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사랑에도 진심이 있다면

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by 햇볕 냄새

찰스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에는 오직 측정가능한 '사실'만을 중시하고 상상력 같은 건 쓸모 없다고 여기며 아이들의 삶을 망치는 어른들이 등장한다. 학교를 운영하는 그래드그라인드와 성공한 사업가이자 그 동네 제일의 부자 바운더비가 그런 사람이다.


나는 그래드그라인드를 싫어했다.


그래드그라인드는 꽉 막힌 원칙주의자에, 눈에 보이고 계량화가능한 것이 아니면 믿지 않는 완전히 메마른 인간이다. 세상에 대가 없는 것은 없으며, 전체는 부분의 합이고, 모든 것은 개인의 이해관계에 호소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 그런 아버지 밑에서 오직 사실! 아주 좁은 의미의 사실만을 배우며 살아야했던 루이자와 톰 남매는 얼마나 불쌍한가.


“ 하지만 아버지, 제 눈이 완전히 멀었다면, 촉각에 의지해 더듬으며 길을 갔다면, 그리고 사물의 형태와 외양을 알고 있으니까 그것들과 관련해서 다소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지금의 상태보다 백만배는 더 현명하고 더 행복하며, 더 사랑하고 더 만족스럽게 지내고, 모든 면에서 백만 배는 더 순수하고 인간적일 수 있었을 거예요. … 한편으로는 잠시도 충족된 적이 없는 굶주림이나 갈증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와 숫자와 정의가 완전히 절대적이지 않은 영역에 대한 열렬한 갈망과 순간순간 싸우며 저는 자랐어요. ..
아버지, 저는 불행했어요. 싸울 때마다 착한 천사를 퇴짜 놓고 으깨어서 악마로 만들었으니까요. 제가 배운 지식은 배우지 않은 것을 의심하고 불신하고 경멸하고 유감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었지요.
인생은 곧 끝날 것이고 인생의 어떤 것도 다투는 수고와 노력을 들일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저의 참담한 마지막 수단이었어요.“
- <어려운 시절> 321-322쪽


그래드그라인드가 시키는대로 (사랑 없이) 바운더비와 결혼했으나 불행하기만 했던 딸 루이자, 루이자가 한밤중에 찾아와 이런 말을 내뱉었을 때 그래드그라인드는 그제야 자신이 딸을, 가장 아끼던 자식의 인생을 망쳤음을 깨닫는다.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긴 루이자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 삶은 살아갈 가치도 의미도 없는 것이라는, 그래서 자포자기하듯 바운더비와 결혼하여 무감각해진 채 살아왔다는 고백은 아무리 냉정한 부모라도 충분히 충격을 받을 이야기였다.


그래드그라인드는 잘못된 교육자, 부모의 전형이다.

그 교육의 결과 딸은 인생이 공허하다고 여기며 모든 것에 무감각해졌고, 아들은 도둑질도 모자라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남을 이용하는 범죄자가 되었다. 그의 교육을 가장 잘 흡수한 학생은 철저한 계산에 근거한 경제적 합리성과 이해관계만 따르는 생기 없는 어른이 되어 동정심을 베풀어달라는 그에게 “돈을 내고 배웠으니 그건 거래였고, 졸업을 했으니 거래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와 똑같은 믿음을 가졌던 아내는 이제 더 이상 어떤 종류의 학문도 그 명칭을 듣고 싶지 않다며 그래드그라인드가 깜빡 잊은 것이(학문이나 지식이 아닌 소중한 그것)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말로 죽음을 맞는다. 이 모든 것에서 그의 잘못과 실패는 명백하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내 마음에 가장 남는 인물이 누구냐면, 바로 메마른 사실주의자, 그래드그라인드다. 그런 아버지와 남편 바운더비가 망쳐놓은 허무의 덫에서 벗어나려 기를 쓴 루이자도, 정말로 인생을 망쳐버린 톰도, 한결같은 사랑과 믿음으로 이 가족을 바꿔놓은 시시도 아니고, 그래드그라인드가 마음에 남는다니,


스스로는 자식을 위한다고 해왔던 것들, 한평생 믿어왔던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 바로 자신이 딸과 아들의 삶을 망쳤다는 것을 깨달은 노인을 상상하니 그래드그라인드가 싫기보다 불쌍한 마음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래드그라인드가 마지막까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고집불통이었다면 끝까지 싫은 캐릭터로 남았겠지만, 그는 딸의 불행을 목도한 순간, 자신의 인생철학이자 교육철학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고 아들의 죄를 스스로 밝힘으로써 아버지로서 모든 책임을 지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래드그라인드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루이자와 톰을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어리석음이 그 사랑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는 뼈아픈 것이었다. 하지만 잘못된 사랑이어도 진심이 있었기에 마지막 순간에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루이자와 톰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래드그라인드가 극단적인 인물 같지만,

나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어른들을 떠올렸다. 초등학생때부터 의대 입시반이 유행하며,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자기 딴에는 자녀를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녀에게 큰 상처를 주고, 궁극엔 삶의 생명력을 잃게 만드는 부모님들ㅡ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얘기야, 너는 편하게 살라고 그러는 거야ㅡ


하지만 행복과 삶의 의미는 그런 수치상의 풍요나 물리적 편리함만으로 채워질 수가 없다. 불편하고 힘들게 꾸려나가는 삶이어도 그걸 하루하루 이겨나가는 게 삶의 작은 기쁨이니까.


이 이야기는 소설이라 그럭저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현실의 루이자와 톰은 더 불행할 수도 있다. 그래드그라인드처럼 자녀의 말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기가 쉽지 않으므로. 설령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해도 그간 쏟아부은 비용과 관성, 사회적 분위기와 압력, 정말 아이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하던 대로 하기가 더 쉬울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래드그라인드가 아주 나쁜 아버지는 아니라고 위로해주고 싶다. 잘못된 사랑의 방식이었지만 적어도 그는 자기 기만과 합리화에서 벗어났으니까. 한평생 믿어온 삶의 철학이 다 무너진다는 건 그의 삶 전체를 부정해야 하는 것인데, 그 마음에 진실한 애정이 없었다면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내가 더 어렸다면 루이자의 입장에서 그래드그라인드를 실컷 욕했겠지만, 이제는 후회로 남을 그래드그라인드의 마음 또한 이해가 된다. (물론 이 모든 건 그가 딸의 말을 듣고 자기 잘못을 뉘우치며 변했기 때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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