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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Apr 08. 2024

우희의 사랑

첸 카이거, <패왕별희>

초나라의 항우에게 우희라는 애첩이 있었다. 초나라가 한나라에게 포위되었을 때, 우희는 마지막으로 춤을 추고 항우에게 사랑을 고백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렇게 옛날 이야기로만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런 러브 스토리인가보다, 했는데 <패왕별희>를 보고 나오니 두 명의 우희, 주샨(공리)과 두지(장국영)가 보여주는 사랑에 먹먹하기까지 했다.


사실 장국영을 보러 갔는데,

왜 막이 내리니 주샨(공리)만 떠오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눈물이 흐른 것도 주샨 때문이었다.


시투(장풍의)는 남자답고 멋있는 캐릭터였다.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 때문에 실망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건 인간적인 한계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어린 내 눈에 시투는 용감하고 당당한 남자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래, 저런 남자를 사랑하지 않기란 어렵지. 그건 몇십년이 지난 지금 봐도 마찬가지다.

 

내가 두지였대도,

주샨이었대도,

시투를 사랑했을 것이다,

온 마음으로.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곳에서,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신을 구해준 남자를 사랑하지 않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채 경극단에 던져진 두지는 자신을 위해 대신 매를 맞아주고, 남들의 조롱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시투를 좋아하게 된다.


주샨도 마찬가지다. 술집에서 일하는 주샨은 뭇 남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지만, 그들은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기보다는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보고 돈으로 사려고 할 뿐이다. 그런 남자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주고 싶은 여자는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그런 그녀를 시투가 구해주었다. 달려드는 짐승같은 사내들을 막아서며 시투가 "오늘이 우리의 혼인날"이라고 했을 때, 그를 바라보던 주샨의 눈빛. 그 한순간에 주샨은 남은 인생 전부를 걸었던 것 같다. 당신과 함께라면 구걸을 하며 살아도 좋다, 라고 했던 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멋진 남자가 나를 사랑한다는데

세상에 뭐가 무서울까.


그녀는 가진 돈과 패물은 물론이고 신발까지 벗어준채 여보란듯 술집을 떠난다.



사랑의 라이벌인 두지와 주샨은 무척 닮았다.

영화 속 주샨의 직업은 매춘부이고, 두지의 어머니도 그랬다.두지는 매춘을 하며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았고, 주샨은 시투와의 사이에서 가진 아이를 잃었다. 그러니 두 사람은 모두 시투 외에는 마음 붙일 곳이 없다.


또 두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낮은, 천대받는 위치에 있다.

매춘부와 매춘부의 아들. 스스로를 지키고 싶어서 그랬는지 둘 다 자존심이 무척 강했으나 속은 한없이 여렸다.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바보같다 싶을 정도로 시투를 사랑했다. 두지가 일본군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 때문에 매국노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것은 시투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주샨 역시 남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하는 여자였다. 그리고 시투가 자신을 떠났을 때도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주샨과 두지는 연적이면서도 서로를 완전히 미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약을 끊으려 발악하던 두지가 엄마.. 를 부르며 춥다고 하자, 주샨은 그를 이불에 감싸고 한없이끌어안는다. 그때 두지는 주샨의 아기같고, 주샨은 그의 엄마처럼 보였다. 주샨의 눈빛은 안쓰러움으로 가득했다. 어쩌면 둘다 지독하게 외로웠고, 지독하게 시투를 사랑했기에 그 마음을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 정작 사랑을 받는 시투는 그 마음을 그 정도로 알지 못했을 것 같다.)


주샨과 두지는 시투보다 더 용감했다. 자아비판을 하라며 무릎을 꿇렸을 때도 주샨은 남편과 두지의 소중한 칼이 불타는 것을 볼수 없어 그 앞으로 뛰어드니까. 두지도 시투 때문에 그랬노라고 먼저 말하지 않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나,

우희는 패왕을 위해 죽은 걸까.. 살아서 한나라 군사들에게 치욕을 당하고 싶지 않았을 테지, 하지만 그보다 더,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겠지.

나는 패왕이 아니다!

자기를 지켜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무력 앞에서 자신을 버리는 모습을 보며 사랑이라는 것이 그토록 헛된 것이었단 걸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 거 같다.



두 사람의 한없는 사랑을 받은 시투보다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던져버린 주샨과 두지가 더 행복했을 것 같다. 슬픈 결말을 생각하면 그게 뭔 행복이냐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안락하고 편한 삶이 행복한 삶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목숨을 걸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디 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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