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보여도 괜찮지 않을 수 있다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by 햇볕 냄새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책 표지


나는 아이가 없지만 그런 생각을 종종 해보곤 했다.

만약 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생각보다 바르게 크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공부를 못하거나 청소년기에 저지를 수 있는 소소한 사고를 치는 게 아니라 진짜 나쁜 일을 하면 어떻게 하지? 내 아이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가해자가 된다면 그땐 정말 어떻게 하지? 나는 그때도 그 아이를 사랑하고 품어줄 수 있을까,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솔직히 별로 자신이 없었다. 내 자식이라도 너무 밉고 화가 날 것 같고, 심지어 무서울 것 같고, 어쩌면 이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끔 학생 수준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사고를 친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가르치는 교실에 그런 아이가 앉아 있다면 똑바로 눈을 마주치기 싫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이제 아이를 낳을 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어졌기에, 이런 우려 섞인 상상을 하는 일도 줄었다. 하지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남자의 어머니가 쓴 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다시 한번 나를 그런 상상으로 이끌었다.



이 책은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두 명의 학생 중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가 쓴 책이다.


1999년ㅡ 나는 대학 1학년이었고, 서울 생활과 더불어 대학에서 재미난 시간을 보내느라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내게 가해자 딜런의 어머니가 쓴 글은 상당히 충격이었다. 나도 남들처럼 막연히 가해자가 어린 시절부터 문제아였다거나, 가정 내의 폭력이나 불화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딜런의 집은 아주 평범했다. 아니, 오히려 화목한 쪽에 가까워 보였다. 이 책의 저자인 딜런의 엄마는 아이의 친한 친구들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부모님과도 잘 알고 지냈다. 아이가 친구네 집에 놀러갈 때는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잘 챙겨봐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고, 공중도덕과 질서를 잘 지키도록 가르쳤으며 학교 과제도 체크하는, 아이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딜런 역시 엄마의 생일에 다이어리를 선물하고, 아빠와 야구 경기를 보러 다니며, 집안 일을 곧잘 거드는 그런 아들이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처음 총격 사건에 대한 전화를 받았을 때 이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범인일 거라는 상상은 꿈에도 하지 못한채, 피해를 입어 다치지나 않았을까를 걱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더 의미 있다.

딜런의 엄마는 자식을 잘못 키워놓고 무슨 염치로 그에 대한 책을 쓰느냐고 할 비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아이에게서 그 정도로 끔찍한 짓을 저지를 만한 징후를 자신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사춘기 남학생의 흔한 변화로 여겼던 사소한 것들을 돌이켜보며 이제야 그것이 어떤 신호였을까 생각하는 스스로를 탓하고 후회할 뿐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이 책을 쓰는 일, 그러니까 왜 자기 아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살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유사한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 일종의 속죄를 위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아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딜런은 그녀에게 사랑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딜런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저지른 행위를 축소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딜런의 행동, 가족관계, 교우 관계를 돌이켜보며 조금이라도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찾으려 노력할 뿐이다. 이는 스스로가 나쁜 엄마였을까, 나는 왜 알아채지 못했나..라는 자기 의심과 자책을 조금씩 덜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속죄의 노력을 이해한 것일까, 글쓴이가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썼을 때 답장을 보내고, 직접 만나러 온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어떤 여학생은 자신의 언니가 죽었음에도 아이들의 잘못이 부모의 잘못은 아니라고 위로하기도 했다고.



딜런과 에릭은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아니, 처벌을 받지 못했다.

둘 다 현장에서 자살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딜런은 오랫동안 우울증 약을 복용했으며, 자살을 꿈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글쓴이는 아들이 우울증 약을 먹는 것을 몰랐다고 했다. 매일 밤 잘 자라고 인사하며, 친구들 집에 놀러갈 때 이상한 비디오를 보지 않을까 염려해 전화를 하면서도 무슨 약을 먹는지는 몰랐다고. 아들이 "괜찮아요, 알아서 할게요."라고 하면, 더이상 캐묻지 않는 것이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엄마는 시간을 되돌린다면 몇번이고 아들을 붙잡고 이유를 묻고 또 물었을 거라고 썼다.


딜런의 아버지는 딜런이 그날 자신도 죽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단다.

나는 어땠을까.

나도 딜런의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이런 끔찍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버거워서 한없이 도망치고 싶었을 것 같다. 사건이 보도된 후 부모의 집은 기자들이 에워쌌고, 먼 친척과 친구들한테까지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니까. 거래처에서 아들이 콜럼바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계약을 해지해서 다시 일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니까_ 내가 악마를 키운 것일까, 나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를 수없이 되뇌이면서 도저히 다른 사람을 똑바로 보며 살 수가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엄마의 용기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평생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고,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어준 아들인데도 그 아들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쓸 수 있는 것도. 끝끝내 원인을 찾지 못했지만, 끝없이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것도.



나는 누군가를 잘 알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이 깊어지지 않을까 했는데,

다른 이는 이해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별개라고 했다. 우리 부모님과 내 관계를 보면 후자의 말이 맞는 듯도 하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부모님처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기 자식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

또 겉으로 멀쩡하고 괜찮아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괜찮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깊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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