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고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편에 서서 그 잘못을 영원히 눈감아주고 싶은 때가 있다. 누가 이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까, 나라도 그럴 수 있었겠다, 아니 이 사람이 정말로 가해자이긴 한 걸까..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사람이ㅡ 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카야는 그런 사람이었다.
작은 동네에서 누군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 동네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로 항상 무리를 끌고 다니며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한 남자(체이스)가 죽은 채 발견된 것이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었고, 발자국이나 지문 같은 증거도 없다. 그러나 경찰은 살인 사건으로 단정하고, 늪지에 사는 소녀라며 마을에서 차별받고 배척받아온 카야를 용의자로 지목해 수사를 진행한다.
카야는 누구인가? 그녀는 왜 증거도 없는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된 걸까? 증거 없이도 살인자로 지목될만큼,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인 걸까?
아주 어린 시절, 그러니까 대여섯살 무렵.. 아직 그녀가 숫자도, 돈도, 글자도 모르던 때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엄마가 떠났다. 똑같은 이유로 언니와 오빠들까지 차례대로 떠난 뒤 카야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상처와 자격지심으로 가득한 아버지, 가장 약한 아내와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도망치던 아버지는 막내딸인 카야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래도 같이 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마저도 잠시, 그런 아버지마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뒤 성인이 될 때까지 카야는 쭉.. 혼자였다. 학교는 단 하루 가보았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는 이는 그들 역시 동네에서 무시당하는 존재였던 흑인 부부가 유일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이 싫었던 카야는 사람들을 최대한 피해서 살았지만, 늘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웠다. 그래서 사람을 경계하면서도 한없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두 명의 남자가 그녀의 마음을 열었다.
한 명은 오빠의 친구였던 테이트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지켜봐왔던 남자. 카야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그녀만큼이나 습지를 사랑했으며, 그녀가 가진 잠재력을 세상 밖에 내놓도록 도와준 남자. 테이트는 카야에게 따뜻한 첫사랑이었다.
사망한 체이스는 카야의 두번째 남자친구였다. 그를 믿고 함께 가정을 꾸릴 거라 믿었던 카야와 달리 체이스는 그녀의 몸만을 탐했다. 카야에겐 결혼을 약속하고 사귀는 중에 그녀에게 말도 없이 다른 여자와 약혼한 파렴치한 남자, 카야는 그의 약혼 소식을 신문을 통해 알았고, 그렇게 상처만 입었다. 그런 그가 망루에서 떨어져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카야는 법정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평생 지독히 외로웠고, 편견에 시달렸지만 법정에서만큼은, 그 동네의 배심원들도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 마시걸(습지에 사는 그녀를 비하해 부르던 별칭). 마시걸이지만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벌을 줄순 없잖아.
그러나 놀랍게도 이 소설은 기막힌, 또 뭉클한 반전을 선사한다. 세월이 흘러 그녀가 죽은 뒤 테이트가 우연히 살인 사건의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체이스를 죽인 범인은 바로, 그렇게 무죄라고 변론했던 카야가 맞았다. 카야는 그토록 사랑했던, 긴 세월을 함께 산 테이트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않은 채 떠났다. 테이트 역시 그 증거를 불태워버림으로써 영원히 눈감아주는 길을 택한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비난하고 탓하지만, 어째서 그 사람이 그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안 그랬을 거라고, 달랐을 거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는가? 자신을 농락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옛남자친구가 계속 찾아와 위협한다면 말이다. 카야가 체이스를 죽인 게 잘 했다는 게 아니다. 그냥 혼자 무서웠을 그녀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뿐이다. 누군가 조금만 곁을 내줬다면, 그래서 “체이스가 자꾸 괴롭혀요!”라고 말할수 있고, 누군가 그 말을 믿어주었다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테이트가 있지 않았냐고? 친구인 흑인 부부가 있지 않았느냐고? 부모와 형제, 모두에게 버림받았다고 믿고 자란 소녀가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고 기대지 못하는 게 과연 그녀의 탓인 걸까.
그래서 카야의 그 비밀을 알았다면, 불태워버릴 수밖에
아무도 모르게ㅡ
그게 정의롭지 못하다고, 옳지 않다고 해도
내 마음은 모른 척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