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본다

"안녕, 까마귀!"

by 때때로


요즘 산책을 하면 까마귀와 까치를 자주 보게 된다.

까마귀가 내 삶에 깊이 들어온 때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네 집에서 "오멘"이라고 하는 무서운 영화를 비디오로 봤을 때였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적그리스도 악마의 숫자 666을 몸에 지니고, 6월 6일 6시에 태어난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때 등장하는 까마귀들은 주인공이 곤란하게 되면, 날아와서 사람을 공격하는데 그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이 영화가 특히나 기억에 남았던 것은 우리 언니가 6월 6일에 태어났기 때문인데, 새벽 6시에 태어났을까 봐 늘 두려워하며, 언니가 못된 행동을 하면 몸에 표식이 없는지 또다시 의심하곤 했다. (지금도 생각할수록 너무 무서워서 이젠 이 얘긴 그만해야겠다. 후덜덜덜)


그래서 까마귀는 늘 두렵고 액운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올해 바람이 많이 부는 어느 날 산책로를 오르려고 하니 까마귀 2-3마리가 상승하는 기류를 타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타는 듯하기도 하고, 워터파크에서 긴 워터슬라이드를 내려오는 듯 바람을 타고 높이 올라갔다가 쌩 내려오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까마귀가 신이 나서 지르는 소리가 실제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들리는 듯했다. 까~~~~~~~악~~~~~~~~~


이렇게 친근감을 갖게 된 후로는 까마귀가 나무에 앉아있거나 날고 있을 때 안쓰럽게도 하고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다. 찾아보니, 까치도 같은 까마귀과에 속하는데 까치는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까마귀는 이렇게 천덕꾸러기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 걸까. 나무 위에 주로 앉아 있는 까마귀와 달리 내가 본 까치들은 천천히 걸어 다니거나 콩콩콩 뛰어다니며 먹을 것들을 찾아다녔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아는 모양인지 양반처럼 날개로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돌아다닌다.


까마귀나 까치나 잡식성인데, 식물들의 열매를 검색하다 보면, 까치밥이라고 나와있는 경우가 많다. 다 까치밥이면 우리 까마귀는 도대체 뭐 먹고사나? 까마귀밥이라고 이름 지어줄 수는 없나 괜한 까마귀의 서러움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같은 까마귀 과인데 너무나 다른 처우와 시선.

어느 나라에서는 길조로 사랑받는 까마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살아가기가 참 힘들구나.


몇 년 전에 오즈의 마법사에서 나온 마녀들의 성장과정을 주제로 한 영화 <위키드>가 나에게 오랜 여운을 주었다.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든 것은 이름이 주는 주는 사회적 틀과 시선이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사악한 서쪽마녀의 이름은 '엘파바'이다. 엘파바는 좀 특이하게 초록색 피부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마법에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오즈의 마법사와 마법학교의 교수가 엘파바를 인정해 주는 척하면서 마법을 나쁘게 사용하려고 하자 엘파바는 저항한다. 엘파바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그들에 의해 "사악한 마녀"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대중들은 엘파바의 서사와 엘파바의 따스한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그 이름의 한계에 갇혀 엘파바를 비난하고 경멸하게 된다.

까마귀에게도 넌 불운한 존재야 라는 시선과 '불행', '죽음', '불운'이라는 별명을 지어주면서, 경멸과 두려움만 안겨준 건 아닐까.


나는 까마귀가 기억력이 좋아서 한번 본 사람은 기억한다고 하니 여전히 눈을 깔고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까마귀를 까마귀 그대로 부르고 싶다.


안녕, 까마귀.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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