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렬, <의사 선우경식>
이제는 고인이 되신 선우경식 선생님의 삶을 담은 책, <의사, 선우경식>을 읽었다.
책을 읽기도 전 주문만 해놓고 요셉 의원에 정기 후원을 신청했다. 책을 다 읽은 뒤에는 너무 적게 한 건가, 빵 몇 번 덜 먹고 더 할 걸 했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선우경식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고, 이 책의 맨 뒷장에 후원 계좌 정보가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겠지만(틀림 없다), 나같은 중생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널리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생전에 친구분이 했다는 말마따나 나는 나중에 천국 가고 싶어서(아니 적어도 지옥에는 안 가고 싶어서), 내 마음 편하자고 후원하는 거다.
읽을 만한 책 없을까? 두리번 거리시는 분, 요즘 세상은 너무 각박해, 하시는 분께 이 책을 추천드린다.
자서전과 같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역시 실제 인물의 삶이 주는 감동과 숭고함은 가상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울림이 있다. <간송 전형필>을 쓰신 분이 이 책을 쓰셨다기에 좀 더 믿고 구입했다. 그 책도 전형필이라는 한 인간의 삶에 푹 빠지게 해줬을 뿐 아니라,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도 좀 더 깊어지게 했으니 이 책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기대했는데, 이 책은 왠지 자꾸만 목이 메었다. 나와 동시대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 있었구나. 그러고나니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한 것 같고, 따뜻한 것 같고, 나는 도대체 뭘 위해서 살고 있나 반성도 하고^^;; 뭐 그랬다.
얼마 전, 아니 몇달 전에 임용 1년만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제자와 일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우리의 화두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데도 일을 꼭 해야만 하는가"였다. 선우경식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 질문은 " 나는 왜 가르치는 일을 하는가, 교사라는 일에서 나에게 주어진 소명은 무엇인가? "로 바뀌었다. 선우경식 선생님은 처음엔 '의사'라는 직업이 자신과 안맞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피를 보는 것이 무서웠다는 거, 완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종교적 믿음이 컸던 선생님은 자신이 배운 것을 통해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셨다. 그래서 의사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돌려보내는 현실 앞에서 오랜 내적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오랜 갈등과 고민 끝에 뜻이 맞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만든 병원, 가난하고 아픈 사람도 마음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무료 병원을 꿈꾸며 만든 병원이 바로 아래 보이는 요셉 의원이다.
https://www.josephclinic.org/index.html
선우경식 선생님은 꽤 유복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그 시절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셨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연민이나 동정심(compassion)이 작동하려면 자신도 그 상대방과 유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인식이 꽤 중요하다고 들었다. '나는 어쩌다 운이 좋아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지, 나도 운이 나빴으면 알코올 의존증에 걸릴 수도, 장애를 가지고 살았을 수도 있다.'라는 인식이 있어야 상대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연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 선우경식 선생님은 노숙자나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유사성을 갖기가 힘든 조건이었다. 오히려 '나는 너희랑 다르다.'라고 생각하기 쉬운 조건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는 늘 환자들을, 가난한 환자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했다고 한다. 아픈 환자들이 굶고 와서 약을 먹게 되는 것이 안타까워 병원에서 식사를 제공하도록 했다.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환자들의 형편에 따라 정말 어려운 환자는 무료로 치료하지만, 그중 형편이 조금 나으면 최소한의 돈을 받고 치료해주었다. 후원자를 공식적으로 모집하라는 주위의 조언에도, 자신이 하는 일을 내세우는 것이 될까 조심하는 마음과 함께 가난한 환자들이 무료로 진료받는다는 이미지가 환자들에게 상처를 줄까 염려했다. 그뿐 아니라 많은 환자들이 당장 몸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살고 싶다는 의지와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진료 중에 자꾸 과거에 뭘 했는지, 뭘 잘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물었다고 한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을 위해 도자기 만들기 강좌를 열어주고, 중국 요리를 해봤다고 하면 중국집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열에 아홉의 환자가 다시 술에 빠지고 자활에 실패해서 또 병원에 찾아와도 그는 다시 그들을 맞아주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기에는 후회와 반성이 가득했다니, "쪽방촌의 성자"라는 그 이름처럼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따라하기 어려운 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감동을 준 사람은 선우경식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선우경식 선생님 본인이 늘 요셉의원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 일군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했었다. 본인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에 요셉의원으로 다시 출근해 야간 진료를 해준 수많은 동료 의사들, 직접 자기 돈으로 필름값을 내가며 엑스선 촬영을 했다는 방사선 기사님, 밥을 짓고 빨래를 해주고, 문앞을 지켜준 사람들, 환갑 잔치 대신 그 비용으로 기부를 하겠다고 찾아온 할머니, 후원금을 걷어준 동문들, 의료 기기를 빌려주고 수술 요청을 받아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덕에 개업 당시 3개월도 못 버틸 거라 했던 병원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에게 치료를 받은 환자들 중에는
무료로 진료를 받은 뒤 나중에 돈이 생기자 병원 문틈으로 몰래 지폐를 집어넣고 간 사람도,
자기 몸이 나은 뒤에 연고가 없어 수술후 곤란을 겪는 다른 환자의 간병을 하겠다고 나선 이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선생님이 6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질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에는 목이 메였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이 행복하게 눈을 감으셨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았기에 몸은 힘들고 고되었을지언정 마음에는 하나 거스르는 것이 없지 않았을까 싶었다.
요즘 학생들과 '행복'을 주제로 수업을 하고 있다.
어떻게 살면 행복할까, 무엇이 있으면 행복할까,
나의 행복은 무엇인가.
그중 많은 학생들이 졸고 있어서 또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요즘은 세상 살기가 힘들다, 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자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또 한편 기뻤다. 사회 수업에서는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비판을 많이 하게 되는데, <어른 김장하>를 쓰신 김주완 기자님의 말씀처럼 나쁜 것 찾아서 비판하는 것 이상으로 이런 훌륭한 사람과 삶을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의사 선우경식>과 <요셉 의원>을 홍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