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수미술관, 서촌, 공예박물관 걷기
인스타그램 책친구가 나의 퇴사선물로 보내준 8권의 책 중 하나였던 <화가의 집, 박노수 미술관>은 군청색의 표지의 아름다운 책이다. '미술관을 가면서 읽어야지' 하면서 여름부터 미뤄둔 것이 어느덧 겨울이 되었다. 그림 속 눈의 시리도록 푸른 군청색과 그림 속 소년이 자꾸 나를 부른다.
박노수 미술관은 광화문에서 9번 마을버스를 타고 갔는데, 정류장 바로 뒤편 1분 거리에 있는 미술관은 2층짜리 단독주택이라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다.
이 미술관은 1937년도에 친일파 윤덕영이 딸을 위해서 지었는데, 화신백화점(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백화점)과 보화각( 간송미술관)을 지은 유명한 건축가 박길용이 지은 집이라고 한다. 남정 박노수 화백(1927-2013)은 1973년에 이 집을 사서 아름답게 가꾸었고 2013년 돌아가실 때 이 집과 작품 500여 점을 기증하여 현재 미술관이 되었다.
외부는 벽돌과 정원으로 가꾸어져 참 아름답고 내부는 가정집이라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미술관에 들어가면서 신발을 벗기는 처음이라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88년 된 오래된 집이라서 곳곳에 조심히 걸어달라고 쓰여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짙은 갈색의 마룻바닥과 유리창이 있는 문들, 창문들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책에서 봤던 하늘에서 쏟아질듯한 군청색 그림을 보고 싶었는데, 그 그림은 없었지만 다른 그림들을 통해서 색채의 아름다움과 여운을 맛볼 수 있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은 20여 점 정도인데, 혼자 관람하기에 천천히 그림을 보고 미술관(집)을 즐길 수 있었다. 동양화는 참 신기하다. 강물이 비어있는데, 참 깊음이 느껴지고, 그림 속 시선을 따라가면 그리 먼 곳에 산이 있고 강이 끝없이 흐른다. 여백이 주는 깊음과 공간감이 신비롭다.
미술관에서 나와 맛있는 식당을 찾아보는데, 돈가스 가게 안의 풍경이 따사로워 보인다. 오늘의 점심은 돈가스다! 예전에는 혼자 밥을 먹게 되면 배고픔만 해결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요즘엔 혼자 먹더라도 맛있는 것을 먹으며 그 시간을 즐기고 싶다. 온전히 음식에 집중하고 싶어서, 휴대폰을 보지 않고 음식을 꼭꼭 씹어먹으며 맛있게 먹는다. 너무 맛있어서, 반찬도 더 달라고 하고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다 먹었다.
식당에서 나오니 통인 시장이 바로 근처에 있는데, 아직 시장에 홀로 들어갈 자신은 없다. 카페를 갈까 고민하다가 공예박물관의 우아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로 한다. 도서관까지는 25분 정도 걸리니 천천히 서촌을걸으며 가기로 했다. 걷다 보니 사람들이 많은 옛날 분식점이 나와 ‘아 이거 먹어볼걸!' 하면서 후회하기도 하고, 상점에서 파는 예쁜 물건들과 빵을 구경하기도 한다. 오래전 지인과 함께 갔던 카페를 발견하고 옛 추억에도 잠기고,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을 보며 미소 짓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걸으니 어느덧 공예박물관이다. 공예박물관 전시도 볼 것이 많고, 도서관은 옛날 귀족의 공간처럼 멋스럽고 아늑하다. 안나카레니나를 읽고 있는데, 문장이 톡톡톡 마음을 건드린다.
안나 카레니나의 올케인 돌리가 남편은 도시에서 일하고 있고 홀로 아이들만 데리고 잠시 시골에 내려와서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었다. 남편은 바람을 피웠었고, 시골집은 엉망이고, 아이들은 아프기도 하고 서로 자주 싸우기도 했지만 그녀는 이러한 '성가신 일들과 걱정'(책 속 표현)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이제는 아이들 자체가 그녀의 슬픔에 대한 보답으로 작은 기쁨을 선사했다. 이러한 기쁨은 너무나 작아서 모래 속에 섞인 금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분이 나쁠 때면 그녀는 오직 슬픔만을, 오직 모래만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기쁨만을, 황금만을 보는 즐거운 순간도 있었다. 요즘 그녀는 시골의 적막함 속에서 이런 기쁨을 점점 더 자주 자각하게 되었다. ㅡ p59 <안나 카레니나 2권>, 민음사
'모래 속에 섞인 금'이라는 말이 참 공감이 됐다. 기쁨이 너무너무 작아서 모래 속에 찾아내기가 얼마나 힘든가. 가족이란 좋기도 하지만 또 얼마나 버거운가. 오직 모래만을 보던 시간들도 얼마나 많았던가.
모래 속에 황금을 발견하는 일은 힘들 것 같으니, 발견해 냈을 때 오래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또 금세 모래와 뒤섞여 버리겠지만 말이다. 적막함, 홀로 있는 시간들을 통해서 더 자주 자각해 봐야겠다.