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볕 냄새 Mar 29. 2021

모든 것은 울먹이는 한 가수의 눈에서 시작되었다.

텔레비전고장 난핑계로 유튜브에 빠진 밤

일주일 간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텔레비전이 고장 나 있었다. 출장 가는 날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으니 갑자기 왜 고장이 났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출장 기간 동안 눈이 펑펑 내린 걸로 봐서 너무 추웠던 탓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세상에 날씨 춥다고 집안에 있는 텔레비전이 고장 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 가는 원인은 추위 아니면 모른 척 꼬리를 말고 쳐다보는 우리 야옹이...(?) 혹시나 이 녀석이 뭘 누르거나 전선을 뜯은 것인가? 하지만 누구든 확실한 증거 없이 의심하면 안 된다. 과거 나의 사과 폰 충전기를 물어뜯은 전력이 있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물증도 없으니 믿어주기로 한다. 소리만 들리고 화면이 나오지 않아 한참을 이리저리 돌리고, 이것저것 누르고 벗겨보았으나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 오래되었으니 새로 사라는 엄마와 기사님을 불러보라는 동생에게 "나 이제 텔레비전 안 볼 거야!"라고 말하며 야심 차게 탈 TV를 선언했다. 그래, 이참에 빔을 설치해서 보고 싶을 때 영화나 보고 책을 더 많이 읽는 거야. (한쪽 벽면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벽을 꽉 채운 화면으로 양조위의 눈빛을 감상하는 것이 나의 로망 아니었던가.)


하지만, 휴직을 한 덕분에 당장은 백수라 돈이 없다. 그래서 우선은 책부터 열심히 읽자고, 새해를 맞아 공부를 하자고 다짐했..... 으아! 책은 역시나 책일 뿐.. 어느새 나는 그림을 그리겠다며 구입한 아이패드(무려 프로;;;;)로 밤마다 유튜브 채널을 연달아 클릭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흑흑... 비싼 돈 주고 산 아이패드가 결국 이렇게 쓰이고 있다. 지난 6개월 간 가장 제 값을 하며 열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유튜브의 세계는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 이래서 요즘 학생들이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것이었군.


그 시작은 우연히 클릭한 한국인의 떼창 시리즈였다. 무슨 알고리즘의 힘으로 이런 영상이 추천에 떠오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한 가수들의 콘서트 영상이 있어서 클릭을 했고, 영상에 달린 댓글("2013년의 콘서트 영상을 2021년에 보고 있는 사람 나 말고 또 있냐"라는 글에 찔려하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까지 다 보고 그 날 결국 새벽 3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나는 겉보기에는 티가 안 나지만 흥이 좀 있고(가끔 들르는 슈퍼마켓 아저씨는 알고 계신다. 물건을 고르며 매장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나도 모르게 들썩이는 어깨와 헤드뱅잉을 들켜버렸기 때문에;;;;;), 록 페스티벌을 좋아하며, 콘서트는 스탠딩석에서 떼창을 부르며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한다. 말 그대로 관객이라기보다 나도 그 공연의 일부로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쪽이다. 코로나로 공연 문화와 한참이나 멀어져 있던 2020년을 보내고,, 유튜브 영상 속에서 들려온 사람들의 목소리와 감격해하는 가수들의 모습은 어쩐지 코끝을 찡... 하게 만들었다.


한번 보면 다음 영상으로 물 흐르듯이 넘어가게 되는 것이 유튜브라지만, 그날은 시작이 심상치 않았다. 그날 밤 새벽 3시까지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것은 바로 '위 아 영(We are Young)'을 부른 밴드 Fun의 내한 공연 영상이었다. 사실 나는 이 밴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였던가(?) 광고의 배경으로 나왔던 이 곡과 'Carry on'이라는 곡이 마음에 들어서 출퇴근할 때 차 안에서 자주 듣곤 한 게 전부다. 하지만 "오늘 밤 우리는 젊어! 그러니 세상을 불태워보자! "라는 노랫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힘이 난달까. 이제 "위 아 영"이라고 외칠 만큼 젊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나는 내 안의 청춘과 사그라들지 않은 열정을 북돋아주는 이 노래가 좋았다. 그래서 많은 추천 목록 중에서 주저 없이 이 영상을 골랐다. 2013년에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노래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나는 이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유튜브를 검색해 다른 각도에서 찍은 영상도 보았다. 댓글도 읽었고, 댓글에서 사람들이 쓴 내용을 직접 확인하려 또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처음에는 노래를 듣다가, 나중에는 보컬인 네이트 루스의 얼굴을 보며 노래를 듣다가, 결국엔 그의 얼굴만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궁금하다면 다음 링크를 클릭해서 그 동영상을 한번 본다면 내 말이 이해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4R1lmX2KXU


처음에 그는 조금 긴장한 듯 노래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따라 부르자 조금 어리둥절 놀란 듯한 표정이 이어진다. 하지만 곧 그의 얼굴에서는 환희에 찬 표정이 떠오른다. 기쁨에 겨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좋아하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다. 그 와중에 노래는 또 진짜 열정적으로 부른다. 마치 이번 무대가 마지막인 것처럼. 네이트 루스의 티셔츠가 땀에 흠뻑 젖어 원래 그 옷이 그런 색인 줄로만 알았다. 그는 "더 크게!" 함께 불러달라고 소리치며 열정적으로 무대를 뛰어다니다가 마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과 벅찬 감정을 참아내는 표정으로 노래를 마쳤다. 알고 보니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치고 이제 조금 알려지기 시작한 노래로 처음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노래를 알고 따라 부르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자신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동영상 속 가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의 마음이 되어 관객들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 그는 평생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왜 일면식도 없는 저 머나먼 나라의 가수를 보고 코끝이 찡하게 눈물이 났던 걸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고, 부러웠다. 누군가와 그렇게 하나가 되어 교감한 순간이 언제였던가, 아니 그런 순간이 있기는 했던 걸까. 아마 이 가수들은 오랜 무명 기간 동안 때때로 가졌을 수도 있는 의구심과 불안을 그 순간에 다 잊고, 그날 거기까지 계속 달려온 자신들이 옳았다고 확신하지 않았을까. 아무도 그 노래를 몰랐대도, 그래서 누구도 따라 부르지 못했대도 그들은 여전히 열심히 노래했으리라. 하지만 그날의 떼창은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가는 사람에게는 응원의 목소리가 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쁘고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노래를 할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오기를 꿈꾸며 나 역시 벅찬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다. 어쩌면 그런 순간은 영영 안 올지도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지치지 말고 계속해나가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