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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대 Nov 19. 2023

종이달

가쿠다미쓰요 지음 / 권남희 옮김

사람 하나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쯤 간단하지 않을까. 


프롤로그부터 긴장감에 심장이 쫄깃했다.

평범한 주부에게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전개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무엇보다 실화라는 것에 놀라며 빠져들었던 책이다. 
걷잡을 수 없는 거액의 공금 횡령 이야기.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올 해는 김서형 배우의 정서로 우리나라에서도 드라마로 제작된 소설. 

8년 전쯤 무서운 속도로 책장을 넘겨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드라마 후반의 전개와 결말이 좀 아쉬웠던 터라 다시 책을 들춰본다. 


나?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날마다 전 날을 따라 하는 것 같아. 
- 098p  


오늘이 어제였고 내일은 오늘인 리카에게 찾아온 어제와 오늘이 다른 나날들.
시작은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였다. 
5만 엔 이상이 들어있다고 생각한 지갑엔 몇천 엔이 있었고 순간 아무 거리낌 없이 고객에게 받은 현금봉투를 건드린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망설임도 없었다. 점원이 그걸 들고 계산대로 간 뒤, 리카는 그제야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래도 신기하게 죄책감은 없었다. 역에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가 있다. 돌아가는 길에 5만 엔을 찾아서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된다고만 생각했다. 
- 130p 


원래대로 돌려놓는 일은 아마 살면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내면의 목소리가 점차 실제 행동으로 변해가고 그런 과정에서 만난 고타는 리카에게 탈출구였을까 계속 자신을 갉아먹는 무엇이었을까.  


만약에 아이 갖기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만약에 마사후미와 그런 얘기를 했더라면. 만약에 타운지의 면접에 붙었더라면. 만약에 나가쓰타에 집을 사지 않았더라면. 아니, 만약에 그 여름날, 부족한 5만 엔을 고객의 봉투에서 꺼내지 않았더라면.
리카는 무수한 ‘만약’의 끝에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거야’라는 생각을 계속했지만, 그러나 그 몇 개의 ‘만약’을 선택했다고 해도 ‘이렇게’ 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망연해지다가 이어서 천천히 소름이 돋았다. 
- 185p


돈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어째선지 보이지 않게 된다.
없으면 항상 돈을 생각하지만, 많이 있으면 있는 게 당연해진다. 100만 엔 있으면 그것은 1만 엔이 100장 모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처음부터 있는, 무슨 덩어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은 부모에게 보호받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그것을 누린다.
- 298p 


수많은 만약을 그려보더라도 결국은 지금 이 자리의 자신에게 웃음이 난다.
일어날 일은 언젠가 일어나고 사람은 그것을 지켜내려고 애쓰다 막바지에 이르러 진정한 자신을 보게 되어버리니. 
그릇된 행동을 감추려 할수록 리카에겐 그보다 더 큰, 가림막이 필요했다.

결국엔 범죄 행위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마술에 걸린 듯 자연스럽게 다음, 그다음 단계를 밟아 나가며 지우려고 애쓴다.  


그러나, 하고 리카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강을 건너버린 게 아닐까. 이곳에 이렇게 앉아 있는 자신이 이미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습이 아닌가. 만약 고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까, 하고 리카는 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니, 이렇게 된 것은 고타를 만나서라고 생각할 수 없다. 
…(중략)
가정은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무수히 흩어져갔지만, 하지만 어떤 가정을 해도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342p 


모든 것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고타는 그 모든 것의 중심에서 나가버렸다.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안타까움, 긴장감이 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중간에 덮을 수 없어 밤새 읽어 내려갔던 종이달.
이상한 건 리카를 당당하게 미워할 수 없었다는 것.


이미 엎어진 물이다. 난 이 표현이 좀 싫다.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알맞은 말이지만 물은 정말 다시 담아낼 수도 없고 무엇으로 닦으면 이미 다른 것으로 상황이 옮겨버려 지기에. 정말 끝인 기분이다.


수많은 만약을 그리다 다시 지금의 나에게 눈길이 떨어져도 

그다음의 만약을 그릴 수 있는 나를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는 기대를 가지고 싶다. 


종이달. 진짜가 아닌 가짜. 

그 때에 비춰 떠올리는 행복했던 한 때는 리카에게는 진짜 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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