는 그저 결혼하기에 적당한 남자였던 걸까
슬픈 것은 그런 키티와 달리 월터가 그녀를 정말로 좋아했다는 것이다. 파티장에서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걸어내려오는 그녀를 본 순간부터, 그녀가 자신과는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 화려하고 허영심 있는 그녀의 본모습을 알아차린 때에도, 키티가 다른 남자와 침대에 있는 것을 안 순간에도.
월터는 노력했다고 했다.
키티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도 결혼했다고 했다. 좋아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하지만 불륜이 발각되자 이혼하고 내연남과 결혼하겠다는 키티를 보며 월터는 그제야 ”당신은 그럴(내가 노력하고 시간이 흐른다고 나를 사랑해줄) 여자가 못 된다는 걸 깨달았다“ 며 상처입은 마음을 드러낸다.
월터의 독설처럼 키티는 남자 보는 눈이 퍽이나 없었다.
남자의 사랑은 그리 크지 않다면서도 너를 향한 내 마음은 진심이라고 입에 발린 소리나 하던, 아내와 헤어지고 너와 결혼하고 싶다는 그 놈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니.
쯧.
결국 키티는 한순간 불타올랐던 감정의 실체만 확인한 채 배신감에 치를 떨며 돌아서야했고, 월터를 따라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의 오지로 가야했다.
더 이상 아내의 눈을 똑바로 보지 않는 남자
중국의 시골 마을에서 이들 부부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한 집에 살고 같이 밥을 먹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눈빛, 스킨십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이제 키티를 위해 노력하던 다정한 남편은 사라지고, 차가운 모습으로 그녀의 눈을 보지 않은 채 사무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월터만 남았다. 게다가 그는 수많은 콜레라 환자들을 돌보느라 일과 연구에만 빠져있다. 참다 못한 어느날 키티는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고 실망한다며 자신을 그만 경멸하라고 말한다.
그때 월터의 차가운 한마디.
“당신을 경멸하는 게 아니야. 나를 경멸하는 거지.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아아아 ㅜㅜ 이 대사,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월터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그가 키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확, 와닿았다. 그치, 그런 짓을 한 니가 밉고 싫기도 하지만, 그런 너를 좋아했고, 또 지금도 마음이 남아 이렇게 서로를 괴롭히며 살고 있는 내가 더 싫은 거지.
다정한 사람이 돌아서면 더 무섭다더니
월터도 딱 그랬다.
결국 키티는 월터와의 관계 개선은 포기하고 콜레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돌보는 수녀원에서 봉사활동이라도 하며 삶의 의미를 찾기로 결심한다. 호화스럽고 편하게만 살아온 키티에겐 그 모든 게 낯설고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는 무너진 자신, 남편과의 망가진 관계를 잊고 타인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축복을 얻는다.
그동안 자기만 외롭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키티도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현실에 눈을 좀 뜨지 않았을까.
그러자 남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에게 첫눈에 반해 서투르게 청혼하던 남자 월터 뒤에 가려진 인간 월터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모르던 남편의 진짜 모습
봉사활동하는 수녀원 옆에는 월터의 진료실이 있어 가끔 슬쩍 들여다 보면서 키티는 자신이 못 보고, 모르고 있던 남편의 환자와 연구에 대한 열정, 그 바쁜 와중에도 고아가 된 아이들과 놀아주는 따뜻함,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자신을 믿지도 않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깊은 헌신에 마음이 움직인다. 늘 지루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남자, 그래서 외롭다고 생각했고 재미있고 사교적인 남자에게 눈길을 돌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월터는 키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책임감 있고, 사랑이 깊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키티가 외국인을 혐오하는 중국 청년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한 날, 월터는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그녀가 있는 골목길을 향해 달렸다. 겁에 질려있던 그녀는 다급히 뛰어온 월터를 보고서 깨닫지 않았을까. 달콤한 말과 능숙한 사교술을 갖춘 그 놈이 아니라,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준 건 월터였단 것을. 그는 자신을 경멸하는 게 아니라 너무 상처받아서 그 마음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단 것도.
이제야 그녀는 조금씩 월터라는 인간을 알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키티와 월터는 자연스레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리고
키티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날
월터는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는 그의 아이가 아니었다. 키티에게서 임신 개월수를 들은 월터의 표정. 잠시 말이 없던 그는 이제 그런 것은 괜찮다며 그녀를 안아준다. 오랜 시간 헤맸지만 이제 키티는 월터에게서 단순한 열정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월터가 그토록 바랬던 대로.
영화는 새드 엔딩, 아니 해피 엔딩(?)이다.
월터가 콜레라에 걸려 먼저 죽은 것만 생각하면 새드 엔딩이지만, 키티가 마지막까지 그를 간호하며 월터의 곁을 지켜주고 홀로 씩씩하게 아이를 기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해피 엔딩이다.
월터는 죽기 전 키티에게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나를 용서해줘.. 였다. 용서는 키티가 빌어야 할 것 같은데, 자신이 상처입은 마음을 이기지 못해 키티를 오지로 데려와 힘들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어울리지 않는 여자를 택해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랐던 데 대한 근원적인 미안함이었을까,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조금 더 일찍 마음을 열어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을 봐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라고도 생각했다.
월터는 키티를 사랑했지만,
그 역시 그만의 방식과 이상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에게서 없는 것을 찾고 있었으니까.
이 영화의 원작은 서머셋 몸의 <인생의 베일>이다.
10여년 전인가,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독서 모임에서 모두 키티를 욕하며 읽었고,
월터도 차라리 이혼해주지 복수를 저렇게 하다니 무서운 남자라 했던 거 같은데…
영화는 결말이 다르기도 하고, 에드워드 노튼이랑 나오미 왓츠의 눈빛이 모든 개연성을 만들어서 둘 다 미워할 수가 없었더랬다. 아니, 에드워드 노튼은 원작보다 훨씬 더 멋있어서 이런 남편을 두고 왜 저딴 인간이랑? 싶어 몰입이 안되었다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